07.12.20
김성근 감독의 첫인상은 무뚝뚝했다. 그간 TV에서 보아 온 그 특유의 무표정. 지레 겁먹었다. 그러나 아들이 보낸 예전의 문자메시지를 본 순간, 얼굴에 번지는 미소는 햇살만큼 환했다.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아버지는 벌써 세 시간 째 눈을 감고 있었다. 눈을 떴을 때 근심스럽게 자신을 보고 있는 아들을 발견했다. 부자(父子)는 눈을 마주친 채 5분 넘게 침묵을 지켰다. “집에 가냐.” 아버지가 먼저 입을 뗐다. “네, 먼저 들어갑니다.” 아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SK와 두산의 한국시리즈 2차전이 열린 2007년 10월 23일 저녁 인천 문학구장 SK구단 감독실. 아버지 김성근(65) SK 와이번스 감독과 아들 김정준(37) SK 전력분석팀장의 대화다. 정규리그 1위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SK는 이날까지 두산과의 경기에서 두 번 연속 졌다. 역대 한국시리즈에서 첫 2연패 뒤 우승에 성공한 팀은 없었다.
“정준이는 아들이기 전에 팀원입니다. 편도선이 퉁퉁 부을 정도로 고생했는데 나 때문에 진 것 같아 너무 미안했어요.”(김성근), “아버지가 소파에 힘없이 누워 계셨어요. 그렇게 약해지신 모습은 처음 봤습니다. 아버지는 항상 강한 줄 알았는데….”(김정준)
아들은 아버지의 모습이 지워지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아들은 아버지에게 문자를 보냈다. ‘대장이 기운 없음 어떡해요. 여기까지 끌고 왔으니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해요. 기적은 인간의 계산대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고 말했잖아요. 진인사 대천명이라고 할 만큼 했으니 믿음을 갖죠. 9회 2아웃 글러브에 들어간 공도 튀어나왔잖아요. 빨리 기운 내서 오늘은 선수들 무거운 맘 덜어 주고 편하게 해줘요. 김부자홧팅! 사랑합니다. ^^’
네번에 걸쳐 긴 문자를 받은 김 감독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한다. “그때까진 2패한 것을 자책만 했어요. 문자를 보고 내가 약해지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직 2패가 남았다’고 마음을 바꿨죠.” 그 시간 아들은 이발소로 향했다. 머리를 삭발하기 위해서였다. “아버지가 마음 고생 하시는데 저도 뭔가 하고 싶었어요. 삭발하고 연습장에 가니 선수들도 비장한 표정을 짓더라고요.”
지난해 말 김 감독은 일본의 지바롯데마린스에서 코치를 하다 SK 감독으로 부임했다. 김 과장은 2003년부터 SK에서 일하고 있었다. 부자는 같은 팀에서 일하지 못할 뻔했다. 김 과장이 지난해 말 롯데마린스에서 월급 70만 엔을 받고 일해 달라는 제의를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거절했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와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죠. 아버지는 집보다 야구가 우선이었습니다. 어느 날 마운드에 올라선 아버지의 어깨가 아래로 축 처져 있더군요. 지금이라도 아버지 옆을 지키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무뚝뚝한 김 감독도 아들에 대해서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김 감독은 1982년 OB 코치 시절부터 모든 경기를 손수 분석한 ‘야구 일기’를 수십 권의 노트에 정리해 왔다. 예순을 훌쩍 넘긴 노장(老將)은 “이제 아무리 해도 전력 분석은 아들을 못 따라가겠다”며 슬며시 웃었다.
다시 한국시리즈로 화제를 돌렸다. 2연패 후 SK는 극적인 4연승을 거뒀고 우승컵을 손에 쥐었다. 2차전이 열린 날 문학구장에서 헤어진 뒤 부자는 우승 기념 파티에서 처음 마주쳤다. 부자는 말없이 씩 웃었다고 한다. “머리를 깎았다니 가슴이 아파 아들을 못 보겠더라고. 그래서 한국시리즈 내내 피해다녔지.”(김성근), “저는 아직도 ‘야구의 신(神)’인 아버지에게 배울 것이 많습니다. 같은 목표를 향해 함께 뛸 수 있어 행복합니다.”(김정준)
SK와이번스 프로야구 우승의 숨은 힘
‘대장이 기운 없음 어떡해요. 여기까지 끌고 왔으니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해요. 기적은 인간의 계산대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고 말했잖아요. 진인사 대천명이라고 할 만큼 했으니 믿음을 갖죠. 9회 2아웃 글러브에 들어간 공도 튀어나왔잖아요. 빨리 기운 내서 오늘은 선수들 무거운 맘 덜어 주고 편하게 해줘요. 김부자홧팅! 사랑합니다. ^^’
한국시리즈 초반 내리 2연패 뒤 김정준(작은 사진)씨가 아버지 김성근 감독에게 보낸 메시지.
홍주연 기자
출처 :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2985989&cl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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