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구라
일본 선수 노조가 올스타 휴식기 때 반상회를 열었다.
이 얘기 저 얘기 끝에 WBC 안 나간다고 선언해버렸다.
이대호는 이 말 듣더니 “야구의 미래를 생각해서 나와주길 바란다”고 한마디 했다.
일본야구기구NPB의 간판스타(?)다운 멘트다.
하지만 <...구라다>는 확신한다. 이건 일본 선수 노조의 구라다.
그들의 이유는 돈 때문이다.
조직위원회가 대회 수익을 미국에 심하게(66%) 몰아줘서 생긴 불만이다.
그들의 “우리 안 나갈래” 앞에는 이런 말이 생략돼 있다.
“계속 지금처럼 돈 나누면...”
불참 멘트는 선수 노조와 NPB의 짜고 치는 고스톱이다.
유리한 협상력을 갖기 위한 구라다.
디펜딩 챔프 일본이 빠진 대회는 상상하기 어렵다.
게다가 이 대회 스폰서십의 절반 가량은 일본 기업이 차지하고 있다.
선수 노조의 믿는 구석이다. 조직위도 이를 모를 리 없다.
즉 불참 선언은 더 많은 지분을 얻기 위한 뻥카일 뿐이다.
오히려 한국 선수협의 보이콧 선언이 신경 쓰인다.
10구단에 성실하지 않으면 WBC에 안 나가겠다고 했다.
하지만 사실 이 문제도 진짜 그럴 것이라고는 걱정하지 않는다.
올스타전 때도 그렇게 말은 해놓고 나갔기 때문에...
아마 한국도, 일본도 WBC에 출전할 거다. 그렇게 본다.
질문은 두 가지 버전
영리한 WBC 조직위가 보도자료를 돌렸다. 조별 편성이다.
한국이 대만, 네델란드, 호주와 한 조가 됐다.
한국도, 미국도, 일본도 딱 이맘 때 ; 올스타 브레이크 때는 뉴스거리가 없다.
이 타이밍에 보도자료를 내는 건 WBC를 잊지 말아 달라는 메시지다.
그래, 그들이 원하는대로 WBC 얘기를 한번 해보자.
<...구라다>가 던지는 질문이다. 두 가지 버전이다.
야신이 국대 감독이 될 수 있을까?
야신이 국대 감독이 되면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물론 WBC 사령탑은 올 시즌 우승팀 감독이 맡게 돼 있다. 일단은 그렇게 합의됐다.
하지만 여기에 대한 일선 감독들의 거부감이 심하다.
내년 3월이면 자기 팀 개막 준비에 올인해야 할 타이밍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임 감독제 같은 것을 KBO에 강추하고 있다.
미국은 팀이 없는 조 토리 감독이 맡기로 했고, 일본도 그럴 것 같다.
선동열, 류중일 감독은 김인식 감독이 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 번 대회 때 맡아서 잘했던 실적이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현장을 떠난 지 3년이나 됐고, 혹시나 건강상 걱정되는 부분 때문에 조심스럽다는 여론이 있다.
그래서 야구계에 꾸준히 나도는 얘기가 ‘야신 등판설’이다.
불편한 진실
“2002년 KS에서 김응룡 감독이 ‘야구의 신하고 대결하는 것 같았다’며 김성근 감독을 평가했다.
패한 상대에게 경의를 표하는 최상의 예우와 표현이었다.”
한 포털 사이트의 지식 검색에 나온 ‘야신’의 유래다.
그러나 여기에는 오류가 있다. 미안하고, 죄송한 일이지만 정확한 설명이 아니다.
사실 야구의 신이라는 말은 좋은 뜻으로 한 얘기가 아니었다.
은근히 비꼰 말이었다.
아시다시피 두 감독은 정반대 스타일이다.
코끼리 감독은 기자들에게 일일이 설명하지 않는다.
설명은 커녕, 기자들과 얘기하는 것 자체를 아예 즐기지 않는다.
