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SK와 LG의 잠실경기는 근래 보기힘든 재미있는 경기였습니다. LG 선발 벤자민 주키치의 호투로 6회까지 노히트노런에 몰렸던 SK가 9회초 2사후 상대의 연속볼넷과 안타 등을 엮어 6:4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뒀기 때문입니다. 거의 포기하다시피 했던 경기를 뒤집은 SK 와이번스의 저력도 놀라웠고 9회초 많은 대타 기용으로 선수를 소비한 9회말 SK의 수비는 재미있는 볼거리를 제공했습니다.

바로 포수 최정의 등장인데요. 혹시나 하는 우려와는 달리 정우람 선수와 배터리를 이뤄 3자 범퇴로 깔끔하게 경기를 매조지 했습니다. 승리가 확정된 후 선수들끼리 하이파이브를 하는 장면에서 동료 선수들은 최정 선수를 보며 웃음을 감추지 못했고 심지어 코칭스테프와 하이파이브를 하는데 평소 경기중 웃음을 보이지 않는 김성근 감독까지 파안대소하게 만들어 보는 팬들을 기쁘게 했습니다.


9회초 등장하는 마무리 포수 최정의 포스. 정상호 선수의 장비를 착용한 탓인지 전체적으로 사이즈가 크다.


승리가 확정된 후 정우람-최정 배터리의 악수


좀처럼 보기힘든 경기종료 후 김성근 감독의 파안대소.



그리고 또하나. 최청 선수의 포수 출장 이외에도 정우람 선수가 비록 타석에 들어서지는 않았으나 교체로 인해 4번타자 위치로 들어갔다는 사실은 숨겨진 1인치의 재미.

 


이름만 놓고 보자면 이대호급 체구에 거포형 파워히터가 연상되는 4번타자 정우람



사실 최정선수는 포수 출장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6년 6월 13일 두산전에서도 이미 한차례 포수로 교체 출장한 경험이 있고 이를 알고있는 김성근 감독이 지난 17일 LG전에도 포수로 기용한 것이다.


2006. 6. 13일 경기 중계화면 캡쳐. 5년전이라 그런지 상당히 앳된 모습이다.



최정 선수가 원래 포지션인 3루수 이외에 포수로 출장한 것만은 아니다. 올해 4월 16일 넥센전에서 최동수 1루수와 자리를 맞바꿔 1루수로 출전한 경험이 있고 2009년 6월 25일 기아전에서는 연장 12회 마무리 투수로 등장, 146km의 빠른 직구를 꽂아넣으며 위력적인 모습을 보여줬으나 아쉽게도 끝내기 폭투로 패전의 멍애를 쓰게 된다.


고개를 두번 가로저으며 포수의 싸인을 거부하는 마무리 투수 최정.



이 경기는 연장 12회까지 가는 총력전이어서 최정 선수의 마무리 투수 등판 이외에도 다른 볼거리가 많은 경기였다.



대타로 등장한 김광현. 풀카운트까지 가는 접전끝에 아쉽게도 삼진을 당했다.



1루수로 출장한 윤길현. 어깨가 아픈 상황이어서 등판대신 1루수로 출장하였다.



사실 김광현 선수는 안산공고 시절 에이스 투수에 중심타선을 치는, 소위 말하는 '광현공고'의 북치고 장구치던 시절이 있었고 2009년 6월 25일 기아전 이후로 2010년 6월 23일 LG전 또한번 대타로 출전했다.


8회말 2사 만루 상황에서 대타로 등장, 역시 풀카운트 까지 가는 접전끝에 3루 땅볼 아웃.


내가 아는한 프로야구 역사에서 가장 많은 포지션에 출장한 선수는 기아 타이거즈의 이종범 선수일 것이다. 투수를 제외한 모든 포지션에 다 출장한 것으로 알고있는데 SK 와이번스만으로 한정하자면 아마도 최동수 선수일 것이다. 포수로 출장한 기록이야 이젠 더이상 화제가 될 것도 없고 주 포지션인 1루 이외에 3루수로도 출장했고 LG시절 투수로 나왔던 기억이 있다.


2009. 5. 12일 SK전에 투수로 나와 박경완을 내야 플라이로 잡으며 전설의 방어율 0.00을 기록하는 불멸의 마무리로 남았다.


그 외에도 본인의 포지션 이외에 다른 포지션을 맡았던 경기를 살펴보면 2007년 5월 23일 삼성전 조웅천 투수가 양준혁 선수 타석때 좌익수로 옮기고 가득염 투수가 원포인트 릴리프로 나와 양준혁 선수를 상대한 후 조웅천 선수가 다시 마운드에 오르는 진풍경을 연출하였고 정대현 선수가 7번 타자로 교체 출장하는 모습도 있었다.

7번타자 좌익수 조웅천에서 투수 정대현으로 교체


2008. 5. 27일 기아전 가득염 선수가 대타로 출장하여 유동훈 선수의 볼을 가볍게 밀어쳐 좌익수앞 안타로 출루, 전설의 10할타자 기록을 수립하게 된다.


2008. 6. 27일 한화전 대타로 출장한 정대현 선수. 결과는 삼진 아웃.


2008. 8. 27일 두산전 주자 1, 3루 상황에서 대타로 출장한 조웅천 선수는 스퀴즈 번트를 성공시켜 타점을 올렸다. 이날 경기는 본인의 투수 최초 800경기 출장의 대기록을 세운 날이기도 하다.


2010. 7. 15일 한화전 2루수로 교체된 박정권 선수.
 

프로야구 역사상 1루수를 제외한 내야에서 왼손 글러브를 낀 선수가 등장한 것은 아마도 이날이 처음일 것이다. 타구를 잡은후 1루로 던져야 하는 내야수의 특성상 왼손잡이는 몸을 한번 더 틀어 1루로 던져야 하는 핸디캡을 지니기 때문이다. 박정권 선수는 경기후 자신에게 볼이오길 은근히 기대했다고 말했다.

최근 야구의 트렌드 중 하나는 멀티 포지션을 소화하는 야수가 점차 늘어난다는 사실이다. 플래툰 시스템에서 살아남기 위한, 혹은 팀의 전력을 구성함에 있어 다양한 경우의 수를 제공함으로써 선수 본인이나 팀에게 모두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멀티 포지션 이외에 위와 같은 기용을 두고 혹자는 이런 기용을 두고 고교야구에서나 나올법한 기용이라며 평가절하를 하지만 규칙이 정하는 한에서, 또는 갑작스러운 부상이나 연장을 거치는 박빙의 총력전에서 가용한 자원을 기용한 후 어쩔수 없는 고육지책이 되는 모습은 때로는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한 다는 점에서 야구의 또다른 재미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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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개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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