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강팀 감독이 시즌전부터 시즌중까지 모조리 바뀌는 사태에 올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9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한 불명예를 남긴 LG 트윈스의 박종훈 감독마저 3년이라는 계약기간이 남았음에도 '자진사퇴'라 쓰고 '경질'이라 읽어야 하는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신생팀 NC 다이노스는 김경문 전 두산감독으로 내정되었고 SK 와이번스야 사실상 이만수 감독대행이 시즌후 정식 감독으로 취임할 것이기에 결국 남은건 두산 베어스와 LG 트윈스의 두자리인데 스토브리그는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건만 유례없는 감독의 대이동이 벌어질 전망이다.

그중 가장 관심을 갖게되는 사람은 당연히 김성근 감독과 선동열 감독인데 페넌트레이스가 거의 끝나가는 시점이던 9월말, 10월초부터 각종 야구게시판과 SNS를 중심으로 [LG - 김성근, 두산 - 선동열]이라는 '카더라 통신'이 급속히 퍼졌고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네티즌의 지인 혹은 익명의 구단 관계자의 말을 빌어 거의 기정사실화 되는 분위기였다.


- 2002년 LG 트윈스 감독 시절의 모습. 재림설이 불거지자 당시 김성근 감독의 등번호이던 76번을 마킹하고 인증하는 팬까지 생겼다. -


명문구단을 자처하지만 2002년 한국시리즈 준우승후 김성근 감독을 경질시킨 이후 9년동안 가을야구를 하지 못하자 '야신의 저주'라 표현한 감독의 무덤이자 독이 든 성배인 LG 트윈스의 감독자리는 시즌말부터 팬들을 중심으로 강력한 카리스마와 능력이 검증된(혹자는 KBO 30년 역사상 FA 감독 최대어라고 표현) 김성근 감독을 모셔와서 결자해지 해야 된다는 분위기로 모아졌다.

또한 김성근 감독에 대한 향수 혹은 잃어버린 LG 트윈스의 마지막 가을야구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는 LG 트윈스의 올드팬들과 엘롯기를 생선뼈 바르듯 스윕하던 천적관계의 상대팀 감독이 아닌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감독으로 오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 젊은 팬들, 그리고 SK 와이번스에서 김성근 감독이 경질되는 일련의 사태를 목도하며 SK 와이번스에 정이 떨어져버린 팬들까지 당장 펼쳐지는 준플레이오프보다 더욱 설레고 기대하며 구단의 공식 보도만을 기다렸던 것도 사실이다.


- 사도신경의 패러디 잠예신경 -


늘 그래왔지만 김성근 감독이 거쳐간 구단의 고위관계자와는 뒤끝이 좋지 못했으나 LG의 가을야구를 위해서는 구단주가 나서서 지난날의 잘못을 정중히 사과하고 김성근 감독의 요구대로 모든 전권을 위임하여 삼고초려해야 한다는게 팬들의 중론이었고 청원릴레이까지도 벌어졌다.

사실 2002년 기적적인 준우승을 한뒤 김성근 감독이 LG의 팀컬러인 신바람 야구와 맞지 않는다는 얼토당토 않은 이유로 경질했을 때도 일부 어용팬클럽을 중심으로 구단을 옹호한 팬들이 적지 않았고 지금도 그의 야구 스타일을 싫어하는 LG팬들도 상당수 일 것이다.


- 지난 4월 시즌초 인터넷 게시판 LG팬의 댓글. 하지만 시즌종료후 저런 글을 찾아볼 수 없다. -



하지만 술과 매에는 장사없듯 계속되는 4강 탈락에 해법은 오직 김성근 감독 뿐이라는 결론으로 팬심은 대동단결했고 박종훈 감독 사퇴 이후부터 신임감독 선임 직전까지 그 분위기는 절정에 달했다.

SK와이번스에서 5시즌을 이끌며 1-1-2-1의 성적으로 '인천예수'라는 별명을 얻은 것에 빗대어 '잠실예수', LG의 Jesus라는 의미인 '쥐쟈스'라는 별명까지도 이미 만들어졌다.


- 잠실예수, 쥐쟈스의 패러디 사진 -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보니 김기태 2군 감독의 내부승진으로 결론났고 팀을 리빙딩 해달라는 이유로 5년 계약을 보장하며 임명했던 초보 박종훈 감독을 성적부진의 이유로 2년만에 내치고 또다시 초보 감독을 선임한 구단의 처사에 김기태 감독의 능력 여부를 떠나 팬들이 폭발하고야 말았다.

정작 김기태 감독은 취임식도 하기전 LG 트윈스 홈페이지의 게시판 쌍둥이마당에 사퇴 릴레이가 벌어지는 사태에 이르자 구단은 재빠르게(?) 게시판을 폐쇄해버렸다. (며칠후 다시 원상복구했고 구단측은 고의가 아닌 서버이상이라 주장하지만 그말을 믿을사람이 누가있을까?)

이쯤되면 뭔가 비슷한 트라우마가 떠오른다. SK 와이번스와 이번 LG 트윈스 구단(프런트)의 처사는 유사하게도 닮았다. 팬들의 요구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말로는 팬이 우선이라 외치면서 정작 중요한 순간 팬들의 의사에 반하는 뒷통수를 치고 프런트의 입맛에 맞는 행정만 펼치고 소통을 외치면서 자신들이 불리할땐 홈페이지 게시판까지 폐쇄해버리는 대범함까지.


- 이광용 아나운서의 트윗. 모두가 아는 '해법'을 왜 구단은 알지 못할까. -


상식이 있다면 야신 김성근 감독을 놔두고 김기태 감독을 선임하겠는가 라며 LG 트윈스 팬들은 내심 김성근 감독의 부임을 바래왔지만 멀쩡하게 팀을 잘 이끌던 전년도 우승팀 감독을 하루아침에 내치는 구단도 있는 판에 자신들의 다루기 어려운 사람보다 親프런트의 사람을 택하는 것은 어쩌면 구단(혹은 재벌) 입장에선 당연한 일일수도 있다. (어떤 네티즌은 LG 구단이 금광에 널린 금덩어리를 놔두고 똥덩어리를 집어들었다고 까지 표현함)

그동안 감춰왔던 자신들의 본색을 서서히 드러내는 프로야구판. 30년이라는 역사가 흘렀지만 언제쯤 진정으로 팬들을 위하고 스포츠에 정치가 개입되지 않은 스포츠 그 자체를 즐길수 있을지 모르겠다.


내년시즌 LG 트윈스와 SK 와이번스의 성적이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Posted by 개살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