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원더스 훈련장에서 다시 만난 세 감독들. (왼쪽부터) 전창진, 김성근, 최강희 감독이다.(사진=일요신문 임준선 기자)
 


지난 8월 31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고양원더스 훈련장에 야구와는 관련 없는 두 감독이 나타났다. 바로 최강희 축구국가대표팀 감독과 프로농구 부산 KT 전창진 감독이었다.

 

지난 4월 네이버 <매거진 S - 나는 감독이다>란 인터뷰(김성근, 신치용, 최강희, 전창진 감독) 자리에서 처음 인사를 나눴던 두 감독들은 당시 독립리그라는 어려운 환경에서 훈련하는 고양원더스 선수들을 위해 간식 모임을 만들자고 제안했었고, 실제 ‘간식’을 사들고 직접 훈련장을 방문해 김성근 감독과 모처럼 해후했다.

 

최강희 감독은 오는 11일 브라질월드컵 최종 예선 우즈베키스탄전을 앞두고 3일부터 대표팀이 소집되면서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게 된다. 전창진 감독도 새로 영입한 선수들과 함께 연습경기를 치르며 기량을 점검하고 파악하느라 바쁜 일상을 보내는 중이다. 그런 상황을 잘 알고 있는 김성근 감독으로선 두 감독들이 훈련장까지 와준 데 대해 무한한 감사와 고마움을 전했다. 한창 담소를 나누던 세 감독들은 최근 프로야구계의 핫이슈였던 김성근 감독의 거취 문제에 대해 관심을 모아갔다.

 

“감독은 구단주와 동등해야 한다”

 

가장 먼저 전 감독이 이런 말을 꺼냈다.

 

“선생님, 그동안 한화 감독으로 가신다는 소문이 많았는데 고양과 재계약하신 거 보고, 역시 김성근 감독님은 다르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에 대해 김 감독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며 대답을 이어갔다.

 

“난 항상 후보로만 있다가 끝나요. 그것도 1순위 후보로….”

 

김 감독의 재치있는 답변에 두 감독들은 모두 큰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지 않아도 김 감독을 통해 확인할 게 있었던 기자가 대화 속으로 끼어들었다.

 

“고양원더스와 재계약을 서둘러 발표하신 이유가 있었을 것 같아요. 한화 감독 후보에 오르내리는 부분과 연관이 있었던 거죠? 한화 구단 고위층과 식사를 하셨다는 얘기도 들렸거든요.”

 

기자의 계속된 질문을 듣고 있던 김 감독이 조용히 이렇게 설명해나갔다.

 

“한화가 갈수록 복잡해지는 것 같고, 자꾸 내 이름이 오르내리는 걸 보면서 내가 빨리 정리하는 게 나을 것 같아 고양원더스랑 재계약하자고 했어요. 나도 프로팀에서 많이 잘려본 사람입니다. 그래서 한화가 한 감독에게 기회를 주길 바랐어요. 이렇게 갑자기 시즌 중에 감독을 자를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형식적으로는 자진 사퇴이지만 사실상의 경질이나 마찬가지인 한 감독을 보면서 제가 고양이랑 재계약을 머뭇거려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 감독이 계속해서 이런 말을 덧붙였다.

 

“감독은 구단주와 동등하게 가야 해요. 기업이 감독을 그 밑으로 두려면 망하는 거예요. 감독 경질만이 능사는 아니잖아요. 그 전에 그 감독에게 충분히 기회를 줬는지, 충분히 지원해줬는지, 충분히 믿고 기다려줬는지를 먼저 반성해봐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원더스의 허민 구단주는 참으로 특별한 분이에요. 그 분은 스스로 자신을 감독 밑에 두려고 하니까요. 이번에 원더스 선수 4명이 프로로 갔는데 선수를 보내면서 구단에선 돈 한 푼도 받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보냈어요. 오히려 선수들에게 전별금 형식으로 1000만 원 이상의 돈을 쥐어준 사람이 허 구단주입니다. 제가 원래 구단주나 기업과는 사이가 좋지 않은 편인데 원더스에 와서 그 인식이 많이 바뀌는 것 같아요.”

 

김 감독의 얘기를 듣고 있던 최강희 감독도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제 스타일도 김 감독님과 많이 비슷합니다. 다행히 성적이 나다 보니 안 잘리고 여기까지 온 거고요. 물론 감독님은 성적내고도 잘리셨지만요(웃음). 지금까지 대표팀과 밀월 관계였지만 앞으로 성적 여하에 따라 ‘죽일 놈’이 될 수도 있는 게 현실이에요. 그렇다면 자신의 생각대로 팀을 이끌어나가고 책임을 질 줄 아는 감독이 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프로로 이적하는 선수들이 더 많이 나오기를 바란다는 김성근 감독. 올시즌 동고동락했던 선수들을 프로에 보내며 가슴이 뭉클해지는 기분을 느꼈다고 한다.(사진=일요신문 임준선 기자)
 


프로로 간 선수들, 떠나보내며 눈물 핑 돌아

 

김 감독은 최근 프로로 스카우트돼 간 4명의 선수들(이희성, 김영관(이상 LG) 강하승(KIA) 안태영(넥센))에 대한 애틋함을 드러내 눈길을 끌었다.

