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감독이 하는가, 아니면 선수가 하는가. 김성근 한화 감독은 야구를 감독의 스포츠라고 주장하는 대표적인 사령탑이다. 스포츠동아DB
1. 감독의 야구, 선수의 야구
야구는 감독이 하는가, 선수가 하는가. 쉽게 해답이 나오지 않을 화두다. 올 시즌 새삼 이 말이 떠오른 이유는 한화 이글스와 김성근 감독의 행보 때문일 것이다.
여러모로 봐도 김성근과 한화는 쉽게 어울리는 조합이 아니었다. 추종하는 팬들로부터 ‘신(神)’으로 불리는 사람, 야구감독으로서 살아온 그의 인생 궤적을 살펴봤을 때 어느 구단이라도 쉽게 선택할 카드는 아니었다.
팬들의 열성적 지지는 한화그룹 본사 앞에서 펼쳐진 1인 시위로 연결될 정도였다. 팬들의 생각이 구단의 의사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사람들의 요구가 널리 퍼져 행동으로 이어지는 시대가 아니었다면 김 감독의 한화행은 어려웠을 것이다. 많은 이들의 기대 속에서 한화의 새로운 시즌이 시작됐다. “야구는 감독이 한다”고 말해오던 그가 이끄는 한화는 12일 현재 12경기에서 5승7패를 거두고 있다. 누구는 실망했을 수도 있고, 누구는 예상했던 것일 수도 있다.
● 세이버메트리션의 생각
요즘 야구를 보는 트렌드인 세이버메트리션에 따르면, 김성근 감독의 올 시즌은 큰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좋다. 115년간 메이저리그 수많은 경기에서 증명된 수치대로라면 김 감독이 할 것은 많지 않다. 통계에 따르면 메이저리그 한 시즌에 95%의 감독이 팀에 -2승∼+2승의 영향밖에 미치지 못했다. 95%라는 수치는 대부분의 경우를 의미한다. 만일 김 감독이 그 대부분에 들어간다면 큰 희망은 없다.
감독은 그날 팀에서 가장 컨디션이 좋은 선수를 그라운드에 투입할 수는 있다. 그러나 만루에서 삼진을 당하거나 홈런을 치는 것은 선수다. 위기 상황에서 투수에게 무엇을 하라고 조언해줄 수는 있지만, 결국 그 공을 던지는 것은 투수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야구는 선수가 하는 것이 맞다. 참고로 최근 3시즌(2012∼2014년) 한화의 시즌 초반 12경기의 평균 성적은 2승10패(총 6승30패)였다.
● 한국야구와 메이저리그의 차이가 만든 승수 차이
한화 이전까지 김성근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던 6개 팀의 첫 시즌을 보면 메이저리그의 통설은 틀린다. 김 감독이 새로 맡은 팀은 이전 시즌보다 평균 9.4승을 더 올렸다. 무시할 수 없는 수치다. 이 수치만 놓고 보면 그는 나머지 5%에 속하는 특별한 감독이다.
승수 차이가 나는 이유로는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지만, 메이저리그와 한국야구 선수층의 두꺼움 차이가 어느 정도는 영향을 끼쳤을 듯하다. 메이저리그는 경쟁력 넘치는 수많은 자원 가운데 필요한 선수를 데려오거나 선택하면 된다. 우리보다는 필요한 자원을 데려오기가 쉽다. 돈 또는 선수의 자발적 의사 등 시스템이 뒷받침해준다. 이때 감독에게 필요한 것은 올바른 판단이다.
우리는 다르다. 선수층이 얇다. 상대팀에서 데려오기도 어렵다. 우리가 가진 인재풀 안에서 선수들의 잠재된 기량을 찾아내야 한다. 이들을 훈련시키고 기막힌 원포인트 레슨을 해서 ‘보통선수’를 ‘잘하는 선수’로 만들어내야 한다. 선택보다는 육성이 더 중요하다.
김 감독을 5%의 감독으로 만든 것은 육성과 발굴의 성공사례 덕분이었다. 태평양 시절 박정현-최창호-정명원, 쌍방울 시절 김현욱, LG 시절 신윤호, SK 시절 정대현이 이런 과정을 거쳤다. 모두 가능성은 있는 선수들이었다고는 하지만 큰 그릇으로 완성한 이는 김 감독이었다.
