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그는 여전히 그라운드에 머물지만 아버지와의 거리는 멀어졌다. 2011 시즌을 끝으로 SK를 떠난 김정준 전 코치가 '야구 해설위원'이라는 새로운 옷을 입었다. 야신의 아들은 왜, 마이크를 쥐게 됐을까.
오키나와 전지훈련 취재를 위해 출국을 하루 앞둔 20일, 한창 새 시즌 준비로 분주하던 김정준 SBS ESPN 야구 해설위원을 만났다. "제 이야기 많이 나가지 않았어요? 실시간 검색어 1위요? 아이고, 그런 건 못해요.(웃음)" 사람 좋은 웃음으로 기자 앞에 마주 앉은 이 남자. 야구팬들의 수 많은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야신의 아들'이다.
-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시즌을 준비하던 예전과는 또 다를 것 같은데요.
정신이 없네요. 해설위원으로서 '데뷔 시즌'이다보니 긴장도 많이 되고, 여러 가지로 신경도 쓰입니다. 야구장에 가는 건 떨리지 않죠. 오히려 시즌이 시작되고 현장에 나가면 조금 더 편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하지만 처음 모니터에 비춰진 제 모습을 보던 일, 목소리가 작아서 발성연습에 한창인 것, 중계 시에 사용해도 되는 단어와 사용해선 안 되는 단어를 구분하는 것 같은 일들은 태어나 처음으로 해 보는 경험이죠. 당연히 긴장됩니다.
- 수 없이 들어 온 질문일 거라 생각해 죄송합니다만, 솔직히 여쭤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처음 해설위원 일을 시작한다고 하셨을 때 김성근 감독님은 어떤 반응이셨나요? 조언도 해주시나요?
"다른 사람의 말이 아닌 너의 말로 해설을 하라"고 해주셨던 조언이 거의 유일해요. 원래 이것저것 말씀을 많이 하시는 분도 아니시고요. 모의중계도 해 보고, 거듭 연습하면서 요즘에는 그 말씀이 무슨 의미였는지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방송을 위한 '툴'을 갖추는 것이 기본적인 자질의 문제라면 경기 중의 상황에 대해 어떤 코멘트를 할 것인지는 저의 선택이잖아요. 그런데 어느날 보니 제가 '돌려' 말하고 있더라고요. 위험한 발언은 의식적으로 피하게 되고 "~인 것 같습니다", "~처럼 보이네요" 등의 표현을 많이 쓰는 거죠. 처음부터 중심을 잡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감독님이 해 주셨던 '네 자신의 목소리로 중계를 하라'는 충고를, 다시 새기고 있습니다.
- 사실 각 분야를 막론하고 2세들의 존재는 이제 그리 생소한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야신의 아들'이라면 이야기가 조금 다를 것 같은데요. 그 타이틀이 부담스럽기도 하실 것 같고요.
저도 한때는 그 타이틀을 싫어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게요, 왜 그랬을까요? 정확히 뭐라 설명하기는 어려워요.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피할 수 없으면...즐기는 것 까지는 아니고요.(웃음) 받아들이게 됐고, 또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게 된 거죠. 저는 어차피 야구계에 몸 담고 있는 사람입니다. 야신의 아들이라는 단어만큼 김정준이라는 사람을 정확하게 설명해 주는 단어는 현재로서는 없는 것 같아요. 잘 모르시는 분들도 일단 그 설명을 듣게 되면 짧은 시간 안에 저에 대해 70%는 이해할 수 있게 되죠. 실제로 저 또한 그 단어가 내포하는 이미지와 거의 비슷한 캐릭터를 가진 사람이기도 하고요. 물론 그 다음 30%를 어떻게 설명하느냐가 또 중요한 문제겠지만요.
- 그 타이틀 만큼이나 뗄 수 없는 것이 SK와의 인연일텐데요, 많은 팬들이 이번 시즌 SK 경기 때 어떤 중계를 하실까 궁금해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에요.
피할 수 없는 부분이죠. 그런데 오히려 저는 그렇게까지 크게 의식을 안 하는데, 주변에서 지켜보시는 분들이 더 많은 생각들을 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한 가지는 말씀드릴 수 있어요. 물론 저는 SK에서 야구의 많은 부분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SK의 야구가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고요. 하지만 이제는 SK가 아니라 8개 팀 모두를 지켜봐야 하는 입장이에요. 프로야구 전체의 스토리는 SK 한 팀이 아니라 8개 팀 모두가 쓰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해설위원 역시 결코 어느 한 팀의 상황이나 배경에만 의존해서는 안 되고요. 그렇게 생각하면 SK에 감독 교체로 어떤 변화들이 있었고, 그것들을 짚어줄 필요성이 있는데 제가 굳이 그 부분을 언급하지 않는 것이 더 어색하겠죠. 같은 예로 LG의 상황은 어떠니까, 롯데는 팬이 많으니까 등등 어떤 제한된 시선이 아니라 프로야구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관점에서 최대한 많은 이야기들을 들려드릴 수 있도록 노력할거에요.
- 방송을 준비하시면서 롤 모델로 삼으신 해설위원이나 인물이 있으신가요?
