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프로야구 감독들 중 김성근 전 한화 이글스 감독처럼 다양한 이슈의 중심에 선 인물도 드물다. 태평양 돌핀스, 쌍방울 레이더스를 이끌 때는 특유의 쥐어짜기식 혹사 운영으로 하위권이었던 팀을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키는데 성공했고, 2000년대 후반 SK 와이번스 감독 시절에는 이른바 ‘벌떼야구’를 통해 정상의 자리에도 올랐다. 그러다 한화 이글스 사령탑을 맡는 동안 혹사 논란이 극에 달했다. 일부에서는 성적이 좋으면 ‘활용’이고, 성적이 좋지 않으면 ‘혹사’냐며 여론의 이중 잣대에 불편한 심기를 표출했지만 김 전 감독의 혹사 논란은 식지 않았다. 


 

송창식은 현역 생활을 마치며 ‘혹사 논란’을 함께 겪었던 김성근 감독에게 감사 인사를 남겼다. 사진=연합뉴스



최근 한화 송창식이 은퇴를 발표했다. 그는 김 전 감독이 한화 감독으로 있는 동안 혹사 논란의 중심에 있던 선수였다. 그런 선수가 은퇴를 발표하며 “김성근 감독이 많은 기회를 주셔서 감사했다”는 인사를 전했다. “조만간 전화로 감사 인사드리겠다”는 이야기와 함께 말이다.

혹사, 퀵후크(빠른 선발 투수 교체) 등 논란이 끊이질 않았지만 대부분의 투수들은 김 전 감독의 상황과 결정을 이해했다. 그의 야구에 대한 열정과 선수를 챙기고 존중해주는 배려만큼은 인정받은 셈이다. 

2019년 프로 통산 700경기를 치르고 LG 트윈스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던 이동현(SBS 해설위원)이 일요신문과 인터뷰하며 자신의 은퇴식 때 초대하고 싶은 인물 영순위로 김성근 전 감독을 꼽았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꼭 기사화해달라는 부탁도 덧붙였다. 

“2002년 불펜 투수로 124.2이닝을 소화하고, 2004년부터 세 차례의 팔꿈치 수술을 받은 걸 두고 김성근 감독님의 혹사 때문이라고 보는 분들이 있더라. 2002년 선수 이동현을 만들어준 분은 김성근 감독님이었다. 감독님이 나를 이끌어주셨기 때문에 2002년 8승 3패 6홀드 7세이브 평균자책점 2.67로 한국시리즈를 경험할 수 있었다. 내 팔꿈치는 고등학교 때부터 많이 던졌던 부분이 누적돼 나타났을 뿐이다. 만약 2002년에 김성근 감독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내가 과연 지금까지 선수 생활을 하고 있었을까 싶다. 감독님 덕분에 이겨내는 법을 배웠다. 감독님 덕분에 투수의 자존심이 무엇인지도 알게 됐다. 이번 인터뷰로 더 이상 김성근 감독님의 혹사로 이동현이 망가졌다는 이야기가 안 나왔으면 좋겠다. 난 항상, 지금까지, 아니 영원히 감독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살 것이다. 은퇴식이 열리면 감독님을 초대해 잠실야구장에서 포옹 한번 나누고 싶은데 그게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프로 통산 709경기(역대 최다 등판 7위, 우완 정통파 투수 중 최다 등판 기록) 1132이닝 60승 51패 77홀드 47세이브 평균 자책점 4.25를 기록 후 19년의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던 송신영 키움 히어로즈 코치. 그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김 전 감독과의 인연을 떠올렸다. 송신영은 중앙고 시절 인스트럭터 신분으로 중앙고를 방문했던 김 전 감독과의 첫 만남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한화 전력분석팀장을 역임한 김준기 대전고 인스트럭터는 김 감독에 대해 “언론은 그에게 혹사라는 타이틀을 안겨줬지만 정작 선수들 중에서 자신이 혹사 당했다고 생각하는 선수는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당시 김성근 감독님이 내가 공 던지는 모습을 보시곤 ‘넌 선수로서 자격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상당히 충격을 받았는데 이후 감독님은 자격 없는 선수에게 커브 던지는 법을 알려주시더라. 직구와 슬라이더밖에 던질 줄 모르던 내가 감독님 덕분에 커브를 배운 것이다. 그리고 한화에서 감독과 선수로 다시 만났을 때 내게 나이를 물어 보셨다. 한국 나이로 마흔하나라고 말씀 드렸더니 감독님은 ‘대단하다. 앞으로 네가 해오던 대로 훈련하고 부상당하지 않도록 몸을 잘 만들어라’라는 말로 감동을 주셨다. 그때 야구 생활하면서 처음으로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감독님의 말씀이 고마운 나머지 잘 보이려고 오버 페이스하다 결국 부상을 입었고 한화에선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한화에서 나올 때 감독님이 내게 코치직을 권유하셨다. 선수 생활에 대한 미련 때문에 ‘1년만 더 하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는데 감독님은 그대로 받아주시더라. 그때 느꼈다. 밖에서 감독님을 평가하는 것과 선수들이 감독님을 생각하는 마음에 왜 차이가 나는지를.”

송신영은 당시 한화를 떠나면서 김 전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그는 “감독님 덕분에 2년 더 야구했습니다. 고맙습니다”라는 인사에 김 전 감독은 “이럴 줄 알았으면 넥센에서 은퇴하게 놔둘 걸 내가 너무 욕심을 부린 것 같아 미안하다”며 송신영을 위로했다는 후문이다.