기자는 이 가운데 한 시즌 운이 따르고 유난히 컨디션이 좋은 특정 선수를 찾아내 그를 중심으로 승리를 따내고 시즌을 꾸려갔던 감독의 능력을 눈여겨본다.
● 김성근이 말하는 ‘감독의 야구’는?
‘감독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보면 ‘감독의 야구’에 대한 김성근 감독의 설명이 나온다. 요약하자면 이런 것이다. “내가 말하는 감독이란 포괄적인 리더에 대한 것이다. 조직은 달성해야 할 공통의 목표가 있고, 리더는 그것을 위해 같이 하는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목표에 도달하게끔 목적의식을 심어주고, 그 속에서 즐거움을 찾게 해주는 것이 감독의 역할이다. 그래서 긴 시즌 동안 이기는 경기와 지는 경기를 확실히 구분해 선수가 모르는 사이에 지는 경기는 포기하고 이를 잘 실천하는 것이 감독이다. 어떤 상황에서의 결과는 플레이를 하는 선수가 만들지만 그 결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선택에는 감독의 의지와 판단이 들어간다. 그래서 승패의 결과는 감독이 책임지는 것이고 이것이 감독의 야구다.”
● 감독에게 필요한 것은 준비와 관찰 또는 통찰
여러 종류의 스포츠에서 성공한 감독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철저한 준비와 관찰이다. 거장 또는 명장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이 대목에서 강하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명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이끌던 알렉스 퍼거슨 전 감독은 “감독의 성공 조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관찰”이라고 말했다. 훈련 때, 경기 때, 또는 평상시 생활에서도 자기 선수들을 관찰하고 그릇의 크기를 판단하고, 긴장된 승부처에서 누가 담대하게 자신의 플레이를 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들여다보는 작업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 팀에서 오래 있는 감독은 그 선수를 관찰한 데이터베이스가 풍부하고, 새롭게 관찰해야 할 선수가 적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감독이 자주 바뀌는 팀의 성적이 좋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성근 감독은 한화의 사령탑에 취임하자마자 마무리훈련과 스프링캠프를 통해 관찰의 시간을 많이 가지려고 노력했다. 예전에는 다른 팀보다 이 과정이 빨라서 유리했지만, 이번에는 선수협의 반발(비활동기간 단체훈련 금지)로 그렇게 할 수 없었다.
● 부상과 위기 속에서 서로를 다지기
한화는 시즌을 시작하기도 전에 큰 난관에 빠졌다. 주전 포수 조인성이 시범경기 도중 종아리를 다쳤다. 내야수비의 중심을 잡아줄 정근우도 스프링캠프에서 부상을 당했다. 제 아무리 ‘야구의 신’이라도 선수의 부상은 예측할 수 없는 변수다. 특히 감독을 대신해 그라운드에서 선수들을 지휘해줄 포수의 결장은 팀에 큰 영향을 준다. 한화가 이익이 별로 없어 보이는 넥센과의 2대1 트레이드를 감행한 이유도 여기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초반 한화는 김성근 감독이 원하는 야구를 선수들이 완벽하게 수행하지 못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최근 빡빡한 경기를 거듭하면서 선수들과 벤치가 위기에서 버티는 힘을 차츰 쌓아가고 있다. “어려운 고비를 넘기면 팀이 더 단단해질 것”이라고 김 감독은 내다본다. ‘승리 속에서 배우는 것은 많지 않지만 패배를 통해서는 모든 것을 배운다’는 말이 있다. 물론 특별한 사람만이 이 능력을 갖는다. 평범한 이들은 진 것으로 끝난다. 그리고 쉽게 잊어버린다.
지금 김 감독과 한화 선수들은 어려운 경기를 통해 서로 부대껴가며 신뢰를 쌓아가는 중이다. 베테랑 감독의 노트 속에는 패배와 실수를 통해 얻은 많은 것들이 쌓이고 있다. 한화와 ‘김성근호’는 이제 시즌이라는 큰 바다의 초입에 들어섰다.
김종건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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