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한화전이 9일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에서 열렸다. 김성근 감독이 더그아웃에서 경기를 지켜 보고 있다.



혹사(酷使): [명사] 혹독하게 일을 시킴. 야구판에 이 단어를 대입시키면 의미가 조금 달라진다. “투수를 시도 때도 없이 내보내 나가 떨어지게 하다.” 이 정도쯤 되겠다. 동시에 이것은 명확하게 정의 내리기 힘든 말이기도 하다. 투수마다 내구성이 다른 게 가장 큰 이유고, 넉다운 되는 ‘시점’을 언제로 봐야 하는지가 그 두 번째(+다음 날 부상자 명단에 오른 선수와 다음 시즌을 개점 휴업한 선수, 둘중 혹사를 당한 이는?)이다. 마지막으로 ‘시도 때도 없이’란 대체 얼마간을 의미하는 거란 말인가. 하루? 이틀? 그렇다면 10개 던지고 다음 날 나온 투수와, 50개를 던지고 사흘 뒤 등판한 투수 중 누가 더 혹사를 당한 걸까?


최근 혹사가 검색어 상위에 오르 내리는 이유는 하나다. 한화, 그리고 김성근 감독 때문이다. 한화는 개막 후 매경기를 한국시리즈 7차전에 준하는 승부를 펼쳤다. 한화 극장엔 다수의 투수가 출연했다. 어제의 불펜이 오늘의 선발(유창식)로 등판했고, 불펜은 며칠 후 선발투수(송은범)로 다시 나왔다. 여기에 11일 윤규진이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되며 ‘김성근의 혹사’는 기정 사실화된 듯 하다. 윤규진은 한화가 13일까지 치른 11경기 중 5경기에 나와 9이닝을 던졌다. 윤규진은 정말 혹사 탓에 낙마한 것일까. 당신이 한화팬이든, 안티팬이든 그 스탠스는 잠시 내려 놓자. 감정이 아니라 숫자로 접근해 보고자 한다. 최소한 ‘느낌상 많이 나온 것 같아서’ 단정짓진 말자는 뜻이다. 


▲한화 불펜, 열정 페이 받은 청년처럼 일했는가




Closer Fatigue(마무리 피로도). 세이버 메트릭스의 대부격이라 할 수 있는 빌 제임스(Bill James)가 고안해 낸 계산법이다. 불펜진의 혹사지수 정도로 해석하면 되겠다. 공식은 이렇다. 5일전 상대한 타자수+(4일전 상대한 타자수)X2+(3일전 상대한 타자수)X3+(2일전 상대한 타자수)X4+(1일전 상대한 타자수)X5. 즉, 등판 간격이 좁을수록 가중치를 더하고, 길면 줄이는 방식이다. 메이저리그 텍사스 레인저스의 일본인 투수 다르빗슈 유가 주장한 “중요한 건 투구수가 아니라 등판 간격”에 가장 부합되는 계산법이다. 한화의 CF 지수는 어떻게 나왔을까. 


개막 후 13일까지 마운드에서 공을 1개라도 던진 한화 투수는 모두 18명이다. 이들은 11경기에서 66번 등판해 111이닝을 막았다. 한화의 투수교체는 10개 구단 중 가장 많았다. 가장 적게 투수를 쓴 KIA의 53회 보다 13차례나 많다. 한화보다 7.2이닝이나 더 던진 삼성이 56회 올린 것을 감안한다면, 투수교체가 얼마나 잦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리그 평균 팀 등판경기 횟수는 56.8회. 


18명 중 5이닝 이상을 던진 한화 불펜진은 모두 9명이다. 이들 가운데 송은범이나 배영수, 유창식은 선발로 등판한 경력도 있다. 등판 경기수는 권혁이, 이닝수는 안영명이 최고였다. 그렇다면 이번 분석의 중요한 지표인 혹사 지수는 어땠을까. 예상대로 권혁-박정진-김민우 등의 순이다. 얼마전 개점 휴업한 윤규진은 의외로 수치가 낮다. 9명 중 6번째다. 






이번엔 리그 불펜진과 비교해보자. 한화 투수는 노동강도가 정말 심했을까? 리그에서 권혁과 똑 같이 8경기에 등판한 투수는 모두 7명이다. 이중 삼성의 안지만은 가장 많은 10.2이닝을 던졌다. 가장 많은 이닝을 막은 불펜 선수는 LG의 정찬헌이다. 7경기에 나와 12.1이닝을 던졌다. 그 다음은 11.1이닝의 한화 안영명. 등판 경기순으로 30위권내에 한화 투수는 권혁-안영명-박정진 등 모두 3명이다. 


리그에서 혹사지수가 가장 높은 선수는 삼성의 안지만이다. 213이 나왔다. 유일한 200대를 찍은 불펜 투수였다. 2위는 191을 기록한 한화의 권혁이다. 10위권 안에 한화 투수는 권혁과 박정진 뿐이다. 뚜렷한 선발진이 없는 한화로서는 불펜 풀가동이 불가피했다. 그러나 타구단과 비교해 유달리 혹사를 시켰다고 보긴 힘들다. 10위권내의 혹사지수 평균은 160.2. 이것에 상회하는 한화 투수는 권혁 뿐이었다. 의외의 인물도 있다. NC의 최금강은 지난 달 28일 두산과의 개막전에 등판 이후 하루 이틀 간격으로 꾸준히 나왔다. 이번 달 들어서는 이틀 이상 쉰 적이 없다. 역시 리그 톱인 8경기에 등판했고, 혹사지수는 리그 3위인 188을 기록했다. 안지만의 삼성이나 최금강의 NC, 또는 혹사지수 10위권 내에 두 명이나 선수를 올린 LG는 왜 혹사 논란이 생기지 않았던 걸까?