1994년 LG 유니폼을 입으며 프로에 데뷔, 2001년 15승 6패를 달성하며 손민한과 함께 공동 다승 1위와 세이브 1위, 승률 1위를 기록하며 3관왕에 올랐던 신윤호. 그는 LG에서 김 전 감독과 수석코치와 선수로, 2008년 SK에서는 감독과 선수의 연을 맺은 바 있다. 은퇴 후 사회인야구 선수로 활약한 그는 기자와의 만나 “지금도 신윤호 하면 혹사란 말이 나오느냐”고 물었다.

“내게 만약 다시 돌아가고 싶은 시절이 언제냐고 물어보신다면 프로에 처음 데뷔했던 1994년이다. 그때부터 김성근 감독님한테 지도를 받았다면 선수 생활을 좀 더 오래 할 수 있었을 것이다. 2001년 ‘반짝’ 했다가 2002년부터 무너진 건 혹사 때문이 아닌 등판 이후의 몸 관리를 잘못한 내 탓이었다. 2001년의 성적 덕분에 팀에서 잘리지 않고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김성근 감독님의 지도법에 대해선 찬반양론이 뜨거운데,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한테 그분은 은인이다. 내가 돈을 벌 수 있게 해주셨기 때문이다.”

2008년 은퇴한 신윤호는 5년 만인 2013년 가을 입단 테스트를 통해 다시 SK 유니폼을 입었다. 그는 프로 복귀를 준비하며 당시 고양 원더스를 이끌던 김 전 감독을 찾아가 특별 레슨을 받은 적도 있었다. 다시 야구를 하고 싶어 하는 제자를 위해 김 전 감독은 특별 배려를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롯데 자이언츠 불펜 포수-한화 이글스(2009~2010)-고양 원더스(2013~2014)-삼성 라이온즈(2014~2018)에서 투수로 활약했던 김동호도 김 전 감독과 특별한 인연이 있다. 군 제대 후 팀을 찾다가 고양 원더스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게 됐고, 그때 처음으로 김 전 감독과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고 한다. 

“제대하자마자 6일 만에 고양 원더스에서 테스트를 받았다. 1이닝 퍼펙트로 잘 마무리했는데 결과는 탈락이었다. 김성근 감독님께 이유를 여쭤봤더니 투구폼이 너무 딱딱하다고 말씀해주시더라. 집으로 돌아갔다가 도저히 그냥 있을 수가 없어 후배한테 김성근 감독님 연락처 좀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전화번호를 받아들고 산으로 올라갔다. 잠시 고민 끝에 감독님께 전화를 드렸다. ‘감독님 저 야구하고 싶습니다’라고 말을 하는데 갑자가 눈물이 쏟아지는 게 아닌가. 말도 못하고 계속 눈물을 흘렸다. 간신히 마음을 추스르고 감독님한테 도와달라고 부탁드렸더니 감독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금 그 마음 잊지 말고 열심히 해봐라’라고.”

이후 김동호는 고양 원더스에서 투수 코치를 맡고 있던 이상훈 전 코치에게 야구를 배웠고, 이후 삼성에 입단할 수 있었다. 독립리그 팀 소속 선수의 프로행은 당시 큰 화제를 모았다. 

김 전 감독이 한화 사령탑을 맡을 때 전력분석팀장으로 일했던 김준기 대전고 인스트럭터는 김 전 감독의 혹사 논란 관련해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송창식, 배영수, 심수창 등 은퇴 후 김성근 감독한테 고마움을 나타내는 선수들의 공통점이 있다. 모두 승부처에 기용됐던 선수들이었다. 그럴 경우 자신의 몸이 망가지는 걸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해서든 그 기회를 이어가려고 노력한다. 김 감독은 베테랑 선수들을 중용하고 기회를 주기로 유명했다. 선수들에게 몸 관리하라고, 몸 관리하면서 휴식을 취하라는 말을 잔소리처럼 했다. 스프링캠프에서는 선수들에게 용돈도 쥐어줬다. 겉으로는 얼음장처럼 냉정한 이미지이지만 마치 할아버지처럼 다정하게 다가갔다. 언론은 그에게 혹사라는 타이틀을 안겨줬지만 정작 선수들 중에서 자신이 혹사당했다고 생각하는 선수는 많지 않을 것이다.”

2016년 4월 14일 두산 베어스전에서 송창식은 4.1이닝 동안 27명의 타자를 상대하며 무려 90개의 공을 던져 9피안타(4피홈런) 3사사구 12실점(10자책)으로 뭇매를 맞았다. 송창식은 김 전 감독 재임 시절인 2015시즌에 본업이 불펜이면서도 선발로 종종 등판했고 2016년에는 팔꿈치 통증으로 8월에 시즌을 마무리했음에도 97.2이닝을 던지며 구원투수 최다이닝 1위에 올랐다. 그런 그가 은퇴를 공식 선언하며 자신의 스승에게 감사를 표했다. 

김 전 감독한테는 공도 있지만 과도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선수들한테는 과보다는 공으로 더 많은 평가를 받는 것 같다. 김 전 감독은 현재 일본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코치 카운슬러를 맡아 여전히 유니폼을 입고 현장에 있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출처 : ilyo.co.kr/?ac=article_view&entry_id=375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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