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김성근 감독의 스타일을 잘 아는 팬의 한사람으로 자진사퇴는 어느정도 예상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기다렸다는듯 구단에서 하루만에 경질카드를 꺼내든 것을 보고 정말로 놀랐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만수 감독대행을 선의의 피해자라고 말했습니다. 저도 처음엔 수긍했습니다. 하지만 김성근 감독의 경질 이후 이만수 감독대행의 행보를 보니 선의의 피해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프로야구 감독이란 야구인이라면 누구나 꿈꿔볼만한 영광스러운 자리지만 그렇다고 누구나 될 수 있는 자리는 아닌 말그대로 선택받은 극소수의 사람만이 경험하는 자리입니다.

프로야구 창단 원년 멤버로서 뛰어난 성적과 팬서비스로 30년사에 길이남을 레전드 중 최다득표라는 영예를 얻은 이만수 감독대행은 그 커리어에 비해 감독운이 없었습니다. 본인보다 낫다고 할 수 없는 사람들이, 후배들이 사령탑으로 부임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부러움을 넘어서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2006년말 SK 와이번스의 수석코치로 부임하면서 후임 감독자리를 보장받는 조건으로 오셨는지, 그리고 김성근 감독이 얼마전 인터뷰에서 신영철 사장이 언급했다는 '양해를 구해야 할 후배 야구인'이 바로 이만수 감독대행을 지칭하는지 확실한 증거는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현역시절 2년여간 은사로 모셨던 김성근 감독님의 후임자리로, 그것도 사퇴선언후 경질이라는 구단 역사상 최악의 상황에서 예의 사람좋은 웃음을 띠며 기자회견에서 말씀하신 내용은 '감독대행'의 기자회견인지 '신임감독'의 기자회견인지 헤깔릴 정도더군요.

'1위를 하지 않아도 많은 관객이 찾아오는 야구'와 '365일 놀면서 하는 야구'는 이러한 시국에, 더군다나 그간 열악한 조건속에서 피땀흘려가며 지옥훈련을 통해 이뤄낸 지난 5년간 SK 와이번스의 성과를, 전임 김성근 감독을, 선수들을 모두 부정하는 말이었습니다.

갑작스러운 김성근 감독의 경질에 어리둥절해서 뭐가뭔지 모르겠다던 처음 인터뷰와는 달리 마치 이날만을 기다렸다는 듯 명문구단을 만들고 자신의 스타일대로 야구를 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한 것은 두산 베어스 김경문 감독의 자진사퇴로 역시 갑작스럽게 취임한 김광수 감독대행의 인터뷰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더군요.

어느 야구 게시판에 '인천예수'로 지칭되던 김성근 감독의 후임으로 취임한 이만수 감독대행을 '인천유다'라고 표현한 것을 봤습니다. 기독교인이 아닌 저도 알고있는 유다라는 인물을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신 이만수 감독대행이 모르실리 없을겁니다.

이만수 감독대행이 감독으로서의 자질 여부는 이번 사태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다만 일련의 과정에 대한 아쉬움을 넘어서 실망감이 더 크게 드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그동안 TV나 인터뷰를 통해 봐왔던 사람좋은 이만수 코치, 아니 감독대행도 결국 구단과 작당하여 김성근 감독을 밀어냈다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의 이미지란게 이렇게 한순간에 훅간다는게 뭔지 이번일을 계기로 다시한번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오매불망 꿈꿔왔던 감독이라는 자리를 비록 '대행'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지만 드디어 이루셨습니다. 하지만 어제 벌어졌던 홈관중의 모습과 주변 여론을 보니 축복받아도 시원치않을 잔치가 참 볼썽사납게 되어버려 이만수 감독대행님 마음이 상하셨겠지요.

현역시절 자신이 그토록 몸바쳐 뛰었던 삼성 라이온즈에서 말년에 비참하게 토사구팽 당하고 쫓기다시피 미국으로 유학을 가신 사연은 올드팬이라면 다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천하의 김성근 감독도 이렇게 하루아침에 쫓아내는 판에 SK라는 구단이 천년만년 이만수 감독대행을 옹호해주리라 착각하지는 마십시오. 김성근 감독에 비해 백배천배 더 쉽게 경질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흔히 첫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고들 합니다. 본인도 살고 팀도 살고 모두가 사는 법을 정녕 모르시겠습니까? 왜 다른 코치들도 동반사퇴를 하는지 모르십니까? 흡사 지금 이만수 감독대행의 모습은 독이 든 성배인줄도 모르고 자신을 위한 샴페인인양 착각하며 원샷하기 직전 건배제의를 하는 모습과도 같군요.

김성근 감독은 역대 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많은 팀을 옮겨다니고 가는 팀마다 모조리 경질을 당하는 수모를 겪었지만 역설적이게도 누구보다 오랫동안, 그리고 최고령의 나이로 감독생활을 했고 지금 잠시 멈추었지만 다시 진행형이 될거라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감독으로 취임하고 첫경기를 치른 이만수 감독대행님께 갑자기 이말을 묻고싶네요.

이만수 감독대행님, 감독되셔서
행복하십니까?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Posted by 개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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