넥센-한화전이 29일 목동구장에서 열렸다. 구원등판한 안영명이 공을 던지고 있다.



▲선발은 과로 했을까?



넥센과 한화의 경기가 29일 목동구장에서 열렸다. 한화 선발 송은범이 공을 던지고 있다.



선발이 기둥이라면 불펜은 그것을 잇는 아교다. 문제는 한화에겐 기둥으로 쓸만한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12일까지 3경기 이상 선발 등판한 선수는 모두 29명이다. 이들 중 한화는 탈보트(4경기) 딱 1명만 이름을 올렸다. 한화 투수 중에 2경기 이상 선발 등판한 이는 유먼, 유창식, 송은범이다. 그나마 불펜 경험이 없는 ‘진짜 선발’은 유먼 밖에 없다. 오리지널(?) 선발인 유먼과 탈보트는 혹사를 당했을까? 미국의 스탯 사이트인 베이스볼 프로스펙터스에서 고안한 투수 혹사 지표(Pitcher Abuse Points. PAP)를 통해 알아 보자. 


PAP의 계산법은 간단하다. 흔히 투구 한계시점이라 말하는 100개 이상부터 가중치를 두는 것이다. PAP=(경기 투구수-100)^3. 물론 PAP의 한계는 명확하다. 등판 간격이나, 기타 변수 상황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여전히 이상적인 선발 간격은 의견이 분분하며, 투구 메커니즘이나 육체의 내구성 등은 지표화 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그렇기에 이것이 가장 현실적인 선발 투수 혹사 지표라 할 수 있겠다.





3경기 이상 선발 등판한 29명 중 PAP가 가장 높은 이는 두산의 마야다. 홈 개막전인 NC전에 선발로 나와 110개의 공을 던졌고, 6일후 사직 롯데전에서 108구를 던졌다. 이어 6일 후인 넥센전에서 노히트노런의 위업을 달성한다. 이때 마야는 무려 136구를 던졌다. 다음은 kt의 옥스프링이다. 두 번째 선발 등판 경기인 KIA와의 홈경기에서 115구를 던졌다. 이어 6일 후 목동 넥센전에 나와 121구를 던지며 팀의 첫 승을 이끌었다. 유이하게 PAP가 만자리 수까지 올랐던 선수들이다. 




리그에서 가장 많이 선발 등판을 한 탈보트는 어땠을까. 1064 PAP가 나왔는데, 이는 소사에 이은 11번째 순위다. 의외로 낮다. 탈보트의 등판을 찬찬히 뜯어보면 투구수 관리의 진면목이 보인다. 탈보트는 개막전인 3월 28일 넥센전에서 110구(6이닝)를 던졌다. 이어 6일 뒤에 나온 2일 두산전에서는 73구(5이닝)로 비교적 적게 던졌다. 5일 뒤 7일 LG전에서는 104구(4.1이닝)를 던지며 다시 100개를 넘겼다. 그러나 똑 같은 텀을 두고 등판한 12일 롯데전에서는 46구(0.2이닝)로 끝냈다. 문제로 제기 됐던 ‘4일 휴식 등판’ 이면엔 세밀한 투구수 조정이 있었던 셈이다. 


2선발(이라 부르기 민망한) 유먼도 살펴 보자. 2경기 모두 100구를 넘겼으며(1일 두산전 105구-8일 LG전 107구), 등판간격이 7일이었다. PAP 수치는 133이 나왔는데 이는 30위권 내에 평균치인 2880의 20분의 1에도 못미치는 것이다. 


▲혹사? 지금은 모른다



LG-한화전이 9일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진행됐다. 유창식이 역투 전 볼을 들어 보이고 있다.



한화의 투수 운용 방침을 대표적으로 나타내는 선수는 유창식이다. 유창식은 선발로 2회, 불펜으로 2회 나왔다. 1일 대전 두산전에 중간계투로 등판해 0.2이닝 동안 21개의 공을 던진 것으로 개점을 알렸다. 3일을 쉬고 선발로 나온 5일 마산 NC전에는 5.2이닝 동안 78투구수를 기록했다. 마찬가지로 3일 휴식 후 선발로 나온 9일 대전 LG전은 3.2이닝에 투구수는 67개. 네 번째 등판은 다시 불펜에서였다. 불과 하루 쉬고 등판을 한 사직 롯데전(+벤치 클리어링으로 화제를 낳았던 그 경기)이었는데 공 5개만 던지고 내려갔다. ‘불펜’ 유창식의 혹사지수는 임창용보다도 낮은 126이었고, ‘선발’ 유창식의 PAP는 0이었다.


비판론자의 말대로 김성근 감독이 거쳐간 팀에는 풀도 안 날 수도, 옹호론자의 말대로 체질개선 후에 강팀으로 변모할 수도 있다. 중요한 점은 김성근 감독이 2017년까지 한화에 머문다는 사실이다. 이 얘기는 그가 한화 유니폼을 입고 치러야 할 432경기 중 이제 11경기를 보냈다는 뜻이다. 아직은 모른다. 한화 투수진이 혹사 여부는. 시즌을 10분의 1도 채 치르지 않은 지금 시점에서는. 그러나 올시즌만 놓고 본다면 확실히 말할 수 있다. 한화 투수진은, 혹사 당하지 않았다.


온라인팀=이상서 기자



출처 : 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id=241&aid=0002380453&redirect=true

Posted by 개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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