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은 이땅에 야구가 가장 먼저 전파된 곳으로 구도(球都)라는 말이 가장 어울리는 지역이었다. 그러나 프로야구의 출범과 함께 인천야구란 꼴찌라는 말의 대명사나 다름없었고 그로인해 역대 가장 빈번하게 구단이 바뀐 불명예를 안고 있다.

게다가 현대 유니콘스라는, 인천야구의 역사에 메스가 있다면 도려내고 싶고 지우개가 있다면 깨끗이 지워버리고 싶은 아픈 과거가 올드팬들의 가슴 한켠에 여전히 상처로 남아있다.

현대 유니콘스가 인천야구와 팬들에게 첫번째로 커다란 영광을 안긴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나 치유할 수 없을 만큼 깊은 상처를 남긴 것은 그 영광을 전부 상쇄하고도 모자랄만큼의 충격 그 자체였다.

연고 구단이 하루아침에 인천에서 등을 돌리자 팬들도 야구에 등을 돌렸다. 그런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 것이 SK 와이번스라는 팀이었지만 굳게 마음을 닫아버린 인천 야구팬들의 마음이 하루아침에 빈집에 새둥지를 튼 SK 와이번스를 두팔벌려 환영할리 만무했다.

또다시 암흑의 역사는 반복되었다. 꼴찌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내세울만한 성적도, 팬도 없었다. 황무지같고 폐허로 변해버린 인천야구는 그렇게 인천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듯 했다. 그러던와중 태평양 돌핀스 시절 난생처음 인천야구에 가을야구라는 커다란 선물을 가져다 준 김성근 감독이 SK 와이번스의 사령탑으로 다시 인천야구와 두번째 인연을 맺으면서 마침내 정점에 이르게 된다.

현대 유니콘스의 배신으로 두번다시 찾아오지 않을 것 같았던 인천야구의 부흥은 너무도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부임 첫해 우승. 빼앗긴 인천야구의 들판에 다시 봄이 오는듯 했지만 그때까지도 사실 인천팬들은 SK 와이번스에게 100% 마음을 열지 못한채 뭔가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2007년 우승, 2008년 우승, 2009년 준우승, 2010년 우승. 4년 동안 가을야구는 기본이요 1-1-2-1 이라는 경이적인 성적으로 전어굽는 냄새를 인천에 풍겨 집나간 며느리 뿐만 아니라 떠났던 올드팬에 새롭게 야구에 눈뜬 젊은 팬들까지 가세해 야구장으로 몰려들게 만들었다.

2000년대 후반 강력한 왕조를 건설한 SK 와이번스는 인천야구사에, 아니 프로야구사에 큰 획을 그은 그리고 여전히 현재 진행형의 강팀으로 진화하며 팬들을 열광시켰고 SK 와이번스의 중심에서 전력의 8할 이상이라 평가받는 김성근 감독은 팬들에게 하나의 종교이자 신앙이 되어버렸다.

타팀팬이 비난할지언정 홈팀팬에게 가장 열렬하고 뜨거운 지지를 받는 유일한 감독. 그 어떤 프랜차이즈 스타 선수의 등장보다 감독의 등장에 더 큰 열광과 함성을 보내는 홈팬들. 팬들이 입은 레플리카나 유니폼에 누구 못지않게 많이 새겨진 이름 38번 김성근.

대다수 SK 와이번스의 팬들은 김성근 감독의 부임과 함께 SK 와이번스의 팬이 되었지만 이제는 SK 와이번스의 팬이 아닌 김성근 감독의 팬이 되어 그로부터 야구가 아닌 인생을 배우고 있다.

그러나 구단은 인천에 첫발을 내딧던 그때의 초심을 잊은건지 소통창구인 홈페이지 게시판을 말도안되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폐쇄시키고 '팬퍼스트'를 외치더니 김성근 감독 계약 만료의 해에 팬들이 그토록 염원해 마지않는 재계약은 커녕 김성근 감독 스스로 물러나도록 만들고야 말았다.

과연 그 어떤 구단에서 팬들이 먼저 나서 감독의 재계약을 집단적으로 청원한 사례가 있었고 감독의 사퇴에 이렇게 분노하고 반발한 경우가 있었던가.


아무리 역사는 반복되는 것이라지만 2002년 LG 트윈스가 한국시리즈에 진출하고도 감독을 해임시키는 극악무도한 선례가 또다시 재현되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안타깝다. 그것도 프로야구사에 있어 가장 아픈 상처를 지닌 인천야구의 팬들과 2002년 해임의 당사자인 김성근 감독에게서 반복된다는 것은 너무도 가혹하지 않은가.


- 이미지 출처 : http://meijinzwei.egloos.com/2462139 -



팀구호로 '최강 삼성', '무적 LG' 등을 주창하지만 인천야구의 아픈 과거를 보듬기라도 하듯 SK 와이번스의 팀구호는 8개구단 가운데 유일하게 연고지를 넣어 '인천 SK'를 외친다. 그것은 상처받은 인천 야구팬을 SK라는 팀으로 다시금 하나되게 만들고, 후발주자인 SK 야구단이 지역연고를 기반으로 하는 야구판에서 살아남기 위한 고육지책 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지역을 넣어 응원하는 마케팅은 이제 SK를 상징하는, 인천을 상징하는 구심점이 되었고 상처로 인해 닫아걸었던 팬들의 마음을 얻어내는데 성공했지만 이런식으로 팬들을 야구로부터 구단으로부터 등돌리게 만드는 처사는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할 수 없다. 

SK 와이번스의 10년이 조금 넘는 짧은 역사에 있어 프런트(구단)가 가장 잘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야인이었던 김성근 감독을 삼고초려해서 영입한 것이자만 가장 최악의 일은 그렇게 영입한 김성근 감독을 내친 이번 사건임에 틀림없다.

Posted by 개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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