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근 감독(오른쪽)은 곽 위원장을 만나 자신의 야구 철학을 있는 그대로 말했다. / 노시훈 기자
'임진년(壬辰年) 새해가 밝았다. 올해는 60년 만에 오는 흑룡의 해라고 해서 주위에서는 더욱 기대를 거는 눈치다. 정말 올해는 흑룡의 기운을 받아 온갖 어려움과 고달픔을 모두 떨쳐 버리고 신나게 비상하는 한 해가 됐으면 좋겠다. 총선 대선을 깔끔하게 잘 치르고, 남북 관계에도 획기적 전기가 마련되면 이 또한 얼마나 통쾌할 것인가. 통쾌하고 신나며 짜릿한 것으로 따지자면 9회말 역전 결승 만루 홈런을 빼놓을 수 없다. 야구계의 김성근(70) 고양 원더스 감독과 이만수(54) SK 와이번스 감독을 신년 특집 릴레이 인터뷰의 대상자로 선정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일흔의 나이에도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또다시 기성 야구계를 상대로 역전 만루 홈런을 노리는 김 감독이야말로 '쿨한 만남'의 적격자가 아닐까. 또 그런 김 감독과 불편한 관계에 놓여 있으면서도 나름대로 새 출발을 준비하고 있는 '헐크 감독'은 어떤 생각으로 새 시즌을 준비하고 있을까. 야구광을 자처하는 나로서는 두 사람과의 대화 자리를 놓칠 수 없었다.
'야신' 김성근 감독은 이 시대 최고의 이슈메이커다. 지난해 8월 SK 사령탑에서 물러난 뒤 야인의 길을 걸었어도 늘 수많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새 감독을 찾는 구단의 유력 후보군으로, 후임 감독과 대립한 불화설의 주인공으로도 연일 화제의 중심에 섰다. 심지어 야구장이 아닌 브라운관 속 CF를 통해서도 시청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 냈다. 그런 그가 최근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많은 이들의 예상을 뒤엎고 국내 최초 독립야구단인 고양 원더스의 초대 감독으로 취임해 야구계 마이너리거들의 역전 만루홈런을 준비하고 있다.
최근 송파구 잠실동의 한 레스토랑에서 만난 김 감독은 청바지에 모자를 눌러 쓴 편안한 차림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그러나 특유의 직설적인 화법으로 야구계 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던지는 김 감독의 고언은 역시 묵직했다.
▲ 자신의 야구론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에는 진지한 모습을 보인 김성근 감독.
◆ "야구는 데이터와 직감의 조화…선수 아닌 감독이 하는 것"
- 어려운 자리에 나와 주셔서 감사하다. 제가 워냑 야구팬이기도 하고 예전부터 KIA 타이거즈 팬이라서 이렇게 유니폼을 입고 나왔다.
뵙게 되어 반갑다. 난 아까 들어오면서 웬 KIA 타이거즈 관계자가 있나 해서 깜짝 놀랐다.(웃음)
- 요즘 CF에 나오시는 걸 잘 봤다. 소소한 재미도 있고 인간적인 면모도 엿보인다. 사람들이 김 감독을 좋아하는 이유가 '스토리'가 있다는 점인데, 특별히 맡게 된 계기가 있나?
K 감독 그만두고 나서 CF가 3편 정도 들어와 있었다. 쭉 보니까 이게 괜찮은 것 같아서 선택했다. 사실은 마지막 부분에 아이한테 '나 몰라?'라는 대사가 더 있었다. 끝에도 머리를 긁적이면서 '얘가 나 모르는 구나'라고 하는 장면도 있었다.(웃음)
- CF처럼 요즘 어린 팬들은 잘 모르지만 사실 김 감독은 20대 시절 선수로도 유명하지 않았나. 1963년에는 노히트노런도 기록했더라. 당시 20대 초반의 어린 선수였을 텐데 상당히 정신력이 좋으셨던 것 같다. 그때 기억이 있나?
아마 상대가 약해서 그런 것 같다.(웃음)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때 노히트노런을 기록했다는 건 기억나지만 언제였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1963년부터 64년까지는 9번 연속 완투승을 한 적이 있다. 지금 선수들이 들으면 놀랄 기록이다. 20승5패를 했는데 경기 수는 45경기도 안됐던 것 같다. 워낙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이라 지금 기록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 김 감독 스타일을 흔히 '데이터 야구'라 한다. 데이터 야구는 일본에서 굉장히 발달돼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현재 한국의 수준은 어느 정도 와 있다고 생각하나?
