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이민자가 있었다. 독일에서 와 샌프란시스코에 터전을 잡았다. 먹고 살기 위해 공장을 차렸다. 가위, 볼트, 나사를 비롯해 이것저것 닥치는대로 만드는 곳이었다.


하루는 텐트 주문이 들어왔다. 그런데 실수가 있었다. 직원이 잘못 알아들었다. 필요도 없는 파란색 염색을 잔뜩 해놨다. 버릴 수는 없었다. 혹시나 하고 바지를 만들어봤다. 거친 일 하는 광부용이었다. 주머니에 리벳도 박았다. 튼튼하다고 날개 돋친듯 팔려나갔다. 덕분에 회사도 세울 수 있었다. 주인 이름을 딴 ‘리바이 스트라우스 앤 코퍼레이션’이었다.


청바지가 세상에 처음 나온 게 1800년대 중반이었다. 이후 젊음과 실용의 상징이 됐다. 저항과 과거에 대한 부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그가 카메라 앞에 섰다. 청바지였다. <뉴스1>과 인터뷰였다. 환한 표정으로 렌즈와 시선을 맞췄다. 회색 라운드 티가 깔끔했다. 또 다른 컷에는 벽을 배경으로 무릎 위 상반신을 클로즈업 했다. “나이가 먹어 몸에 보기 싫은 살들이 붙는다.”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운동량을 더욱 늘렸다는 소개였다.


하긴.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현장을 떠나던 날도 그랬다. 유니폼을 벗고 나타난 모습, 그 때도 청바지였다. 대전 구장 감독실을 나서며 작별 인사를 할 때도 그렇게 간단한 차림이었다.





일본에서도 처음이라는 직책 ‘코치 고문’


사실 우리 같은 업자들에게는 그렇다. 감사하기 그지 없는 존재다. 요즘처럼 비수기에 이렇게 솔깃한 때거리를 제공해주기는 쉽지 않다. 실직과 취업을 반복하면서, 뉴스를 생산해주는 화수분 같은 존재다.


만으로 76세다. 우리 나이로 치면 77세다. 명문대 나온 20대들도 힘들다는데…. 그 어려운 취업에 또 성공했다. 그것도 고용주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일본 야구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오사다하루 회장이 직접 오퍼한 일이다.


일본에서 일자리 얻었다는 사실 자체도 뜻밖이다. 그런데 해야 할 일은 더 놀랍다. ‘코치 고문’이라는 자리다. 우리 미디어들은 코치들 가르치는, 즉 ‘코치의 코치’라고 전했다. 맞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언뜻 이해는 어렵다. 세상에서 처음 들어보는 말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가르치는 지, 그걸 가르친다고?’


물론 일본에서 조차 듣도 보도 못한 직책이란다.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역시 대단하긴 대단해.’ 사람들의 끄덕임이 전혀 이상할 것 없다.


<뉴스1>과 인터뷰에서 그런 얘기를 했다. “일본 전체 코치 중에도 내가 제일 나이가 많다. 나를 불렀다는 것에서 거꾸로 왕정치 회장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일본에서도 이런 역할은 내가 처음이다. 만약에 성과가 있으면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몇 사람을 살릴 수 있다. 그런 사명감을 갖고 임할 생각이다.”


‘세계에서 훈련 가장 오래시키는 감독’


우리 미디어의 반응은 뜨거웠다. 수십개 매체가 앞다퉈 보도했다. 댓글들도 긍정적이었다. 감탄과 존경, 기대가 엇갈렸다. 반면 일본쪽 반응은 어떨까. 물론 우리와는 같을 리 없다. 몇몇 군데가 짤막한 단신 정도로 취급했을 뿐이다. ‘코치 어드바이저(adviser)’라는 직함도 눈에 띈다.


그러나 그 중 꽤 자세하게 다룬 곳도 있었다. <닛칸스포츠>가 그랬다. ‘소프트뱅크가 코치의 코치로 한국의 명장을 초빙’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요약해 소개하면 이렇다.


‘소프트뱅크가 팜(2, 3군)을 강화하기 위해 이례적으로 코치의 코치를 초빙했다. 한국에서는 야신이라고 불리는 사람인데, 세계에서 훈련을 가장 오래시키는 감독으로 유명하다. 올해 3군 창설 8년째를 맞아 구단의 팜 강화를 목표로한 방침이다.’


아울러 간단한 이력도 뒤따랐다. ‘좌우명은 일구이무(一球二無)다. SK 시절 한국시리즈에서 3번 우승했다. 일본인 코치를 여러명 불러서 활용했고, 3년 전에는 청와대에서 강연을 하기도 했다.’ 현재 소프트뱅크 3군 감독을 맡고 있는 세키가와 고이치가 SK 시절 타격코치로 일한 적 있다. ‘무척 엄한 분’이라는 게 그의 기억이다.


후쿠오카 쪽에서 발행되는 <니시니폰신문>은 ‘한국과 파이프라인(네트워크)을 강화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도 내렸다.





독립구단에 대한 얘기로 이뤄진 교감


축하할 일은 분명하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있는 이해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도대체 왜 초대했을까. 본인 말대로 일본 전체를 따져도 가장 나이가 많다. 사실상 현장에서도 떠난 상태다. 게다가 커다란 반감과 반론에 부딪혀 밀려나듯 짐을 싸야 했다. 그들도 그런 과정을 모를 리 없다. 그런데 왜….