 

“처음 고양원더스 선수들을 만났을 때는 수준이 너무 낮아 내심 걱정이 많았어요. 그런데 여기 선수들은 지도하는 방법에 따라 틀려지더라고요. 내 스타일대로 잘 따라온 선수들이 프로로 갔어요. 오늘도 한 명 또 가는 것 같은데…. 지도자 생활하면서 선수를 보내며 눈물이 핑 돌았던 건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막상 선수들이 찾아와서 고맙다고 인사를 하니까 마치 딸을 시집보내는 부모 마음이 되더라고요. 앞으로 더 많이 보내고 싶어요. 저기(밖에서 훈련 중인 선수를 가르키면서) 65번 선수(조성원)는 최근 한 시합에 홈런을 3개씩 몰아치고 있어요. 45일 동안 18kg을 빼며 가능성을 보여줬죠. 현대유니콘스와 넥센 히어로즈에서 뛰었던 선수인데, 여기 와서 정말 많은 변화를 이뤘어요.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자기 전까지 운동만 하니까 식이요법을 따로 하지 않아도 체중이 절로 줄었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선수들이 다시 프로 유니폼을 입고 뛴다면 더 큰 보람을 느낄 것 같아요.”

 

김 감독의 얘기를 경청하고 있던 전 감독은 두 감독 앞에서 자신의 고민을 털어 놓기도 했다. 새로 영입한 선수들이 좀처럼 자신의 스타일에 맞춰가지 못한다는 내용이었다. 김 감독은 “당장은 아파도 미래를 생각해서 감독의 철학과 경험 신념을 버리면 안 된다”는 조언을 들려줬다.

 

“예상대로 팀이 돌아가지 않을 때는 뭔가 하나를 버려야 해요. 그게 선수일 수도 있고, 다른 무엇일 수도 있겠죠. 전 선수들을 버렸어요. 감독 지시를 어기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한 선수나 야구장에서 매너와 이성을 잃고 자기 기분대로 행동하는 선수들은 가차없이 2군으로 내려보냈습니다. 그 선수가 주전이든, 에이스이든, 가리지 않았어요. 그런 모습을 통해 팀 분위기가 바뀔 때도 있습니다.”

 

 

브라질월드컵 최종예선전을 앞둔 최강희 감독. 김성근 감독과 궤를 같이 하는 지도 철학과 신념을 보여준다.(사진=일요신문 임준선 기자)
 


우승해야 할 팀이 못하는 건 분명한 이유 있어

 

최 감독은 이런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팀 구성원이나 구단의 지원, 감독의 지도력 등을 종합했을 때 당연히 우승을 차지해야 하는 팀이 하위권에서 맴돌거나 우승을 놓치는 이유에 대한 김 감독의 생각이 궁금하다고 물었다.

 

“내가 어느 농구단에 강의를 간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강의실에 앉아 있는 코치와 선수들을 보고선 그 팀의 그 해 성적을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감독을 제외하곤 모두가 귀를 닫고 있더라고요. 즉 강의는 뒷전이고 모두들 억지로 시간 때우려는 듯 힘들게 앉아 있는 모습에 큰 실망을 했어요. 강의가 끝난 뒤 구단 고위 관계자들과 식사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난 그 자리에서 그 농구팀은 올해 좋은 성적내지 못할 거라고 말했습니다. 불행하게도 제 말대로 됐었고요. 성적을 낼 수밖에 없는 팀이 그 성적을 내지 못하는 건 밖에서도 알지 못하는 그 팀 만의 내부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분명히.”

 

그러자 최 감독이 이런 얘길 이어간다.

 

“축구도 마찬가지입니다. 밖에서 보면 열 번 중 여덟, 아홉 번은 우승해야하는 팀인데 이상하게 우승 문턱을 넘지 못하고 심지어 우승은커녕 하위권을 맴도는 팀이 있어요. 언론에서 지적하는 문제점들 말고 선수들, 감독이 느끼는 문제점이 있기 때문에 잘 안 되는 겁니다. 돌이켜보면 우승이나 좋은 성적은 부자 구단이라고, 좋은 선수가 많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바로 마음입니다. 감독, 코치, 선수, 구단의 마음들이 얼마나 잘 맞아떨어지느냐에 따라 그 해 농사가 좌지우지 되는 것 같아요.”

 

전 감독도 이런 고민을 털어놓았다.

 

“올해 새로 뽑은 브랜든 코스트너란 선수가 정강이뼈 부상이 재발되는 바람에 집으로 돌려보냈어요. 제가 지난 해에도 외국인 선수 때문에 고민이 많았는데 올해도 시작 전부터 이런 일이 생기니까 머리가 아프더라고요. KT가 해마다 우승 후보로 꼽히거든요. 그리고 이제 뭔가 보여줘야 할 때가 됐고요. 올해 성적 내지 못하면 두 감독님들 말씀이 두고 두고 가슴에 남을 것 같은데요(웃음).”

 

세 감독들은 각기 다른 종목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는 데 대해 기사화할 수 없는 고민들을 주고받으며 마음을 열어갔다. 김 감독이 두 감독을 비롯해 함께 자리하지 못한 신치용 감독에게 9월 중순경 식사 자리를 제안했고 세 감독은 모두 흔쾌히 응하겠다고 약속했다.

 

 

최근 외국인 선수를 교체하며 속앓이를 한 전창진 감독. '우승 청부사'란 별명을 달고 있는 그한테도 '우승'은 해마다 풀기 어려운 숙제로 다가온다.(사진=일요신문 임준선 기자)

 


헤어지기 전, 전 감독은 브라질 최종예선전을 앞둔 최 감독을 향해 이런 덕담을 건넸다. 축구대표팀에 대해 엄청난 관심과 이슈가 쏟아지는 걸 잘 알 고 있는 전 감독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자리가 축구국가대표팀 감독인 것 같다”라고 하자, 최 감독은 “성적만 내면 해볼 만한 자리”라고 응수한다. 두 감독의 얘기를 듣고 있던 김 감독이 이렇게 정리해 버린다. “그러고 보면 고양 감독 자리가 제일 편한 것 같아 하하.”

 

 

출처 : 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380&article_id=0000000224

 

Posted by 개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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