우리나라와 일본의 격차가 컸던 것은 하드웨어는 괜찮았지만 소프트웨어에서 밀렸기 때문이다.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우리나라도 뒤늦게 깊게 파고들기 시작했다. 내가 SK에 부임한 2007년부터 데이터가 중요하다는 걸 야구계에 알리게 됐다. 그 전에도 알고 있던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을 안 했다. 야구는 확률 게임이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직감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 아무리 방망이를 잘 치는 선수라도 10번 중에 7번은 못 치지 않나. 3번을 때려 내도 언제 치는 것인지가 중요한 것 같다. 그런 기회들이 잘 모여야 점수가 나는데, 경기를 치르다 보면 특정 상황에서 일을 낼 것 같은 분위기들이 보이나?
내가 투수고, 이대호가 타자라 치자. 지난 1년 간 10번을 상대해서 5번을 맞았다면 어떤 시기와 타석에 맞았는지, 긴박한 상황이었는지, 주자가 어디 있었는지 등을 모두 종합해서 판단해야 한다. 5할 타율이라는 건 단순히 보이는 수치일 뿐이지 살아 있는 데이터가 아니다. 지금 이대호의 컨디션이나 경기 상황을 고려해서 다양한 판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것들이 아까 말했던 직감이다.
- 들어 보니 느끼는 게 많다. 국정도 야구처럼 기술적인 데이터를 바탕에 두고 현재 국민들의 생각을 잘 읽는 감각이 한데 어우러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데이터와 직감, 참 이상적인 조화인 것 같다.
야구에서는 가지고 있으면서 버리는 데이터가 많다. 데이터는 어디까지나 참고 사항이지 전부가 아니다. 반대로 어느 팀 감독은 보니까 데이터를 전혀 안 보고 직감만 가지고 하더라. 그러면 어쩌다 하나는 맞겠지만 이길 수가 있겠나. 야구장에서는 모든 것들을 한순간도 놓치면 안 된다. 그게 현장에 앉아 있는 감독의 책임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이상할지 몰라도 야구는 선수들이 한다는 이야기들을 하지만 난 언어도단이라 생각한다. 야구는 감독이 하는 것이다.
▲ 김성근 감독은 한국 사회에 대한 따끔한 충고의 메시지도 잊지 않았다.
◆ 불어 닥친 독설 논란, '고마움' 모르는 사회에 대한 일침
- 요즘 네티즌들의 관심은 김성근 감독과 이만수 감독의 불편한 관계에 맞춰져 있다. 흔히 이런 것들은 언론에 의해 부풀려진 경우가 많지만, 완전히 사실이 아니라고 하기엔 무리인 경우도 있다. 솔직히 어떻게 된 건가?
감독이 바뀌는 건 자연스러운 것이다. 구단이 갖고 있는 권리이기 때문에 그것 가지고 왈가왈부할 문제는 아니다. 이게 문제가 된 건 한 남성지와 인터뷰를 하면서 부터다. 참고로 난 감독 잘리고 두 달 동안 신문 한 번 안 봤다. 한국시리즈도 5차전만 봤다. 나머지는 언론과 완전히 단절했다. 언론들이 진실을 전달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국민들은 진실을 알 권리가 있고, 매스컴은 똑바로 전달할 의무가 있다. 우리나라 사회는 이런 것들이 다 결여돼 있다. 당시 인터뷰에서는 이런 사회 전반적인 이야기를 한 것이다.
- 사회 전반적인 이야기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쪽인가?
내가 오랜 감독 생활을 하면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 때문에 울어 본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그걸 견뎌 내고 지금껏 살아 왔다. 우리나라 사회는 고마움이나 미안함을 모른다. 한번 은혜를 받으면 평생 가지고 가야 하는데 의리가 없다. 그때 인터뷰에서는 그런 것들을 말하고 싶었다. 그 중 하나 우연히 들어간 질문이 이만수 관련 부분이었는데 그런 이야기만 부각돼 보도된 거다. 왜 이 말을 했는지 아무 내용이 없으니 이 문제만 크게 확대됐다. 그럼 인터뷰할 필요가 없지 않나.
- 무슨 의도였는지 이해가 간다. 말하고자 하는 의도는 따로 있는데 전·후임 감독 간 문제만으로 왜곡된 것 같다. 사안이 워낙 자극적이니 전체 인터뷰 중 이 부분만 집중적으로 확대된 것으로 보인다.
말씀 잘하셨다. 어떤 신문이나 방송에 이야기를 해도 90%는 없고 10%만 가지고 부각한다. 이만수 감독 이야기는 지금 하면 더 시끄러워 질까봐 말을 안 한다. 어쨌든 내 제자인데, 내가 뭐라고 말하면 누워서 침 뱉기에다 곧 내가 잘못 가르친 것이다. 단 하나, 어떤 사람이든 자기가 해 놓고 보면 그게 나중에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그때 느끼는 점이 있을 것이다. 자식이 부모를 외면하다가 나중에 부모가 됐을 때 부모의 고마움을 알고 눈물을 흘리는 것과 똑같지 않나 싶다.
