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8.16
매우 실험적인 시도였다. 10대1 인터뷰가 최초로 선수가 아닌 사령탑을 찾아갔다. 올 시즌 SK의 거침없는 선두를 이끌고 있는, 야구에 살고 야구에 죽는 사나이. '야신', '야구의 장인' 등 수많은 별칭을 갖고있는 SK 김성근 감독이 이번 10대1 인터뷰의 주인공이었다.
강한 훈련과 꽉 짜여진 조직력. 게다가 철저한 데이터 분석과 풍부한 현장경험을 바탕으로 한 섬세한 용병술을 결합시키며 '김성근식 야구'를 창출했다고 평가받는 인물. 일본프로야구에서도 김 감독의 야구를 새롭게 조명하기 시작할 정도로 한국야구의 수준을 한단계 끌어올렸다.
그를 지난 12일 인천문학구장 감독실에서 만났다. 질문은 봇물을 이뤘다. 그를 거쳤던 수많은 제자들의 '피눈물 나는 훈련'에 대한 에피소드도 담겨져 있었다. 자신의 플레이를 평가받고 싶어하는 선수들도 많았다. 김 감독은 1시간여의 인터뷰를 통해 예리한 질문에 대해 때로는 거침없는 언변과 냉정한 평가로, 때로는 특유의 유머로 유쾌하게 받아넘겼다.
◇'야신' SK 김성근 감독이 10대1 인터뷰 사상 최초로 사령탑으로서 제자와 후배들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인천=조병관 기자>
-올해 SK와 삼성이 한국시리즈에서 붙으면 누가 이길까요?(삼성 배영수ㆍ2000년 김성근 감독과 한솥밥, 배영수에게 고구마란 별명을지어준 것도 김 감독이다)
▶(주저없이) SK. 삼성도 강하지만 챔피언십은 SK가 유리하다. SK는 최근 큰 무대에서 경기한 적이 많다. 흐름이 강하다. 단기전과 페넌트레이스는 차이가 있다.
-제가 감독님 밑에서 뛰고 있다면 선발, 중간, 마무리 중 어떤 보직을 맡기실 건가요. 만약 선발이라면 몇 선발로 쓰실 건지 알려주세요.존경하고 사랑합니다.(LG 봉중근)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이걸 얘기하면 LG에 실례될 수 있는데.(개인적인 질문이니 괜찮을 것 같다고 기자가 말하자 어렵게 말을 꺼낸다)내가 지금 데리고 있다면 마무리다. 볼 자체가 다양해 연타를 맞지 않고, 주자있는 상황에서 견제가 좋아서 묶을 수 있다. 경험도 많고. 선발로 쓴다면 당연히 1선발이다.
-2000년인가 2001년 미국 보스턴에 있을 때 제가 정 석 선수와 함께 제주도에서 개인훈련을 했습니다. 그때 LG 2군 감독으로 계셨고, 배드민턴 라켓으로 스윙하는 훈련법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어깨와 투구폼을 부드럽게 해주는 훈련이라고 하셨는데요. 어떻게 그런 참신한 훈련법을 알아내셨나요.(롯데 송승준)
▶참신하다? 글쎄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만들어낸 간절함의 산물인 것 같다. 항상 아이들을 지도하기 위해서 뭐가 필요한 지 생각하다 보니 그런 방법도 나온다. 야구(투구)나 배드민턴, 배구 서비스의 기본적인 메커니즘은 비슷하다. 배드민턴과 테니스를 보면서 야구훈련에 접목시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팔꿈치, 어깨, 손목을 강화시키고 유연한 회전을 위해 SK 선수들도 전지훈련에서 배드민턴을 한다.
-감독님이 보시기에 투수 안지만은 어떤 투수인가요. (삼성 안지만)
▶선천적으로 좋은 볼을 가지고 있다. 발전 가능성이 아주 큰 선수라고 보고 있다. 작년보다 올해, 전반기보다 후반기에 점점 더 좋아지는 느낌이다. 그런데 힘이 너무 들어가 있다. 쓸때와 뺄때를 구분해야 한다.
