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1-06 08:01:34 


▲ 2007 한국시리즈 (사진제공=SK) 



[이데일리 SPN 정철우기자] 2002년 한국시리즈서 삼성 이승엽을 철저하게 막아낸 예에서 알 수 있듯, 단기전서 타자를 막는 방법에 대해선 나름의 노하우가 쌓여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승엽에게도 마지막 순간,결정적 홈런을 맞았고 당시 4번 마해영을 봉쇄하는데는 실패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단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승부는 조금 미뤄둘 수 있었다.

발은 달랐다. 전혀 차원이 다른 공격방법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두산의 발은 상식을 뛰어넘는 질주라는 점에서 계산 속에 집어넣기 너무도 힘든 존재였다.

김 감독은 또 한번 두려움을 정면 돌파하기로 했다. 두산의 발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총동원해 구상했고 결과적으로 성공을 거뒀다.

필자는 김정준 SK 전력분석팀 과장의 도움을 받아 두산의 발야구를 막기 위해 동원됐던 SK의 준비사항을 다시 짚어봤다. 그 과정을 살펴보면 김 감독이 얼마나 철저하게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 노력했는지 조금은 느껴볼 수 있다.

우선 SK 전력분석팀은 일찌 감치 ‘두산 육상단’을 이끄는 세명의 발,이종욱 고영민 민병헌에 대한 분석에 착수했다. 보통 전력분석팀이 원정 기록에 나서면 상대 투수에 포커스를 맞춰 촬영을 한다.

그러나 SK는 방법을 달리했다. 백네트 뒤에서 투수 뿐 아니라 주자의 움직임도 촬영하기 시작했다. 이때가 8월 중순 무렵부터다. 뛸 때와 그렇지 않을때의 동작 차이를 알아내기 위함이었다.

시즌이 끝난 뒤에는 두산의 1년치 기록지를 모두 분석했다. SK전 뿐 아니라 두산이 치른 모든 경기에서 주자의 도루 사항을 면밀히 분석했다. 이를 통해 볼 카운트 별,투수 별, 점수 상황별로 세분해 두산의 발이 언제 어떻게 움직였는지 파악했다.

김 감독의 두려움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또 그만큼 빠르고 냉정하게 판세를 분석하고 준비했음을 알 수 있다. 김 감독은 물론이고 전력분석팀은 밤을 세워 숫자와 그 속에 흐르는 경향을 분석했다. 마치 SK 텔레콤의 ‘24: hours T’를 떠올리게 하는 밤의 연속이었다.

SK가 이를 통해 알아낸 것이 몇가지 있었다. 우선 주자별로 견제구 숫자에 따라 뛰는 경향을 발견했다. 두 번 온 뒤에 뛰는 선수가 있는가하면 심지어 세 번까지는 기다리는 선수도 발견해낼 수 있었다.

두 번째는 피치드 아웃 효과다. 두산 타자들이 피치드 아웃을 하면 다음 공에는 맘 놓고 뛰는 경우들이 많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파격적인 두개 연속 피치드 아웃이 나왔던 배경이다.
마지막으로 주자들의 버릇을 알게 됐다.

특히 민병현의 경우 1루에서 뛸 때와 그렇지 않을때 팔의 위치가 달랐다. 뛸때는 팔이 내려왔지만 반대의 경우 가슴 쪽으로 모아놓아 놓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2차전서 7회 가득염이 민병헌을 견제구로 솎아낸 장면은 견제구 수에 따른 변화와 그의 버릇이 더해져 거둔 성과였다.

상대를 알았으니 이제 내부 단속에 나설 차례였다. 우선 SK 투수들의 버릇 찾아내기에 나섰다. 홈으로 던질 때와 견제할 때 차이가 나는 것은 없는지 숨은 그림 찾기에 들어갔다. 이 중 김성근 감독이 찾아낸 대표적인 예가 채병룡의 습관이었다. 턱의 위치에 따라 견제와 투구의 경우가 달라진다는 걸 발견하고는 즉시 수정 작업에 들어갔다.

