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 감독, 저녁마다 선수단과 미팅 시간

OB 때부터 정신교육으로 선수들 의식변화


[OSEN=고치(일본), 이상학 기자] 한화의 스프링캠프는 쉴 새 없는 훈련으로 스케줄이 가득 차있다. 훈련만으로도 빠듯하지만 매일 빠지지 않는 메뉴가 있으니 바로 저녁식사 후 김성근 감독과 선수단이 갖는 미팅 시간이다.


매일 저녁 6시30분부터 7시 사이에 한화 선수단이 묵는 일본 고치 선라이즈 호텔 2층 연회장에는 석식을 마친 선수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낸다. 고된 훈련으로 지친 몸이지만 선수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필기 노트와 볼펜을 챙겨 나온다.


▲ OB 때부터 시작된 전통

청중을 흡입할 줄 아는 뛰어난 언변의 소유자인 김 감독은 명강사로 잘 알려져 있다. 고양 원더스 시절에는 강연료로 세금만 3억원 가까이 낼 정도로 여러 기업과 학교에서 초청강연을 부탁받았다. 한화 선수들은 두 달 가까운 스프링캠프 기간 동안 매일 30분 이상 김 감독에게서 공짜로 강의를 듣는 것이다.


사실 스프링캠프지에서 김 감독과 선수들의 미팅은 오래 전부터 이어진 전통이다. 처음 프로 감독을 맡은 OB 시절부터 캠프 기간 미팅이 있었다. 김 감독과 오랜 시간을 함께 한 박철호 한화 홍보위원은 "감독님은 선수들의 몸 만드는 것만큼 의식 개혁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드웨어가 좋아도 소프트웨어가 안 좋으면 안 된다. 왜 힘든 훈련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다른 구단과 가장 차별화되는 부분이다"고 이야기했다.


실제로 김 감독은 매일 열리는 선수단과 미팅을 위해 여러 자료 준비도 많이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철호 위원은 "강연을 위해 책을 많이 읽으신다. 캠프에 오기 전 여러 책들을 미리 사오시기도 한다. 매일 다른 레퍼토리의 이야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준비를 많이 할 수밖에 없다"고 귀띔했다.


지난 27일도 마찬가지였다. 김 감독은 이날 특별히 선수단 미팅을 취재진에 공개했다. 현재 캠프에 있는 44명의 선수 모두 빠짐없이 2층 미팅 장소에 열외 없이 모여 의자에 앉았다. 우리말을 정확하게 알아듣지 못하는 외국인선수 에스밀 로저스도 통역원과 함께 자리해 김감독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웠다.





▲ 주된 강연 내용은 의식변화

선수들 앞에 선 김 감독은 칠판에 '자타동일(自他同一)'이라는 한자어를 적었다. "나란 속에서 플레이하면 아무 것도 아니지만 팀이라면 다르다. 나는 나, 너는 너라는 생각을 갖고 있으면 안 된다. 슬퍼할 때 같이 슬퍼하고, 실수했을 때 팀을 위해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팀이 살아날 수 있다"며 개인이 아닌 전체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어 김 감독은 "보통 비교를 할 때 남들과 비교하는데 스스로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보라. 남과 비교하면 자기 본질을 잊어먹게 된다. 어제와 오늘, 오늘과 내일의 자기 자신을 비교해서 무엇이 잘되고 안 되었는지 찾아야 한다. 그렇다고 예전에 잘했던 것만 생각하지 말라. 사람 자체가 정지돼 그 자리에서 죽어가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의식 변화를 강조했다.


또한 김 감독은 "이 팀에는 30살 넘은 선수가 많다. 30대 선수가 많다는 건 그만두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기도 하다. 난 70살이 넘어 죽음이 가까워지고 있다. 더욱 전력으로 보고 한다. 20대 젊은 사람들은 지금부터 의식을 바꿔야 한다. 못하는 것을 할 수 있게 연습하고, 확률을 높인 뒤에는 질을 높여라. 고정관념을 버리고 발상 자체를 바꾸면 무궁무진해질 수 있다. 절대 타협과 태만은 하지 말라"고 힘줘 말했다.


추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경험담이 곁들여져 있어 공감을 이끌어낸다. 우리나이 75세의 김 감독은 "그저께 펑고를 치고 한 시간 정도 마사지를 받았다. 그런 적은 처음인데 다리가 아파 움직이지 못할 정도였다. 허리가 안 돌아가 손만 갖고 치다 보니 아프게 된 것이다. 그래서 요즘 웨이트를 더 많이 하고, 하반신을 강화하기 위해서도 애쓰고 있다"며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 피곤해도 경청하는 선수들

김 감독의 강연은 보통 30분 안팎으로 끝난다. 긴 시간이 아니지만 아침 일찍부터 강도 높은 훈련을 소화한 뒤 녹초가 되는 선수들에게는 어떻게 보면 고역일 수 있다. 그럼에도 선수들은 정자세로 앉아 김 감독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인다. 노트까지 챙겨와 꼼꼼하게 필기하는 선수들도 절반 이상이다. 몸은 피곤해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경청하는 것이다.


SK부터 한화까지 7년째 김 감독과 함께 하고 있는 주장 정근우에게는 저녁 미팅시간이 너무 익숙하다. 올해도 캠프 첫 날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그날 있었던 김 감독의 강연 내용을 메모해 놓았다. 하루에 한 페이지씩 검은 볼펜으로 꾹꾹 눌러쓴 필기노트를 보면 허투루 시간을 보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정근우는 "SK 시절 처음 감독님 강연을 들을 때는 솔직히 졸렸다. 어릴 때는 감독님 말씀이 크게 와 닿지 않는 것도 있었다"며 "나이가 들수록 다르게 느껴졌다. 그냥 듣는 것보다 하나하나 적어가다 보니 나도 모르게 생각 자체가 많이 바뀌게 됐다. 적다 보면 그 이전에 들었던 내용도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되더라"고 말했다.


물론 종종 너무 피곤한 나머지 졸음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꾸벅이는 선수들도 종종 있다고. 그때마다 곁에 선수들이 눈치를 주며 깨우기도 한다. 김 감독도 선수들이 피곤한 것을 알기 때문에 눈감고 모른 척 넘어간다. 정근우는 "예전 SK에서는 선수들이 일부러 야간 연습을 늦게 나가기 위해 감독님에게 계속 질문을 하기도 했다. 요즘은 그러지 않는다"고 웃었다. 이날 한화 선수들은 강연을 마치고 예정된 시간에 야간훈련을 나갔다.


[사진] 고치=민경훈 기자





출처 : 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109&aid=0003249367&redirect=true

Posted by 개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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