회사에서는 어떤 캐릭터를 원하실 지 잘 모르겠는데…(웃음) 이철순 선배처럼 소위 '독설가' 타입으로 해보고 싶다는 구상은 있어요. 물론 실전에 들어가봐야 더 구체적으로 그려지겠지만 안경현 해설위원이랑 '경현아, 너는 '초'긍정 해설로 나가라, 나는 '초'부정 해설로 맞설께'하고 농담도 한 적이 있거든요. 저는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고 목소리를 내고 싶어요. 해설은 단순히 경기를 읽어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경기장에 모인 많은 사람들의 '욕망'을 대변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덕아웃에서 경기를 보는 사람, 1층에서, 내야석에서, 외야석에서 그리고 3층 꼭대기에서 경기를 보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읽어야 하죠. 물론 그 모든 걸 한꺼번에 읽어낸다는 것은 불가능 하겠지만 저는 그 누구보다 선수의 마음도, 감독의 마음도, 팬들의 마음도 가까이에서 지켜봐 온 사람이라고 생각해요.지금까지의 그런 경험들을 충분히 활용할 겁니다.
- 그렇게 생각하면 완급조절도 중요할 것 같은데요, 시즌 초반 너무 많은 '폭로'가 나오는 거 아닐까요.
주변에서도 가끔 그런 농담들을 하시더라고요. 아직 방송에서는 신인이다보니 소위 '업계의 비밀'을 너무 가감없이 이야기하게 될까봐 저도 걱정은 조금 되네요.(웃음) 다만 무조건 많은 정보를 주는 것이 아니라 왜 이 대목을 이렇게 해석했는지 논리가 뒷받침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할 거라고 봐요. 제가 방송을 시작한다고 했더니 한 지인분께서 이런 말씀을 해주시더라고요. '너는 지금 150km를 던지는 신인하고 같다. 드래프트에서는 모두 너를 주목했지만 진짜 싸움은 그 다음부터다. 많은 사람들이 해설위원 김정준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히 큰 메리트가 되겠지만 살아남지 못하면 그 뿐이다'라고요. 딱 맞는 말씀인 것 같았어요. 하는 일은 조금 달라졌지만 결국은 야구하고 똑같은 것 같아요.
- 마지막 질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야신의 아들이 마이크를 쥐게 된 진짜 이유를 궁금해 합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던 건가요.
사실 2009년 이전까지 야구팬들 앞에 나설 일이 많았던 건 아니었습니다. 제가 특별히 주목받는 것을 좋아했던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그 사건'을 계기로 존재가 세상에 알려진 이상 가급적이면 제 목소리를 내야겠다는 생각은 하게 됐어요. 내가 의도하지 않은 말이나 생각들로 오해를 만드는 것은 더 큰 부작용을 낳을 테니까요. 그래서 어떤 이야기를 할 때 더 정확하게 전달하려고 항상 노력했어요. 3월에 제가 쓴 책이 나오는데 아마 같은 맥락일 거에요. 감독님 경질비화부터 SK야구를 통해 제가 배운 모든 것들을 최대한 정확히 기록해 남기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생각들이 해설위원 일로도 연결된 것 같아요. 더욱이 이제는 한 팀이 아니라 8개 구단 모든 팀들의 야구를 공부하고 또 배울 수 있게 된 거 잖아요. 저는 지난 시즌 한국 시리즈 때 류중일 감독님이 '그' 대목에서 오승환 선수를 등판시키신 이유가 정말 궁금했거든요. 이제는 중계석에 앉게 됐으니 팬들이 궁금해 할 부분까지도 전부 여쭤봐야죠. 왜 마이크를 잡았냐고요? 당연히, 야구를 더 알고 싶어서 입니다. 야구를 더 배우고 싶어요.
@ 인터뷰를 마치고
진부하다면 진부하고, 피할 수 없다면 피할 수 없는 '야신' 키워드로 시작된 인터뷰는 시간이 흐르면서 누구, 누구의 아들이 아닌 해설위원 김정준을 알아가는 자리가 됐다. 그리고 하루 뒤인 21일 그는 오키나와 전지훈련 취재를 위해 일본으로 출국했다. 백네트 뒤가 아닌 중계석에서 2012 시즌 프로야구를 바라보게 되는 김정준 위원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이 설레어 하고 있다. 아버지를 닮아 무뚝뚝하고, 무슨 일에도 크게 동요하지 않을 것 같은 시크한 성격과 표정. 그런 그가 많이 긴장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줄곧, 누구보다 야구장 가까이에 있던 야신의 아들은, 영화 <머니볼>의 빌리 빈이 그랬던 것처럼 묵묵히 핸들을 돌려 그곳으로 돌아오는 중이다. 처음부터 해설위원으로 '대박'을 터뜨릴 생각은 없단다. 단, 최고의 전력분석관으로 명성을 얻은 자신의 프라이드만큼은 결코 다치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지금도 카페 창가에 홀로 앉아 그저 조용히 자료들을 들여다 본다. 아들은, 그렇게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I've got to let it go. And just enjoy the show."
(SBS 통합온라인뉴스센터 이은혜 기자)
출처 : 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096&article_id=000016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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