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1.18

84년 후기리그 종료를 2경기 남겨둔 시점에서 선두 롯데는 27승20패1무. 2위 OB는 26승21패1무로 1게임차였다. OB가 남은 해태와의 2연전을 모두 이길 경우 롯데는 삼성과의 잔여 2연전을 모두 이겨야만 후기리그 우승을 확정하고. 만약 1승1패에 그치면 양팀간의 우승결정전을 치러야했다.

이미 전기리그 우승을 확정한 삼성 김영덕 감독은 김성근이 이끄는 OB가 껄끄러웠다. 삼성은 그해 OB에 9승11패로 열세였을 뿐만 아니라 9월 19일 대전에서 에이스 김일융을 선발로 투입하고도 0-11로 대패했다. 삼성으로서는 롯데가 최강 에이스 최동원이 있다는 점만 빼면 두려울 것이 없다고 판단했다. 삼성은 김일융과 김시진의 원투펀치를 비롯해 마운드에서 우위에 있고. 방망이도 롯데보다 낫다고 여겼다. 더군다나 삼성은 전기리그에서만 롯데를 9승1패로 압도해 자신감이 넘쳤다.

9월 22일과 23일. OB는 제주에서 해태에 11-9. 6-2로 승리했다. 그러나 삼성은 부산 구덕구장에서 22일 롯데에 3회초까지 7-0으로 앞서다 9-11로 역전패했다. 삼성이 지려고 마음 먹은 것까지는 전략일 수도 있었지만 손발이 맞지 않아 ‘3류연극’으로 전락하면서 고의패배는 탄로가 나고 말았다. 삼성은 또 23일 최종전에서도 1회초 먼저 3점을 얻은 뒤 어설픈 연기로 롯데에 8-15로 역전패하고 말았다.

특히 최종일에는 OB가 먼저 경기를 끝낸 상황이었다. 김성근은 숙소로 가기 위해 버스에 올랐을 때 삼성이 3점을 앞서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전날 삼성의 져주기가 있었던 터라 ‘오늘도 혹시’하는 불안한 마음이 있었지만 속으로는 ‘오늘도 설마’라며 실낱같은 기대가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호텔에서 사우나를 마치고 나와보니 경기가 뒤집혔다.

제주까지 내려온 박용곤 구단주와 밤새 술을 퍼마셨다. ‘필름’이 완전히 끊겼고. 한 선수의 부축을 받고 겨우 숙소에 들어갔다. 알콜로 아픔을 마취시켜버린 제주의 밤이었다.

아무튼 김성근은 프로 감독 첫해에 놀라운 승부사 기질을 보였다. 신인투수 윤석환을 국내 최초로 본격적인 마무리투수로 만들면서 구원왕과 신인왕으로 만들고. 컨트롤 문제로 강속구를 살리지 못하던 계형철을 11승투수로 키워냈다. 국내에서 가장 먼저 철저하게 2군을 운영한 것도 김성근의 새로운 시도였다. 전?후기리그를 통틀어 OB는 종합승률 1위에 올랐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전기리그와 후기리그 우승팀만 한국시리즈에 진출하게 되는 당시 제도에 따라 김성근은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했다.

역사에 가정법은 없다지만 만약 84년 프로감독 첫해 삼성의 고의패배가 없었다면 한국야구사는 물론 김성근 개인의 역사 또한 어떻게 달라졌을지 모른다. 아무튼 김성근은 그렇게 프로감독 첫해에 ‘아픔의 첫단추’부터 끼워넣었고. 20여년간 가을마다 ‘아픔의 굴레’ 속에 살게 된다.

이재국기자 keystone@

출처 : http://news.sportsseoul.com/read/baseball/488614.htm?ArticleV=old

Posted by 개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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