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0.26
"어려운 상황에서도 마음만 굳게 먹으면 해낼 수 있다는 메시지"
"완벽 우승은 없다…마지막 경기를 이기자는 게 목표"
(인천=연합뉴스) 고동욱 기자 = 3년 전 예순다섯의 나이에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정상에 오르며 한을 풀었던 노감독은 어느새 한국 프로야구에 자신만의 '왕조'를 이룬 주인공이 됐다.
2007~2008년 2연패를 달성하고 지난해 준우승으로 숨을 골랐던 김성근(68) 감독은 지난 19일 끝난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에 4연승을 거두고 가볍게 세 번째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1984년 프로야구 감독 생활을 시작해 2007년에야 24년 묵은 우승 한을 풀었던 김 감독은 이젠 한결 편안해진 표정으로 야구와 우승 이상의 사회적 의미를 이야기했다.
25일 문학구장에서 만난 김 감독은 "사회적으로 약자들에게 '포기하지 않으면 살아날 수 있다'는 메시지를 SK 야구가 줬다고 생각한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그러면서도 "쉬운 우승은 없었다. 찾아온 기회를 잘 포착한 덕에 우승을 달성할 수 있었다. 준비 과정만큼은 어느 때보다 힘들었다"고 돌아봤다.
이날 어김없는 특타 훈련으로 우승 후 첫 연습을 시작한 김 감독은 "올해 SK의 목표는 '마지막 시합을 이기자'다"라며 내달 대만과 일본 프로야구 우승팀과 벌이는 최강전에서도 승리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전했다.
다음은 김성근 감독과 일문일답.
--2009년 준우승에 그쳤다가 다시 우승을 차지했다. 느낌이 남다를 것 같다.
▲두 번을 우승했다가 떨어진 다음에 다시 올라가기는 특히 어렵다. 올해는 부상 선수가 많아서 더 어려울 것이라 예상했는데 압도적인 성적으로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하고 한국시리즈에서도 4연승으로 우승했다. 준비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느꼈다. 또 최악의 상황에도 마음가짐만 굳게 먹으면 얼마든지 지탱할 수 있다는 교훈을 야구를 통해 한국 사회에 던져준 값진 한 해라고 생각한다.
--2008년에 우승하고 나서 "다음엔 '완벽 우승'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 목표엔 접근했나.
▲야구는 항상 완벽을 추구해야지, 어지간하게 해서는 순간순간 대처는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오래 할 수는 없다. 사실 우리 팀은 그동안 특별한 전력 보강이 없었다. 대형 자유계약선수(FA)나 거물 신인을 영입한 것도 아니다. 다만 그런 상황에서 연습을 거듭하며 조직력을 다듬었고, 뚜렷한 목적의식을 바탕으로 하나가 됐다.
--결과적으로는 정규리그 우승에 이어 4연승으로 한국시리즈를 끝내며 완벽한 결과를 얻었다.
▲밖에서 보기와 달리 실제로 팀을 꾸려가기는 쉽지 않았다. 어려운 시기가 많았다. 올해 시즌 시작하자마자 3연승을 달리다 1패를 했고, 다시 1승을 거두고 3연패를 했다. 나는 그때가 가장 위기라고 생각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집으로 걸어가면서 나 자신을 돌아봤다. 그러면서 '남 탓을 하지 말고 내가 해결해야겠다. 선수가 아니라 나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일부러 머리를 짧게 밀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 후로 경기마다 '내가 왜 머리를 깎았나' 스스로 질문을 던졌다. 그렇게 16연승을 거뒀다.
이후로도, 정말 완벽하게 한 해를 마쳤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중반 2위와 승차가 10경기 이상 났을 때 더 달아났어야 했다. 단계적으로는 어느 정도 계획대로 가긴 했지만, 그러고도 막판 삼성에 쫓겼다. 다행히 삼성이 막판에 쫓아온 것이 약이 됐다. 압박을 받으면서 팀이 강해졌다. 그것이 한국시리즈에서 4연승을 거둔 원동력이 됐다고 본다. 끝없이 추격을 당하면서도 결국 뒤집히지 않고 1위를 버텨냈기 때문이다.
--삼성과는 2007년 부임 이후 포스트시즌에서 처음 만났다.
