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스포츠 이상서]





“3월 15일을 조심하라!” 기원전 44년 한 점쟁이가 로마의 카이사르에게 했다는 경고다. 그가 비극적인 인생의 결말을 맞은 바로 그 날이다. 이 예언은 2058년 후의 한화 타자들에게도 유효 했다. 의미는 다르지만 말이다. 재앙의 전초는 14일 NC와의 원정경기였다. 9회 1사까지 노히트로 끌려 다니던 한화는 결국 1안타 영봉패라는 굴욕적인 스코어로 경기를 끝낸다. 성적이 안 좋으면 나머지 공부를 하는 게 당연하다. 한화 타자들이 특타에 돌입했다는 얘기다. 전날에도 있긴 했지만 김태균, 김회성 등의 주전 선수가 참여한 ‘진짜 특타’는 15일이 처음이었다. 김성근의 한화가 가진 공식적인 첫 ‘특타 데이’라 할 수 있겠다.


김 감독의 특타는 유명하다. SK 감독으로 부임 당시, 타격이 며칠 부진하다 싶으면 다음 날 “SK 특타 돌입”이라는 뉴스가 어김없이 나왔다. 이번 한화도 마찬가지였다. 15~16일 이틀간 한화의 특타 관련 기사만 20여 건이 쏟아졌다. 팬들은 은근히 즐기는 눈치다. “올 게 왔다”며 타격이 부진한 타자를 구체적으로 지목하기도 했다. 의문점 하나. 야신의 특타는 실제로 효과가 있을까? 로이스터 전 롯데 감독의 말처럼 “특타를 한다고 당장 유인구에 헛스윙하는 게 고쳐지진 않는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연습보다는 실전이 중요한 것 아닌가? SK 시절 그가 시행했던 특타를 분석해 보고, 특타의 실체를 구체화 시켜 봤다.


▲특타와 팀성적은 연관이 있다?



2010년 4월 4일 오후 인천 문학구장에서 열린 SK와이번스와 두산베어스의 경기에서 2안타의 빈타로 패한 SK 선수들이 경기 후 특타를 준비하고 있다



데이터의 범위는 김 감독이 SK에서 머문 2007년부터 중도 사퇴했던 2011년 8월까지 치른 페넌트레이스다. 이 4년 반의 시간 동안 특타는 총 8번 시행됐다. 물론 실질적으로는 훨씬 더 많다. 다만 여기서는 정확성을 위해 특타가 공식적으로 알려져 기사화된 경우만을 추려 표본으로 했다. 이중에서 날짜가 불확실한 건 뺐다. 또한 특정 선수 대상의 개별적인 훈련이 아닌 타자조 대부분이 참석한 특타만을 경우로 썼다. 특타 장소는 주로 다음과 같다. 홈경기시에는 인하대학교였다. 원정 경기엔 각 지역의 고등학교를 빌렸다. 서울은 경기고, 대전은 대전고, 대구는 경북고, 광주는 동성고, 부산은 경남고와 부산고 등이다. 시간은 보통 야간 경기 때는 낮 1시부터 경기 시작 1시간 전까지다. 낮 경기는 그보다 서너 시간 정도 빠르다. 특타를 중심에 두고 SK 타자들은 어떻게 변했을까.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는 반드시 징조가 있는 법이다. 특타는 언제 시작될까. 특타 당일 전 다섯 경기의 평균을 내봤다. 여덟 차례의 특타니까 총 40경기(8X5)를 대상으로 했다. 먼저 승패를 보자. 의외로 높다. 23승 1무 16패다. 승률이 0.575다. 무승부는 현재 규정을 따라 승수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물론 SK가 4년 내내 6할 이상의 성적을 거둔 강팀임을 감안하면 썩 준수한 성적이 아니긴 하다. 특타 돌입이 팀 성적과는 크게 연관이 없다는 방증이다. 2008년 시즌의 첫 특타라고 할 수 있는 4월 11일만 봐도 알 수 있다. 당시 SK는 7연승을 거두는 상승세에도 특타를 실시 했다. “(쓸만한) 타자가 부족하다”는 김 감독의 만족을 모르는 철학이 특타를 낳은 것이다.