- 지난해 말 일구회 시상식에서 이만수 감독과 악수를 나누며 노려보는 듯한 사진이 화제가 됐다. 그 이후에 두 분이 만난 적이 있나?
그런 걸 뭐 새삼스럽게…. 만난 적은 일구회 시상식 때가 끝이다. 난 성격이 이상해서 과거에 내 뒤통수를 친 사람들을 안고 살 때가 많다. 외나무다리에서 원수를 만나도 끌어안는다. 그런 것 가지고 평생 원수처럼 살지 않는다. 내게는 사람들의 오해도 많고 적도 무수히 많다. 그런 것 때문에 우리 가족들이 눈물도 많이 흘렸다. 하지만 집에서도 지금껏 해명 한번 안했다. 하지만 내 인생관은 변명 안하기다. 해명을 하면 그 순간은 재치 있게 살지만 그 기간이 길지 않다. 결국에는 우직한 사람이 이긴다. 그것이 올바른 길이다.
▲ 일구회 시상식에서 화제가 된 김성근-이만수 감독의 사진을 보여 주고 있는 곽 위원장.
◆ "속으로는 울고 싶어도 강하게 키워야…그게 곧 아버지 같은 지도자"
최근 출간한 책을 쭉 봤다. 내용에 제자들과 나눴던 각별한 에피소드들이 있어서 따뜻하고 인간적인 면을 볼 수 있었다. 그동안 선수들에게는 늘 엄한 아버지상이었던 이미지와는 상반되는데?
하마는 새끼를 낳으면 숨을 못 쉬게 물속으로 집어넣어 버린다. 20초 정도는 견딜 수 있다는 걸 가르치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가혹하지만 강하게 키우는 것이 곧 애정이다. 지도자는 엄한 아버지가 돼야 한다. 자식의 미래는 내 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미래를 항상 걱정하고 내가 올바르게 행동해야 한다. 부모라 하는 것은 가슴으로 모든 비난을 받고, 위기에는 자신 뒤에 자식들을 감출 줄 알아야 한다.
- 책 내용처럼 김 감독은 예전부터 선수들에게 사적인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익히 알려져 있다.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선수들에게 인자한 할아버지가 아닌 엄한 아버지 같은 감독 스타일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할아버지는 아이가 쓰러지면 일으켜 준다. 아버지는 놔둔다. 속으로는 울고 싶고 만지고 싶지만 그대로 둔다. 그게 아버지고 곧 애정이다. 대신 해줄 건 다 해 주는 거다.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도 모든 사적인 시간을 선수에게 내줄 수 있는 감독이어야 한다. 김성근이라는 감독의 도량은 그리 넓지 않다. 거짓말을 못하고 늘 직선적이다. 일을 할 때는 1년 내내 어디에서든 선수 앞에서 밥을 먹지 않는다. 원정 갈 때 비행기도 같이 안 탄다. 어찌 보면 감독은 어느 정도 신비스러움 속에 있어야 한다고 본다.
▲ 선수들을 지도하는 이야기를 건네고 있는 김성근 감독.
- 평소 아들처럼 대하는 선수들을 강하게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 것 같다.
내가 구단하고 싸우는 이유도 그런 것들이다. 프런트는 현장에 대한 선을 확실히 지켜야 한다. 우리나라는 그 선을 자주 넘어 들어오기 때문에 내가 자주 막은 것이다. 그래야 아이들이 편하게 야구한다. 선수들은 프런트 기분에 맞춰 줄 필요도 없고 자기 할 일만 하면 된다. 나 역시 마찬가지로 구단에 아부할 필요는 없다. 난 이기기 위해 왔지 기분 맞추러 온 사람은 아니기 때문이다.
- 선수들에게 엄했던 이미지라면 과거 해태와 삼성을 이끌었던 김응룡 감독도 못지 않았다. 한때 라이벌 관계이기도 했지만 동년배라 친구처럼 지낸다던데?
재밌는 이야기를 하나 하자면, 내가 예전에 해태 2군 감독으로 들어간 적이 있었다. 사람들이 보면 김성근이 김응룡과 동기인데 왜 갔는지 이상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김응룡 감독이 왜 강한지 직접 보고 싶었다. 그런데 그렇게 2년 동안 지내 보니까 아니구나 싶었다. (김응룡 감독은) 딱 결정하면 움직이지 않더라. 나도 그런 스타일이고, 김 감독 역시 거짓말 못하고 사람들을 달래 주는 건 못했다. 나쁘게 말하면 융통성이 없는 사람이었다(웃음). 그래도 그 2년 동안 공부 많이 했다.