▲굉장히 부담스러웠다. 두산은 여러 번 붙어 봐서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를 알고 있지만 삼성과 큰 무대에서는 처음이었다. 삼성은 SK가 우승하기 전까지 한국시리즈 2연패를 달성했던 팀이다. 그런 명성과 대구라는 장소 등 신경쓰이는 부분이 많았다.
--무엇에 가장 중점을 두고 준비했나.
▲시즌 동안 삼성에 자주 압박당했던 이유를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한국시리즈까지 20일 쉬는 시간을 잘 이용한 것이 승인이었다. 그 시간이 정말 힘들었다. 한국시리즈에 나설 엔트리를 결정하려고 정말 가혹하게 연습을 시켰다.
한국시리즈를 준비하는 과정이 지난 3년과는 전혀 달랐다. 확고하게 선발 투수를 정해놓지도 못했고, 예전에 조직력 위주로 훈련을 시켰다면 올해는 조직에는 30% 정도밖에 비중을 두지 않았다. 나머지 70%를 개인 훈련에 할애했다. 특히 투수와 타자 각각 2명씩을 집중 훈련했다. 그들이 핵심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렇게 강한 팀이 아니다. 중요한 몇몇 선수들이 올라오지 않는다면 승산이 없다고 생각했다.
--2007~2008년 우승하고 나서는 '여유'를 강조했는데, 올해는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 모두 빈틈이 없게 운영한 것 같다.
▲아니다. 이번에도 준비 과정에서는 치열하게 덤볐지만 경기를 치르는 동안은 여유 있게 가려고 했다. 시합을 치르는 동안에는 게임에 들어가기보다 바깥에서 지켜보려고 했다.
경기를 치르면서 점점 긴장하다 보니 3차전 8회부터는 게임에 들어가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가능한 경기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자제했다. 경기 안에 들어가 버리면 한 가지 길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주변을 놓치고 결과를 쫓아다니는 꼴이 된다. 투수를 올려놓고 '이번에 얻어맞지 않아야 하는데'라고 빌고만 있는 셈이다. 반대로 경기 밖에서 보고 있으면 불안해하는 대신 미리 결과를 예상하고 대처할 수 있게 된다.
2002년 LG 감독이던 때에는 이기려고 많이 덤볐다. 그렇게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악수 아닌 악수를 쓰게 될 때가 잦더라.
--시즌 중반 16연승을 하면서 수염을 깎지 않아 화제를 모았다. 한국시리즈에서도 특별히 지킨 징크스가 있나.
▲앞서 말한 첫 위기 때 머리를 깎은 이후 어려울 때마다 머리를 짧게 밀곤 했다. 정규리그 1위 달성의 분수령으로 꼽히던 9월19일 삼성과 대구 경기 전에도 머리를 밀었고, 한국시리즈 직전에도 그렇게 했다. 그게 올해 새로 생긴 징크스다.
--대만, 일본 우승팀과 경기 전에도 다시 한 번 짧게 깎으시겠다.
▲그때는 지금 정도 길이면 충분할 것 같은데.(웃음)
--4년 내내 한국시리즈에 진출해 3번 우승을 차지했다. 매년 견제가 심해지는 것을 느낄 것 같다.
▲오히려 더 강해져야 한다. 항상 높은 곳에서 싸울 생각을 해야지, 낮은 곳에서 티격태격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SK는 압도적으로 강하다고 여겨지는 팀은 아니다. 하위권 팀에게도 1년에 7~8경기씩 지는 것이 SK다. 대신 그리 센 것 같지 않은데 경기가 끝나고 보면 승리하는 팀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설명했듯 한순간을 포착하는 것, SK 선수들은 그것을 할 줄 아는 것뿐이다.
--어떻게 그런 선수들을 키워내는 것인가. '혹독한 훈련'이나 '치밀한 준비'라는 단순한 말로는 설명이 안 되는 것 같다.
▲나는 부정적인 사람이다. 부정적인 것을 긍정으로 바꿔나가며 살아왔다.
예컨대 올 시즌을 시작하면서 목표를 82승으로 잡았다. 어려운 목표였고, 내가 그것을 이루지 못해 고민할 때 다들 '엄살 부린다.'고 했다. 그러나 신념과 집념을 가지고 목표를 향해 가는 것이 중요하다. '82승은 할 수 없어'가 아니라 '82승을 어떻게 할 것이냐'를 고민하는 것이다.