실제로 특타 시행은 팀성적과 연관성이 떨어졌다. 반드시 연승을 달린다고 쉬고, 연패에 빠졌다고 돌입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2010년 시즌 초반 1위로 치고 나갈 때도 그랬다. 2위에 10경기차 앞서 있는 상황에서도 특타를 빼 먹지 않았다. 그렇다면 특타 후에 성적은 변화가 있을까? 역시 이후 5경기를 보자. 22승 1무 17패다. 특타 전과 비교했을 때 크게 다르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승리'란 결국 투타밸런스가 맞아 떨어질 때 오는 게 아니던가. 타자만으로 승이나 패가 결정 나진 않는다. 한화 타자들은 최근 팀승률이 좋지 않더라도 특타 걱정은 다소 내려놓아도 되겠다(데이터는 점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하면... 할 말은 없다).


▲특타의 시작, 방망이에게 물어봐



2011년 6월 7일 오후 목동구장에서 열린 넥센히어로즈와 SK와이번스의 경기에 앞서 김성근감독이 타자들을 한명씩 불러 일일히 배팅볼을 던져주며 타격훈련을 시켰다. 김 감독이 최정에게 직접 타격자세를 취하며 교정해주고 있다.



특타는 특별타격훈련의 준말이다. 그렇다면 부진한 방망이가 특타를 소환하는 건 당연한 결과다. 타격 성적을 들여다 봤다. 참고로 SK 타선은 김 감독 시절 동안 통산 팀타율 2위를 기록했다. 특히 2008년과 2009년엔 0.285의 고타율을 찍으며 팀타율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김성근의 SK 타선은 단 한 번도 4위 아래로 떨어진 시즌이 없었다. 이런 SK 타자들의 특타 전 5경기에서 기록한 평균 타율은 0.254였다. 팀타율 순위 역시 8개 구단 중 4.9위. SK 타자들은 다섯 경기 동안 경기당 3.75점을 내는데 그쳤고, 안타 또한 8.35개에 불과(?) 했다. 특타 후 다섯 경기에서는 어땠을까? 경기당 4.38점을 뽑았고, 안타는 9.3개를 때려 냈다. 하루를 사이에 두고 장족의 발전을 한 셈이다(+특히 표②에 나온 장타율 그래프를 보라. "특타를 하면 비거리가 늘어나는 효과를 본다"는 김정준 당시 SK 전력분석팀장의 말은 사실이었다). 






가장 인상적인 특타 데이는 2010년 8월 5일이었다. 특타 전 다섯 경기에서 팀타율 0.245(7위), 경기당 득점 2.4점으로 빈타에 허덕이던 SK는 특타 이후 다른 팀으로 변신했다. 이후 다섯 경기에서 팀타율 0.310(2위), 경기당 5.4 득점으로 폭발한 것이다. 상승세를 탄 SK는 삼성의 막판 추격을 뿌리치고 1위를 굳히게 된다. 2009년 7월 21일에 돌입한 특타 때도 마찬가지였다. 특타 전까지 0.267이란 팀타율 6위의 빈타에 허덕이던 SK 타선은 타율 0.339로 각성하며 이 부문 1위로 올라선다. OPS 역시 껑충 뛴 0.950. 한화 타자들은 팀타율이 6~7위 아래로 떨어지는 날이 이어지면 알아서 특타에 준비하는 게 좋겠다.


▲1:1 과외가 효과는 제일 좋은 법





특타 효과는 개인 교습에서 더 빛을 발했다. 2011년 4월 이호준이 그랬다. 이호준은 특타 이전 6경기에서 타율 0.105(19타수 2안타)란 빈타에 허덕였다. 결국 이호준은 4월 29일 개인 특타를 자청했다. 다음 경기인 5월 1일, 타석에 선 그는 완전히 다른 선수가 됐다. 시즌 중 처음으로 3안타 경기를 만들어 낸 것이다. 다음 경기인 5월 4일엔 22일 만에 홈런도 그려 냈다. 이호준은 특타 이후 6경기에서 타율 0.292(24타수 7안타)로 폭발했다. ‘인생은 이호준처럼’이란 말이 절로 나왔다. 이호준은 "정말 징하게 안 맞았는데 이젠 뭔가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며 모처럼 밝게 웃었다. 



SK 와이번스의 마무리 훈련 중 김성근 감독이 박재홍에게 타격을 지도하고 있다



특타는 트라우마 탈출의 해결책이 되기도 한다. 2009년 5월, 벤치 클리어링 사건으로 롯데팬의 표적이 된 박재홍이 좋은 예다. 박재홍이 사직에만 들어서면 집단 야유가 쏟아졌고 경기장에 난입한 관중이 장난감 칼을 휘두르고 그에게 돌진하는 꼴을 지켜봐야 했다. 같은 해 4월 29일 잠실 두산전에서 타석에 선 박재홍이 공을 몸에 맞자 1루 관중석에선 환호가 쏟아지기도 했다.