우선 둘의 관계를 살펴야 한자. 이 사안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진 오사다하루 회장과의 관계말이다. 일부에서는 ‘절친’이라는 단어를 썼다. 그러나 그 정도는 아닌 것 같다. 사안에 따라서 간혹 연락이 오가는 사이로 보인다.


1980년대 OB 감독시절 안면을 튼 것으로 전해졌다. 본격적인 친분이 생긴 것은 2013년 무렵으로 추측된다. 고양 원더스에 있을 때다. 일본 고치현에서 열린 행사 자리에 함께 참석했다. 소프트뱅크 3군과 관련된 이벤트였다. 여기서 독립구단에 대한 얘기를 주로 나누며 이 부분에 대한 깊은 교감이 이뤄졌을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그로부터 약 1년 뒤. 이글스 감독에 선임됐다. 세상이 떠들썩한 뉴스 사이에 묻힌 소식이 하나 있었다. 일본에서 온 전화였다. ‘축하드린다’는 인사와 별도의 메시지가 있었다. ‘사실은 우리도 모시려고 했었다’는 얘기였다.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명성에 누를 끼치지 않을 정도의 자리’라고 알려졌다. 이번에 실현된 코치 어드바이저였으리라 짐작된다.


여전한 거부감, 그런데도 ‘모셔간’ 이유는


절차나 과정에 대해서는 그렇다 치자. 그래도 여전히 ‘왜?’에 대한 궁금증은 지워지지 않는다. 물론 ‘능력이 대단하니까’라는 사실을 주장하시는 분들께는 논외의 부분일 지 모른다.


관련해서 2가지 키워드가 떠오른다. 첫번째가 팜 또는 3군(軍)이라는 단어다. 또 하나는 성격을 규정하는 말이다. 일본 언론에 여러가지로 표현됐다. 연습, 강화, 준비, 철저, 세계에서 가장 오래 훈련하는….


2개를 합성하면 하나의 의제가 세팅된다. ‘젊은 유망주들을 철저하게 훈련시켜야 한다. 그래서 재목을 만들어가며 두터운 선수층을 유지하도록 한다.’


오사다하루 회장이 예전에 고양 원더스를 보고 한 얘기가 있었다. “일본의 구단과 견줘도 훈련양이 대단하다. 히로시마(카프)가 연습을 많이 하기로 유명한데, 원더스도 이에 못지 않다.”





김성근 방식에 대한 거부감은 여전히 존재한다. 누군가에게는 비인간적이고, 독단적이라는 인상도 남아있다. 혹사에 대한 비판과 구시대적이라는 주장도 사라지지 않았다. 전혀 틀린 얘기라고 못들은 척 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런데 그런 인물을 ‘모셔갔다’. 말이 잘 통해서일까? 일본식과 통하는 면이 있다고 여긴 탓일까? 70대 원로급끼리 서로 뜻이 투합하는 지점이 많아서일까?


물론 그렇게 넘겨버리면 그만일 지 모른다. 큰 의미 부여가 필요없다고 치부할 수도 있다. 대단치 않은 자리 하나 얻은 것이라고 평가해도 그만이다. 하지만 개운치 않다. 그냥 그러고 말기에는 찜찜하다.


급변하는 야구 비즈니스…점차 소외되는 본질


이 문제에는 오(王) 회장의 관점이 필요하다. 그래야 납득되는 지점이 있다. 2년 넘게 묵힌 구상이었다. 김 감독을 데려가려는 뜻 말이다.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났지만 실현됐다. 어쩌면 내부의 불편함 있었을 것이다. ‘고령의’ ‘한국사람’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강행했다. 꼭 필요하다고 여긴 일이라는 뜻이다.


아마도 두 원로의 생각은 거기서 일치했을 지 모른다. 작금의 야구계, 한국이나 일본이나, 똑같이 처한 우려되는 상황에 대한 인식 말이다.


야구계는 급변하고 있다. 거대한 비즈니스가 돼 버렸다. 엄청난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 산업으로 변모했다. 그 물결에 올라탄 채 너무 숨가쁘게 달리고 있다. 목표를 향한 효율과 시스템의 틀 속에 갇혀버렸다. 낯선 디지털 장비와 데이터가 지배하는 무대가 됐다.


소외되는 지점이 생기는 건 필연적이다. 그건 본질에 대한 부분일 것이다. 야구는 비즈니스가 아닌 스포츠라는 사실 말이다. 땀과 고통을 견디는 인내, 그런 것들이 실현하는 플레이 하나하나와 승부야 말로 진정한 가치라는 사실 말이다.


그들은 어린 시절부터 흙투성이가 되면서 몸으로 익혔다. 극한의 주림과 고단함을 겪어야 했다. 그래야 비로서 만날 수 있었던 게 ‘본질과 가치’였다.


노(老) 회장의 마음은 그런 것이리라. 프로라고 부르기조차 애매한 3군이다. 그렇지만 반드시 일깨워줘야 할 게 있었을 것이다. 그건 목표 설정보다 우선돼야 할 부분이다. 땀과 눈물이 필요한 ‘과정’의 중요성인 것이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출처 : http://v.sports.media.daum.net/v/20180126092250424


Posted by 개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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