모든 일은 최악의 상황을 설정해 놓고 가야 한다. 최악의 상황에 몰렸을 때 얼마나 할 수 있느냐가 인간의 능력이다. 그래서 선수들을 극한으로 내몰았고 거기서 버틸 수 있게 만들었다.
연습을 많이 하더라도 생각을 하지 않고 단순히 시켜서 하는 거라면 흉내 내는 것에 불과하다. 늘 선수들에게 '흉내를 내더라도 자기 것으로 만들어라'고 강조한다. 같은 과정을 거치더라도 내가 느끼는 과정과 고통은 남과 다르다. 하다못해 스윙 자세를 바로잡는 것도 선수마다 다르다. 그것을 스스로 깨닫고 체화해야 한다.
그것을 생각하고 깨달으려면 스스로 극한의 상황에 부딪혀야 한다. 나는 늘 절벽 끝에 선 심정으로 살아왔다. 그곳에 서면 아무도 나를 도와줄 수 없다. 작은 바람만 불더라도 떨어져 버릴 수 있는 극한에서 비로소 남의 도움 없이 혼자 길을 찾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이들은 벼랑 끝이 아니라 너른 평지에 서서 내가 하는 야구를 답답하다고 손가락질한다. 그들이 느끼기엔 답답해 보일 수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비로소 살아남으려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훈련은 좋은 습관을 들이려고 하는 것인데, 평지에서 하고 있으면 나쁜 습관을 그대로 끌고 가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정규리그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할 때마다 매번 "이게 SK 야구"라고 흡족하게 말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예전에 그저 승패에 연연하며 살았다면 이제는 야구로 사회적 의미를 던져줬다는 뜻이다. 어렵게 사는 사람들에게 "우리를 봐라. 우리는 최고의 선수들로 구성되진 않았지만 최고의 팀이 됐다"고 희망을 주는 것이다. 우리는 선수가 부상으로 빠지는 등 수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최고의 성적을 냈다. 전쟁터와 같은 세상에서,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부족하더라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믿음을 줬다는 뜻이다.
실제로도 우리 야구를 보고 힘을 냈다는 불치병 환자 등 어려운 사람들의 사연을 종종 전해 듣는다. 그런 희망을 주는 것이 SK 야구다.
--한국시리즈를 끝내고 상경해 3월 정규리그를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집에 들어갔다고 들었다.
▲그렇다. 숙박 요금 4만원을 내고 나왔어야 하는데.(웃음)
--자주 집에 들르지 못하니 가족에게 미안하겠다.
▲물론 미안하다. 하지만 나에게 기댄 사람의 가족이 더 많다. 선수와 코치들, 구단 직원들까지 수많은 사람과 그 가족이 내게 기대고 있다. 그들을 생각하면 감독으로서 책임을 소홀히 할 수는 없다. 우리 가족도 그 점만큼은 이해해 줄 것이다.
늘 '칭찬은 뒤로 받고, 비난은 가슴으로 받는다'는 마음으로 사는 것도 그 때문이다. 비난을 내가 정면으로 받아내지 않고 피하면 뒤에 기대고 있던 사람들이 더 아프게 맞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모든 비난을 내가 직접 받아내려 하는 편이다.
--이제 한국 나이로 일흔이 가까워졌다. 물러날 시기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나.
▲몸이 아파서 수술받은 지도 벌써 11년이 됐다. 하지만 연습을 쉰 적은 없다. 디스크 때문에 몸을 가누기 어려울 때도 직접 펑고를 치며 선수들을 가르쳤다. 책임과 의무를 다할 수 있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한국시리즈는 끝났지만 대만과 일본 우승팀과 최강전이 남아있다. 벌써 다음을 준비하고 있나.
▲당연하다. 지나간 것은 기록에 불과하며, 거기 도취해 있는 자는 패자일 뿐이다. 한국시리즈 우승 다음날 상경하는 길에 앞으로 계획을 고민했다.
SK의 올해 캐치프레이즈는 '마지막 시합을 이기자'다. 많이들 '이제 쉬어도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이대로 만족하는 수준이었다면 SK는 여기까지 오지 못했다. 항상 선수들에게도 "사람은 걸어간 다음에 길이 생겨야 한다. 아는 길만 가서는 안 된다"고 강조해 왔기에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당장 마지막 1승도 목표거니와, 거기에 더해 선수를 키우는 것도 염두에 두고 있다. 야구는 정말 끝이 없다.
출처 : http://sports.news.nate.com/view/20101026n040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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