문제는 여기서 생겼다. 바로 몸쪽 공에 대한 두려움이다. 5월 5일 경기에서 롯데 선발 조정훈은 박재홍에게 몸쪽으로 바짝 붙는 공을 연달아 던졌다. 롯데전 이후로도 박재홍은 자주 몸쪽 공의 표적이 됐다. 위축될 수밖에 없다. 박재홍 자신도 "흔들리는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돌파구는 역시 특타였다. 김성근 SK 감독은 5월 15일 문학 KIA 전을 앞두고 박재홍의 특타를 지켜봤다. 김 감독은 박재홍에게 "맞는 법을 배워야 한다"며 "맞는 걸 피하려면 야구를 그만 두라"고 질책했다. 박재홍이 다음 날 다시 안타를 때려낸 건 당연한 일. 한화 타자들은 슬럼프에 빠질 때가 온다면 김성근 감독에게 조용히 개인 면담을 요청하는 것도 방법이겠다.


▲특타, 진짜 효과는 멘탈 강화?





김 감독은 "훈련의 고통을 통해 승리에 대한 강렬한 열망을 심는다. 이렇게 다져진 감정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특타 자체에 대한 효과는 찬반이 엇갈린다. “가만히 있어도 체력 소모가 심한 여름에 추가 훈련을 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라는 회의적인 의견도 있다. 김정준 당시 SK 전력분석팀장조차도 “다른 팀보다 특타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게 현명한 일인지 의문이 생길 때가 있다”고 말했다. 반대로 김성근 감독은 “특타를 하는 게 길게 보면 결국 득이 된다”고 주장한다. 심리적인 부분에서 안정감을 준다는 뜻이다. 특타의 맛에 중독된(?) 선수들 스스로도 예찬론을 편다. 


김성근 감독의 지도 아래 SK의 주전 외야수로 발돋움 한 김강민은 이렇게 말한다. “시합 나가서 지면 억울하죠. 어떻게 훈련했는데, 우리가 남들보다 두 배는 더 훈련했는데, 진다는 게 말이 되느냐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고양원더스 이야기> 발췌, 김은식 지음)


LG와 SK에서 김 감독과 야구를 했던 최동수도 마찬가지다. “공을 7000개씩 치는 날이 있다. 사람이 할 일이 아닌 것 같았다. 그 한계를 넘으니 뭔가 보이기 시작했다. ‘무조건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연습을 이렇게 했는데 안타를 못 치면 억울해서 죽을 것 같다는 독기가 생긴다.” (<김성근, 그리고 SK 와이번스> 발췌, 김정준 외 지음)


땀이 주는 달콤한 결과물을 맛본 선수들은 스스로 움직인다. 2011년 6월 6일의 일이다. 경기가 없던 이 날 김 감독은 "특타를 하고 싶은 타자들만 오라. 쉬고 싶은 사람은 쉬어도 좋다"고 했다. 하지만 이날 휴식을 취한 선수는 없었다. 팀이 연패에 빠지면서 위기감이 감돌자, 선수들은 감독의 의중을 읽었다. 보스의 상황도 눈치챘다. 한 베테랑 선수는 "감독님이 아프신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도 직접 공을 잡는 것을 보니, 긴장감이 더 생겼다. 선수단 내에서도 '이렇게 질 수는 없다'는 이야기가 나왔다"고 밝혔다. 김 감독은 그 해 시범 경기 기간 중 펑고를 치다 왼쪽 어깨 인대가 손상됐다. 


앞으로 한화 타자들은 특타 걱정은 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훈련을 자청하게 될 날이 올 테니 말이다. 그래도 염려가 된다는 이가 있다면 이 말을 건네주며 마치겠다. 2007년 5월 SK로 오자마자 특타에 '잡힌' 채종국의 일화다. 그는 전날 대구 원정을 마친 뒤 밤 9시 30분에 문학 구장에 도착했다. 그러고나선 김 감독의 특타를 받으며 새벽까지 방망이를 휘둘렀다. 그러나 만족이 안 된 김 감독은 다음 날 오전 전화를 걸어 낮 1시까지 구장으로 나오라고 한 뒤 또다시 특타 훈련을 시켰다. 채종국은 외쳤다.


"여기서는 정말 야구를 잘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출처 : 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id=241&aid=0002358602&redirect=true

Posted by 개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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