▲ 이날 김 감독은 청바지에 모자를 쓴 편안한 차림으로 자리해 젊은 감각을 뽐냈다.
◆ "한국 야구의 새로운 길, 고양 원더스에 안 되는 건 없다"
- 최근 취임한 고양 원더스 이야기를 해 보자. 어떤 계기로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됐나?
허민 구단주는 사업을 하면서 야구로 사회에 환원하는 일을 마음에 두고 있다. 실제로 야구단 운영으로 얻는 이익은 아무것도 없다. 젊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려는 것이다. 나 또한 선수들에게 모든 걸 바친다는 생각이다. 평소에 한국 야구의 새로운 길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구단주와 뜻이 잘 맞았다. 구단주와 나는 한국 구단이 미국 메이저리그로 가는 어마어마한 꿈이 있다. 이루어지든 않든 간에 둘이 같은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이다. 또 허민 구단주가 창단과 관련해 날 만났을 때 모든 권한을 내게 주겠다고 했다. 내가 원한 게 아니다. 구단주 스스로 한 걸음 물러나서 '감독 다음이 사장'이라고 말을 했다.
- 고양 원더스를 보면 과거 즐겨 봤던 인기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이 생각난다. 요즘 사회에서는 만화처럼 인생 역전을 이루는 긍정의 아이콘이 등장하기를 바라고 있다. 야구판을 흔들어 만화 같은 현실을 이뤄 보겠다는 각오가 있을 것 같은데?
내년이면 프로야구가 생긴 지 31년이 된다. 야구가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하더라도 이만큼 번영할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현재 야구계는 과도기에 와 있다. 관중은 많지만 반드시 내리막길이 오는 법이다. 구단 프런트를 비롯해 야구인들이 안주하는 경향이 있다. 변화가 필요할 때 고양 원더스가 앞장서 잘 시작했다고 본다. 앞으로 우리나라 야구계에는 자극제가 있어야 한다. 고양 원더스가 생기면서 자극도 되고 프로의 밑바닥을 탄탄하게 할 수 있는 선수층도 만들 수 있게 됐다. 야구계로서도 좋은 시도고, 사회적으로도 '절망은 없다. 하면 된다'는 생각을 퍼뜨릴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무엇이든 안 된다는 건 없다는 걸 보여 줄 기회라고 생각해 나로서도 충분히 도전할 가치가 있었다.
- 이번 도전이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인 것 같다. 한 번 실패를 겪은 선수들에게 또다시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이른바 '패자부활전'의 기회를 주는 것 아닌가. 앞으로 일이 잘 돼서 대한민국 야구판을 거세게 흔들 수 있도록 저 또한 절대적 지지를 보낸다.
고맙다.(웃음) 예전 SK를 맡았을 때 정근우나 최정 같은 선수들을 처음 테스트 했을 때 기량이 한심했다. 며칠 전에 전주 내려가서 코칭스태프를 비롯해 선수들과 미팅했을 때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실패한 사람이다'고 말했다. 실패란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는 말이다. 나 역시 잘렸고, 코치나 선수들도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안 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서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 그러면 반드시 길이 열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독립야구단으로서 1등이나 우승이라는 목표는 없지만 항상 승리를 추구하면서 선수를 잘 키워 내겠다.
▲ '죽고 사는 것은 자기 마음 속에 있다. 인생은 패했다고 생각할 때 끝이다. 포기 없는 인생을 걸어라'는 메시지를 남긴 김성근 감독.
김성근 감독은 고희(古稀)의 나이에도 여전히 에너지가 넘쳤다. 그 힘은 김 감독 인생의 전부와도 다름없는 '야구'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였다. 건강을 우려하는 나의 물음에 김 감독은 "야구장 가면 다 괜찮다. 일을 하면 마음가짐에서부터 힘이 난다"며 시원스레 웃었다. 나이를 잊은 일에 대한 열정, 1등의 자리에도 안주하지 않고 항상 승리를 위한 채찍질을 아끼지 않는 마음가짐은 그에게 '야신'이라는 별명이 달린 이유를 여실히 증명했다. 이제는 '채찍'이 아닌 '긍정 에너지'로 새로운 도전을 앞둔 김 감독의 도전에 나 또한 마음 속으로 아낌없는 응원을 보냈다.
<정리=유성현 기자, 사진=노시훈 기자>
출처 : 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073&article_id=0002102577&date=20120103&m_url=%2Flist.nhn%3Fgno%3Dnews073%2C0002102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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