또 혹 있을지도 모를 사인 누출을 막기 위해 포수 박경완이 최대한 무릎을 좁힌 상태에서 투수와 의견을 교환하도록 지시했다. 김정준 과장은 “비디오로 보면 나와도 실전에서,특히 젊은 선수들이 그걸 다 알아내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두산 1,3루엔 김민호 김광수 등 주루 센스가 빼어난 코치들이 포진해 있다. 그래서 더 어려웠다”고 말했다.

SK의 1,2차전 패배는 오히려 약이 됐다. 특히 1차전이 그랬다. SK는 1차전은 내줄 수도 있는 경기라 여겼다. 특급 에이스 리오스가 등판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결과론이지만 1차전서 SK는 과감하게 준비했던 보따리를 풀 수 있었고 결국 이후 시리즈를 유리하게 끌고가는 기폭제가 됐다.

SK는 1차전서 이종욱을 잡기 위해 한 타석에서 두개 연속 피치드 아웃을 하는 모험을 했다. 평소보다도 견제구를 하나 이상 더 던졌다. 결과적으로는 이 경기서 주자,특히 이종욱을 잡는 것은 실패했다. 이종욱은 2개의 도루를 성공시켰다.

SK 입장에선 볼카운트가 불리해지며 견제 후 호흡이 흐트러지는 등 악영향만 남았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1차전 패배 후 김성근 감독은 자신있게 말했다. “이제 두산 선수들이 맘 놓고 뛰지 못할 것이다.”

김 과장은 이에 대해 “우리는 시즌 중 단 한번도 피치드 아웃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1차전서만 4개가 나왔다. 한국시리즈서 이전과 다른 과감한 움직임을 보이자 두산 선수들의 머릿속이 복잡해졌을 것이다. 결과를 떠나 우리가 노렸던 것이 이 점이다. 생각을 많이 하게 하면 그만큼 느려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 SK는 2차전서는 3인방에게 단 하나의 도루도 허용하지 않았다. 대신 고영민과 민병헌을 한번씩 잡아내는 성공을 거뒀다.

그리고 3차전이 열리기 전, 김성근 감독은 이렇게 선언했다. “이제 발을 잡기 위한 작전은 쓰지 않는다. 2사 이후 주자에만 신경 쓰면 된다. 타자와 상대에만 집중하라.”

김 과장은 “두산 빠른 주자들에게 심리적인 부담을 줬다는 확신이 있었다. 또 김동주를 묶는데 성공했기 때문에 발에 대한 우리 투수들의 부담이 적어질 수 있었다. ‘줘봐야 한점’이라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3차전부터 우리 투수들이 더욱 힘을 낼 수 있었던 중요한 원인”이라고 풀이했다.

물론 준비는 SK만 한 것은 아니다. 두산도 이에 못지 않은 대비가 있었다. 가장 큰 성공을 거둔 것은 기습 번트에 대한 대비였다. SK는 고영민의 수비 위치가 뒤에 위치한 점,1루수 안경현의 수비 폭이 넓지 않은 점을 감안해 전 선수들에게 우측 방향의 번트를 반복 훈련했다. 틈을 노리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두산은 일찌감치 이에 대한 대비가 돼 있었다.

김재현은 2차전이 열리기 전 선수들에게 “내가 타석에 들어서니 (김)동주가 번트 대비하라고 수비수들에게 사인을 보내더라. (안)경현이형도 준비자세를 하고 있었다. 역시 만만치 않다”며 답답함을 털어놓기까지 했다. 2차전까지의 기 싸움에서 두산이 우위를 차지했던 한 이유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기습번트 무산은 SK쪽으로 유리하게 작용 됐다. 이후 SK는 적극적인 공격성향 야구를 펼쳤고 이것이 타선의 집중력을 끌어올리는 중요 포인트가 됐다.

*덧붙이기 : 김정준 과장은 SK가 한국시리즈서 세웠던 전략을 털어놓는 이유에 대해 “한국시리즈의 전력은 이제 과거일 뿐이다. 어차피 6개월 후 새로운 판에서 다시 경쟁을 해야 한다. 독자들이 야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출처 :
http://spn.edaily.co.kr/sports/newsRead.asp?sub_cd=EB21&newsid=01079126583323096&DirCode=0020201

Posted by 개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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