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에 11명의 선수를 입단시킨 고양 원더스 김성근 감독. '프로야구 사관학교'다운 성적과 선수를 성장시키는 데 탁월한 안목과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얼마 전 KIA 타이거즈는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 포수 오두철의 입단 소식을 발표했다. 이로써 고양 원더스는 창단 첫 시즌인 지난해부터 올시즌까지 모두 16명(2012년 5명, 2013년 11명)의 선수를 프로에 입단시켰다. 야구계에서는 고양 원더스를 ‘프로사관학교’라고까지 부르고 있다. 이 중심에는 고양 원더스를 이끌고 있는 김성근 감독이 존재한다.


김 감독은 주전급 선수들 대부분이 프로의 부름을 받고 떠난 상황에서도 올시즌 27승6무15패, 승률 0.643의 성적을 올렸다. 지난 시즌 20승1무21패를 기록하면서 5할 승률에 미치지 못했던 기록을 떠올리면, 주전이 빠진 원더스의 올시즌 성적은 ‘기적’이나 다름없다. 더욱이 북부리그 우승팀인 경찰청 상대로 5승1무를 기록했고, 북부리그 소속팀들인 SK와이번스한테는 3승1무2패, 두산과는 4승2패, 한화와는 3승3패의 성적을 올렸다. 남부리그 팀들과도 우위의 성적을 보였고, 특히 롯데와 넥센한테는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

 

독립구단이 퓨처스리그팀들을 상대로 절대 우위의 성적을 내는 데에는 김 감독의 승부욕과 선수들을 향한 끊임 없는 동기부여가 작용한다. 오랜만에 김 감독을 만나 인터뷰가 아닌 ‘강연’을 듣고 돌아왔다.

 

 

올시즌 성적이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지난 시즌보다 훨씬 좋았다. 주전 선수들이 프로로 옮긴 상황에서 이룬 성적이라 더 큰 관심을 받은 것 같다.

 

“원더스에선 5월 말에 9명의 엔트리 선수 중 6명을 프로에 보냈다. 주전 선수가 3명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프런트나 코치들이 ‘이렇게 선수를 보내면 시합 자체를 할 수 없다’라고 강한 우려의 목소리를 낼 정도였다. 난 ‘내가 알아서 하겠다’라고만 말했다. 우리 경기가 어렵다고 해서 선수의 일생에 한 번 올까말까 하는 프로행 기회를 놓치게 하면 안 되지 않겠나. 6명의 선수를 보내놓고 난 다시 시작했다. 6월 1일부터 4일까지 코치들도 나오지 못하게 하고 나와 45명의 선수들이 4일 동안 죽음의 훈련에 돌입했다.”

 

‘죽음의 훈련’이라…, 말만 들어도 그 분위기가 조금은 상상이 된다.

 

“6월 1일인가? 2일인가? 억수같이 비가 쏟아졌다. 이전 같으면 선수들을 위해 실내에서 훈련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난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그 비를 모두 맞아가며 선수들을 혹독하게 내몰았다. 돌이켜보면 비상식적인 발상이었다. 그러나 난 그 ‘4일’을 원더스가 변화될 수 있는 기회로 삼았다. 선수들이 갖고 있는 폼을 하나씩 뜯어 고치면서 서로 씨름을 했다.”

 

비를 맞으며 훈련하다 보면 선수들 입장에서는 체력적으로나 건강면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있었을 것 같다.

 

“그런 선수라면 내가 하는 훈련에 참가할 자격조차 없다. 칠십이 넘은 감독도 그 비를 다 맞고 서 있는데, 젊은 선수들이 그걸 견디지 못한다는 게 말이 되나. 고양 원더스는 그 4일 동안 다시 시작한 셈이다. 선수들한테 엄청난 동기부여가 됐다. 만약 그때 우리가 실내로 들어가 훈련했더라면 그 비가 우리한테 기회로 작용하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이 세운 목표가 있고, 그 목표를 향해 가겠다고 결심한 사람한테는 ‘비’는 아무런 제약 조건이 안 된다. 나도 그렇고 선수들도 그 비를 의식하지 못하고 훈련을 했다.”

 

코치들을 나오지 못하게 한 이유가 무엇인가.

