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박재홍 선수를 처음 알게된건 한참 현대 유니콘스를 응원하던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졸신인 1순위 지명을 받고 입단한 박재홍은 그야말로 거칠것이 없던 무서운 신인이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홈런타자는 덩치가 좋은 대신 발이 느리고, 발이 빠른 교타자는 날렵하긴 하지만 똑딱이라는 편견아닌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터라 홈런과 도루의 상관관계는 온라인 게임하는 시간과 학업성적의 관계 만큼이나 반비례 함수라는 것을 알고 있던 나에게 홈런도 잘치면서 도루까지 잘하는 선수란 만화에나 등장할법한 그야말로 '말도안되는' 선수였다.

이전까지 '20-20 클럽'이라는 것 자체가 생소했던 프로야구판에 신인이 '30-30 클럽'이란 전무후무할(전무하였으나 후에 몇명이 더 나왔다) 기록을 달성했을때 신인왕을 넘어 MVP도 가능하리라 봤지만 아쉽게도 신인왕 타이틀만 차지하고 말았던 기억이 난다.

당시 박재홍 선수의 활약이 워낙 대단했던터라 광주 출신의, 광주일고를 졸업한 박재홍 선수에 대한 타이거즈 팬들의 부러움섞인 애증(?)은 말도 못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광주 원정경기에서 야유는 물론이고 늘 '고향을 팔아먹은 놈'이라는 욕까지 들었을 정도였으니까.(10년이 넘게 지났음에도 이유는 다르지만 사직구장에서 원정경기를 할때 박재홍 선수가 등장하면 자이언츠 팬들에게 여전히 야유를 듣고 있다는 사실은 참 씁쓸하다.)

타석에 들어서면 몸쪽공도 마다하지 않고 공격적으로 바싹 붙어서는 것은 물론이요 배터박스 앞쪽에 서서 타격시에 왼발을 내딛을 때 배터박스를 그려놓은 하얀 횟가루를 전부다 쓸어버릴 정도로 독특한 타격폼 이었는데 그로인해 당시 쌍방울 레이더스 사령탑이었던 야신 김성근 감독께서 박재홍의 타격폼이 배터박스를 벗어난다며 주심에게 항의하던 모습도 불현듯 떠오른다. ㅎㅎ

또한 루상에 나가서는 항상 한베이스를 더 훔치고자 큰 리드폭에 왼손을 옆으로 쭉뻗어 언제든 견제에 대비하는 독특한 자세를 취했고 심한 견제를 뿌리치고 도루를 성공시키는 모습이란 응원하는 팬 입장에서는 대단했지만 상대팀이나 팬들 입장에서는 하여간 루상에 나가면 짜증나는 선수중 하나였을게 분명했다.

수비도 지금이야 가끔 우익수를 보고 그나마 타이트한 경기가 진행될 때는 경기후반 대수비로 교체되고 있지만 당시엔 중견수를 봤었고 빠른 발을 이용해 지금 SK 와이번스의 김강민 선수 못지않은 멋진 호수비도 여러번이었으며 어깨도 상당히 강했던걸로 기억한다.


지금이야 5-Tool이니 어쩌구 하지만 그런 용어조차 생소했을때 박재홍이란 선수는 모든것을 다 갖춘, 전혀 약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런 강한 선수였다. 아마야구 시절부터 이미 워낙에 명성이 높았으니 '리틀쿠바'라는 그의 별명은 명불허전이 아니었을까 싶다.


재작년 OBS에서 방영된 <불타는 그라운드2>의 박재홍 선수편을 봤을때 나이를 먹고 어느새 노장축에 속하는 선수가 되어, 2007년 김성근 감독님 부임이후 야구인생에서 처음으로 주전이 아닌 선수가 되는 플래툰 시스템의 일부가 되었지만 꾸준히 노력해서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 2007년 한국시리즈 우승후 김성근 감독과의 진한포옹. 이 한장의 사진이 참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


'빵재홍 사건'이나 롯데 김일엽 선수와의 '빈볼시비' 등 여러가지 본질과 다른 오해와 언론의 여론몰이, 일부 타팀팬들의 야유와 질시속에 우울증 증세까지 겪었다는 말을 듣고 보니 10여년전 내가 좋아했던 약점이 하나도 없는 완벽함 그 자체의 박재홍 선수가 아닌 나약한 하나의 인간이기에 가슴이 짠했다.

한편으로 '빵재홍 사건'의 범인이 누군지 알지만 밝히지 않는다고 하면서 '빵좀 먹으면 어떠냐? 배고프면 빵 먹을수도 있는거지'라고 말했던 것과 '롯데팬들에게 고참으로서 경솔한 행동을 보여 사과드린다'는 그의 말에서 성숙한 '대인배'로서의 박재홍 선수를 보게 되어 무척이나 기뻤다.

김성근 감독님의 말씀처럼 진심은 언젠가 통하게 되어있기에 박재홍 선수의 팬으로써 그의 진심을 믿으며 누가뭐래도 끝까지 그를 응원할 것이다. 비록 전성기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앞으로도 은퇴하는 날까지 그의 멋진 활약을 기대해 본다.

300-300의 대기록이 작성되는 그날을 기다리며...

Posted by 개살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