-감독님께서 보신 김일경은 어떤 선수라고 생각하시며 한 가지 단점을 지적해 주신다면 어떤게 있을까요.(넥센 김일경)
▶탐나는 선수다. 어마어마한 센스를 가지고 있다. 센스만큼은 리그 최고급이다. 하지만 자기 개발이 안돼 있다. 연습량, 자세, 생각 등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 제가 21세때 감독님이 해태 2군 감독으로 오셨던 게 기억납니다. 그때 제가 우겨서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했는데, 제가 투수로 남았다면 어땠을까요. (SK 이호준)
▶(웃으면서) 기억난다. 성격상 투수는 안됐을 거다. 차분해야 하는데 너는 항상 쾌활하다. 그리고 몸 자체도 뻣뻣하다. 타자로 전향한 건잘한 거라고 본다. 그리고 호준이 너는 한 우물을 파는 그런 자세가 좀 아쉽다.
-감독님을 만나서 너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예전 LG 시절 하루에 7000개씩 배팅을 친 기억이 납니다. 훈련 끝나면 탈진해서 쓰러지곤했는데. 쓰러졌을 때 저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SK 최동수)
▶훈련시킬 때 인정이 별로 없다. 성과를 내는 게 중요하다. 과정은 중요하지 않다. 제일 중요한 건 무엇을 얻었냐, 내일은 뭘 할까를 생각하는 것이다. 동수는 의지와 집념이 대단했다. 그때 다른 LG 선수들은 다 떨어져 나갔는데 혼자 끝까지 하더라.
-감독님과 함께 야구했던 몇 해 동안 기량이 발전했다는 것을 요즘 새삼스럽게 느낍니다. 하지만 훈련을 할 당시에는 엄청 힘들었어요. 감독님께서는 힘들어하고 있는 선수들의 마음을 아시나요.(LG 이진영)
-난 단 한차례도 선수가 불쌍하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강한 훈련에 대한 질문이 계속 이어지자 득의의 미소를 띄며) 사실 시키는사람도 힘들다. 너네들은 내가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않냐. (김 감독은 심한 디스크로 시즌이 끝난 뒤 수술할 예정이다. 그러나 특타와 맹훈련을매일 거르지 않는다)
- 감독님 빵을 너무 좋아하시는데, 왜 그렇게 빵을 좋아하세요(SK 최동수)
▶특별히 빵을 좋아한다기 보다 가장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어서 그런 것 같다. 밥은 차려야 하고, 라면도 끓여야 하는데, 빵은 그냥먹고 다음에 일하기가 좋다. 야구에 집중하기 가장 좋은 음식이다.
- 감독님, 1년차가 끝난 뒤 저의 재계약을 결정하셨습니다. 저의 어떤 면을 보고 재계약을 결정하셨나요.(SK 카도쿠라)
▶(여기에서도 김 감독 특유의 유머가 폭발했다. 잠시 생각하더니) 턱이 길어서 그렇다. 농담이고. 성실했고 가능성이 보였다. 포크볼이 좋다고 들었는데 지난해 봄에 들어왔을 때는 직구와 포크 모두 좋지 않았다. 그런데 가을에 보니 많이 성장해 있었다.
-감독님께서는 선발투수를 교체하실 때 어떤 모습을 보시고 판단하시나요.(LG 김광삼)
▶(선수들의 고민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김 감독의 눈빛이 더욱 진지해진다) 음. 여러가지다. 쿠세(투구시 습관적인 동작), 구위, 상대타자, 폼의 무너짐, 스코어 차이, 볼 개수, 그리고 그날의 흐름 이런 것을 종합적으로 판단한다.