반면 김성근 감독은 아주 자세하고, 세밀하게 복기해준다.
어제 그 볼카운트에서 왜 그런 사인을 냈고, 왜 투수를 교체했고....
당연히 미디어에는 김성근 감독의 작전, 선수기용에 대한 얘기가 넘쳐난다.
이말은 ‘트윈스 승리 = 좋은 작전의 결과’라는 식으로 표현되기 쉽다는 뜻이다.
그걸 보다 못해 “야구의 신하고…”라는 꽈배기 멘트가 나온 것이다.
정리하면, ‘야구의 신’은 칭송이 아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앞뒤 정황이 생략되면서 최초 유포자의 뜻과 다른 의미가 됐다.
일본 컴플렉스
우리 정치사가 레드(Red) 컴플렉스라는 키워드로 풀어야 했던 시절이 있다.
통치자가 과거의 사상적 배경 때문에, 오히려 극단적인 반공주의자의 길을 걸었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야구판에도 그런 게 있다. 일본 컴플렉스다.
우리 야구는 어쩔 수 없이 일본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았다.
훨씬 깊은 역사와, 넓은 저변과 높은 수준을 가졌기 때문이다. 인정하기 싫지만....
일본 출신의 김호중, 김영덕, 김성근, 백인천...이들은 선수로, 지도자로, 군림했다.
하지만 야구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대립각이 존재했다. 일본 출신 vs 국내파.
일본 출신 김영덕, 김성근 감독은 해박한 이론과 경험을 갖췄다.
게다가 공통적으로 무지 연구하고 노력하는 스타일이다.
그러나 이들은 쌓은 것, 해낸 것에 비해 합당한 대접를 받지 못했다.
굳이 출신을 따지려는 컴플렉스가 야구계에, 매스컴에 작용했다.
앞에서 말했던 김성근 감독의 미디어를 대하는 태도도 여기서 비롯됐다.
그는 신참 기자의 질문에도 땅에 그림까지 그려가며 성심껏 대답한다.
그만큼 절실하게 세상과 소통이 필요했던 거다. 감동, 감화한 기자는 열심히 기사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그 메시지는 출시되지 않거나, 축소돼서 전달된다.
미디어 유통 구조의 상층부에 존재하던 알량한 컴플렉스 때문이다.
적어도 와이번스에서 트로피를 들어올리기 전까지 그는 이런 ‘피해자’였다.
어머니와의 약속
야신은 한번 국대 감독이 될 뻔 했다. 2009년 WBC 때다.
1순위 김경문 감독이 마다하자, KBO는 순번상 그에게 의향을 타진했다.
야신의 대답은 ‘NO’였다. 왜? ‘YES’ 할 수 없게 물어봤기 때문이었다.
제안이 성의도 없고, 절차도 무시해서 그렇게 됐다는 얘기다.
그러자 KBO는 얼른 김인식 감독을 설득해서 발표해 버렸다. (야신의 해석이다)
“그래도 그때 (김)인식이가 투수코치라도 해달라고 했으면 갔을 거야.” 야신의 말이다.
한국에서 꽤 잘했던 재일동포 투수가 있었다.
그가 몇 년간 우리 프로야구를 겪은 뒤 이런 말을 했다.
“일본에서 야구하면서 재일 한국인이라고 차별 당한다는 생각은 한번도 해 본 적 없습니다.
그런데 내 조국에 와서 이상하게 그런 느낌을 자주 받게 됐습니다.”
그는 결국 일본으로 돌아갔다.
1964년 22살짜리 청년 하나가 야구 글러브와 공만 들고 대한해협을 건넜다.
이 청년은 눈물짓는 어머니에게 약속 하나를 했다.
“나중에 꼭 한국 대표팀 감독이 돼서 돌아오겠습니다.”
이 청년은 그 약속을 50년 다 돼도록 지키지 못하고 있다.
백종인 칼럼
출처 : http://sports.news.nate.com/view/20120723n18953?mid=s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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