 

“내가 자주 쓰는 방법이다. 어떤 분위기 반전이 필요할 때 코치들한테 의존하지 않고 직접 선수들과 맞선다. 선수들과 일대일 훈련을 통해 선수들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갔다고 판단했을 때 코치들한테 넘긴다. 그렇게 4일을 보내고 5일째 되는 날 경찰청과 시합을 했다. 4회까지 원더스가 9대1로 지고 있었다. 그러나 경기 종료 후에 보니까 우리가 11대 9로 이겼더라. 그게 고양 원더스의 힘이고 저력이다.”

 

 

고양 원더스의 김용성, 윤병호, 이승재, 이원재(이상 NC다이노스), 송주호(한화)가 지난 5월 프로에 입단했다.(사진=고양원더스)
 


결국엔 김 감독의 저력이 아닌가.

 

“난 지금까지 무슨 ‘타령’을 해보지 않았다. 인생 살면서 제일 싫어 하는 말이 ‘없어서 못한다, 안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요즘 리더들을 보면 타령 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선수가 없다, 긴장해서 못했다, 실수가 많았다 등등 타령을 하는 리더들이 눈에 띈다. 그런 말을 듣고 있으면 속에서 뜨거운 화가 치밀어 오른다. 리더는 10원짜리 살림도 100원짜리 살림처럼 만들 줄 알아야 한다. 선수가 없다고 타령만 하지 말고, 10원짜리 선수를 100원짜리 선수로 만드는 게 리더의 역할 아닌가. 선수가 없다는 말은 누워서 챔 뱉기나 마찬가지다. 자기의 능력 부족을 대놓고 인정하는 셈이다. 선수들도 보고 듣는 눈이 있다. 자신이 따르는 리더가 ‘타령’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생기겠나. 오히려 선수들은 그런 리더를 보면서 절망한다.”

 

포스트시즌을 관심있게 지켜보신 걸로 알고 있다. 특히 제자인 LG 김기태 감독이 올시즌 돌풍을 일으키며 플레이오프까지 올랐다.

 
“TV로 LG의 포스트시즌을 지켜봤다. 야구의 정석대로 풀어가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특히 공격면에서 번트를 제대로 성공했더라면 한국시리즈까지 올라섰을 것이다. 그리고 패자는 말이 없어야 한다. 리더는 동정받고 위로 받는 자리가 아니다. 비난을 받는 자리다. 패배에 대한 쓰라림이 있었다면 그 다음날부터 연습에 들어가야 한다. ‘선수가 잘해줬다’, ‘불쌍하다’는 얘기는 리더가 할 얘기가 아니다. 감독은 승리를 통해 선수에게 돈을 벌게 해줘야 한다. 이 얘기는 LG 트윈스 김기태 감독한테 하는 말이 아니다. 제자 기태에게 하는 말이다.”

 

 

LG와의 연습경기 때 잠실야구장 1루 더그아웃에 앉아 있는 김성근 감독.(사진=고양원더스)
 


LG가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고양 원더스와 두 차례의 연습경기를 가졌다. 당시 김기태 감독에게 조언해 준 부분이 있었나.

 

“‘역산법’을 얘기했다. 1회부터 9회를 생각하니까 전부 후반가서 투수 때문에 쩔쩔매는 게 아니냐. 그래서 9회부터 시작해 1회로 가는 전략을 생각하라고 말했다. 그래야 제대로 된 게임 전략이 완성된다는 설명이었다.”

 

그 연습 경기 때 고양원더스 페이스북에는 “11년 만의 잠실야구장 1루 덕아웃입니다”라는 글과 함께 김 감독의 사진이 올라와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11년 만의 잠실 1루 더그아웃, 어떤 느낌이 들었나.

 

“기분이 묘했다. 프로야구팀 더그아웃이 좋긴 좋구나 싶었다(웃음).”

 

다시 (프로로)돌아오고 싶은 생각이 있나.