-얼마전 신문을 보니 항상 혼자서 식사를 하시는 걸로 보도됐습니다. 간단한 이유는 있었는데요. 밝히시기 힘든 다른 이유가 있으신가요.(넥센 강정호)
▶원정경기 때 주로 혼자 식사하는데, 경기 준비 과정이다. 시간이 절약되고 집중된다. 나는 머리 회전이 빠른 사람이 아니다. 생각이 산만해지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사람들과 어울리다보면 떠오르는 생각을 까먹을 때가 많다. 혼자 고민하다보면 떠오르는 생각들이 많다. 그래서 나는 혼자다니는 걸 즐긴다. 혼자는 외롭지만, 내 자신에게 채찍질하는 과정이다. 일부러 그렇게 한다. 나를 극한 상황에 몰아넣고 극복하려한다. 우승 승수를 90승, 86승으로 지정하는 것도 마찬가지 과정이다. 예전 쌍방울 감독 시절 현대가 막강했다. 우리 아이들은 살림살이도 좋지 않아 기가죽곤 했었다. 그때 일부러 현대에게 싸움을 건 적도 있었다. 투쟁심을 일으키기 위해서 그랬다. 선수들도 자극을 받아 현대만 만나면 잘 싸웠다.
-야신이라 불릴 정도로 최고의 자리에 계시는데 도대체 감독님 야구의 최종목표는 뭔가요.(SK 이호준, 한화 김태완)
▶최종목표? 글쎄 있을까. 내가 생각할 때는 끊임없는 도전이다. 야구는 인생과 똑같다. 영원히 모르면서, 이해를 못하면서 쫓아간다. 갈수록 신비롭다. 투수가 공을 던지면 똑같은 볼이 없다. 참 어렵다. 굳이 말하자면 한국야구의 발전을 위해서 뭔가를 열어줘야 한다는 느낌이 있다. 야구를 위해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지도자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 지에 대한 것을 제시하고 싶다. 내가 가르친 제자들이 아마추어에 반이 넘는데, 나는말보다 행동으로 가르친다. 내가 공부를 해야, 지도자가 공부를 해야하는구나라고 생각할 것이다.
-감독님이 평소 가장 껄끄럽게 생각하는 팀은 어디인가요. 그리고 정말 데려가고 싶은 선수를 콕 찍어서 한명만 말씀해 주신다면 누가 있을까요.(삼성 박한이)
▶사실 승부가 다 껄끄럽다. 약하니까 승부 자체가 쉽다는 건 있을 수 없다. 승부라는 건 그 자체가 깊다. 얕은 승부를 하는 야구는 없다. 1대1, 팀과 팀의 모든 승부는 그래서 항상 힘들다. 데려다 쓰고 싶은 선수? (단호하게 얘기한다) 투수는 류현진이다. 타자는 이대호. 부드럽고, 성격이 좋다.
-2000년 신인시절, 제가 처음 2군에 내려갔을 때 감독님께서 피칭 훈련을 굉장히 많이 시키셨습니다. 훈련 강도가 높아 그때 죽는줄 알았습니다, 하하. 야구계에는 공을 많이 던질수록 좋다는 의견과 반대 의견이 있습니다. 감독님이 생각하시는 공을 많이 던지는 것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한화 류현진, 삼성 배영수)
▶올바른 자세로 공을 던지면 근육이 강화된다. 그것을 통해 요령을 알게 된다. 우리 뿐만 아니라 미국 야구도 투구수나 이닝을 조절하는 부분이 많다. 전문화된 것은 좋은데, 그 와중에 부작용이 자꾸 생긴다. (훈련부족으로) 선수들의 기량이 후퇴하고, 정신적인 나약함도 동반된다. 메이저리그에서도 텍사스 같은 구단은 투수들이 많이 던진다고 들었다. 과거의 나쁜 것은 고치고, 좋은 것은 이어가야 하는데, 좋은 것도 폐기하는 것 같다.
-24시간 내내 야구 생각만 하면서 평생을 보내온 걸로 알고 있습니다. 가끔은, 야구가 지겹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 않으신가요. 뭔가다른 걸 해보고 싶다는 고민을 해보신 적은 있으신지요.(삼성 정현욱ㆍ김 감독이 굉장히 좋아하는 투수. 팀동료들이 '아들'이라고 부른다)
▶(너털웃음을 짓는다) 그런 건 없다. 야구를 할 수 있는 것밖에 능력이 없어서 다른 생각은 없었다. 직업이 야구고, 취미가 야구고, 특기가 야구다. 질린다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건데. 야구는 자꾸자꾸 나온다. 새로운 것을 찾아다니면 또 다른 부분을 보게 된다. 지금 방금 전에도 데이터를 보다보니 새로운 게 나와서 보고 있는 중이다.