 

“올해도 시즌 중에 모 프로팀에서 제안이 들어왔었다. 그래서 ‘생각해보겠다’고 말하고 시간을 보냈다. 일주일 후에 다시 전화가 왔다. 그래서 내가 ‘지금이야? 아니면 끝나고?’라고 물었더니 그쪽에서는 ‘지금’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안 되겠다고 거절했다. 그 팀에선 시즌 중에 날 데려가려 했고, 난 시즌 중에 원더스를 떠날 수가 없었다. 시즌 후였다면 생각해 볼 여유가 있으니까 아마 고민했을 지도 모른다. 내가 좋아하는 팀이었다. 그러나 시즌 중에 선수들이 나만 보고 있는 상황에서 내 욕심만 내세워 팀을 떠난다면 난 리더도 아니고, 진정한 야구인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도전과 열정으로 똘똘 뭉친 고양 원더스 선수들. 이 선수들한테 '사연'이 없는 이들은 없다.(사진=고양원더스)
 


고양 원더스는 김 감독이 존재했기 때문에 선수들이 몰려들었고, 김 감독 밑에서 훈련을 받아야 새로운 기회가 생긴다는 신뢰가 형성됐다. 만약 김 감독이 그 팀을 떠난다면 선수들이 받는 충격이 상당히 클 것이다.

 

“그래서 고민이다. 내 개인적인 욕심으로는 마지막 한 번은 화려한 프로에서 지도자 생활을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러나 선수들을 봤을 때는 여기 남아서 사연 많은 어린 선수들을 잘 키워 프로에 보내는 게 내 역할이란 생각도 든다. 하지만, 김성근 외에도 훌륭한 아마추어 지도자들이 상당히 많다. 만약 원더스에 계속 남는다고 해도 ‘김성근이니까 가능하다’는 소린 듣지도, 하고 싶지도 않다. 원더스에서 고생하는 다른 코치들한테도 예의가 아니다.”

 

박경완 선수가 SK 2군 감독으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박 감독으로부터 전화는 받았나.

 

“전화가 왔었다. 선수 때랑은 분명 틀릴 것이다. 좋은 경험으로 삼고 공부 열심히 하라고 얘기해줬다. 경완이가 2군 감독으로 가는 모습을 보며 SK도 큰 용기를 냈다고 생각했다. 김수경, 신윤호, 박명환 등 다시 시작하는 선수들의 용기도 중요하지만, 그들을 다시 받아주는 구단의 용기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버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때로는 안고 품고 가는 배려도 용기로 승화된다.”

 

김성근 감독은 인터뷰 말미에 지바 롯데에서 스승과 제자로 인연을 맺었던 이승엽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한국시리즈 보면서 (이)승엽이의 방망이가 이전 같지 못함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천하의 이승엽인데…, 그 속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하는 생각에 마음이 자꾸 불편해졌다. 프로골퍼 최경주는 지금도 공이 안 맞을 때는 하루 2000개~3000개의 스윙을 한다고 하더라. 승엽이도 방망이가 안 맞을 때는 시합 전이나 경기 후에 남아서 수천 개의 방망이를 휘두를 줄 알아야 한다. 그건 자존심과 상관없는 문제다. 올시즌 아픔을 많이 겪은 만큼 내년에는 분명 달라진 모습을 보일 것이다. 자신의 길을 찾아야 한다. 이승엽만의 길을.”

 

김 감독은 작정한 듯, 다음과 같은 이야기도 덧붙였다.

 

“프로야구 감독들은 고참 선수들을 대우한다는 차원에서 마무리 훈련이나 선수단 훈련 전 훈련에 대해 예외를 적용한다. 그러나 나이 어린 선수가 50을 훈련하면 고참들은 100을 해야 어린 선수들 수준을 따라갈 수 있다. 고참이라고 해서 20, 30만 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그 선수를 배려하는 게 아니라 은퇴 시기를 앞당겨주는 거나 마찬가지다. 이런 생각 때문에 고참들이 날 싫어한다(웃음).”

 

여전했다. 세월이 흘러도 김성근 감독의 야구에 대한 올곧은 철학은 변함이 없었다. 아마 이런 생각이 변한다면, 그는 더 이상 야구계에 몸 담지 않을 것이다. 김 감독이 다시 프로팀 더그아웃에 앉는 날이 올 수 있을까. 인터뷰를 끝내면서 갑자기 새로운 화두를 안게 된 느낌이다.

 

 

김성근 감독만큼 호불호가 갈리는 인물이 있을까. 그래도 그의 야구에 대한 지독한 '애'는 어느 누구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사진=일요신문 DB)
 

 

출처 :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general&ctg=issue&mod=read&issue_id=531&issue_item_id=8306&office_id=380&article_id=0000000431

 

Posted by 개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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