-한-일 야구를 다 경험하셨는데 한-일 야구의 차이점을 세부적으로 짚어주세요.(KIA 이종범)
▶힘은 한국이, 기술은 일본이 위다. 예전에 차이가 많았는데, 지금 근접했다. 그만큼 한국야구가 발전했다. 그런데 최근에 조금씩 뒤처지는 부분이 있다. 자기 스스로 생각하는 야구는 일본보다 한참 모자란다. 스스로 생각을 해야 경기력의 기복을 줄이고 슬럼프를 스스로 헤쳐나갈 수있다. 우리 선수들은 스스로 뭐를 해야하는 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창조력이 부족하다. 어릴 때부터 너무 지도받는 것에만 익숙해져 있다. 프로감독 위치에서 아쉬운 부분이다.
-수염을 안 깎던 감독님의 징크스가 지난번 언론에 공개됐는데, 지금 가지고 계신 징크스 좀 소개해주세요.(KIA 김상현)
▶지면에 다 써도 모자란다. 따지기 시작하면 어마어마하게 많다. 아침에 일어나고 밤에 잘때까지 징크스 속에서 살고 있다. 승부세계는 살아남는사람이 승자다. 2등도 아무것도 아니다. 정상에 서기 위해서 징크스에 매달리고 쫓아다닌다.
-감독님의 야구에 대한 열정은 후배들도 존경하고 배우려고 하고 있습니다. 경기를 하시다 보면 힘든 일도 있고 스트레스도 있으실텐데 평소에 건강관리를 어떻게 하시며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시는지요.(두산 김경문 감독)
▶김 감독도 알겠지만 가만히 있으면 스트레스가 쌓여서 안된다. 머리가 진짜 터질 것 같다. 예전에는 술을 많이 먹었다. 쌍방울, LG 감독시절에 그랬다. 근데 올해는 술을 많이 줄였다. 취한 적은 2번 정도. 대신 운동을 한다. 최근에는 문학구장에서 송도 집까지 2시간 정도 걸어다닌다.
-제가 프로 1세대로 선수 시절에는 감독님께 하루에 1000개의 펑고를 받기도 했는데요. 그때와 지금 감독님이 시키시는 연습량이 다른지요.(두산 김광수 코치)
▶근본적인 것은 똑같다. 지금도 그때도 절실함이 항상 있다. 요즘 조금 줄기는 했다. 예전보다 좀 더 부드러워졌다. 예를 들어 예전에 정명원에게 500개의 연습투구를 시켰다면 꼭 해야했다. 하지만 지금은 양보하는 부분이 조금 있다. 장, 단점이 있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트레이드한 박현준에게 미안하다. 정명원같이 연습시켰으면 좀 더 나은 선수가 됐을 텐데.
< 인천=류동혁 기자>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기자가 정말 궁금한 것이 있었다. 그에게는 수많은 별명들이 있다. 그 중 어떤 별칭을 가장 좋아하는지 알고 싶었다. 김 감독은 "잠자리 눈깔"이라고 했다. 잠자리 눈은 360도를 다 볼 수 있다. 김 감독은 "태평양 시절부터 '잠자리 눈깔'이라는 별명이 있었다. 유독 애착이 간다. 지도자는 '잠자리 눈깔'처럼 세심해야 한다. 앞도 보고 뒤도 봐야 한다"고 했다.그러면서 "실제 선수를 1대1로 지도할 때 나는 지도하는 선수를 보는 척하면서 다른 선수들의 움직임을 살핀다. 그래야 그라운드 전체에 긴장감이 돈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실 김 감독에게는 '야신(야구의 신)'이라는 멋들어진 별명이 있다. 2002년 LG 사령탑 시절 한국시리즈에서 만난 삼성 김응용감독이 지은 별명이다. 삼성이 4승2패로 우승반지를 가져갔지만, 김성근 감독의 상대의 허를 찌르는 작전능력과 용병술에 감탄해 나온 별명이다. 그러나 김 감독은 "내가 야신이면, 야신을 이긴 사람은? 코끼리"라며 파안대소 했다.)
출처 : http://sports.news.nate.com/view/20100816n1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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