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 말하자면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아니지만 그 후신인 청보 핀토스의 초대 어린이 회원으로서 이후 태평양 돌핀스와 현대 유니콘스를 응원하던 평범한 인천 사람이었다. 경기장에 가기 보다는 대부분 집에서 TV 중계로 보곤 했지만 예전 도원구장 시절 가끔 야구장에 가서 직접 관람을 한 적도 있었다.
그렇게 인천 연고지의 팀을 응원하다가 현대 유니콘스가 인천 연고를 포기하고 서울에 입성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부터, 대부분의 인천 올드팬이 그러했듯 나도 야구에 정내미가 떨어져 한동안 야구를 멀리했던게 사실이었다.
그렇게 몇년이 흘렀을까. 전북을 연고로 하던 쌍방울 레이더스가 모기업의 자금난으로 팀이 해체되고 SK 와이번스로 재창단 하면서 인천으로 연고를 옮겨 다시 인천 연고의 팀이 생기게 되었지만 한번 떨어진 정이 쉽게 다시 붙을리 만무했다.
그러던 와중 김성근 감독이 사령탑으로 부임하자마자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고 그 여세를 몰아 2연패를 하는 등 눈부신 활약과 더불어 인천 출신의 선수들이 속속 모여들어 명실상부한 지역 구단으로 자리매김하자 야구를 멀리했던 팬들이 하나둘 돌아오게 되었다.
각설하고, 요즘 퇴근하고 집에서 SK의 야구를 보는 재미에 빠진 내가 이번 휴가기간에 계획으로 잡은 것 중 하나가 야구장에 가서 직접 관람을 하는 것이었다. 하필 장마기간이 겹쳐 휴가도 제대로 즐기지 못했던 어제, 두산 팬인 와이프를 꼬셔서 야구장엘 다녀왔다.
가는 날이 장날이었던지 문학 홈경기를 보고자 했으나 일정이 여의치 않아 잠실에서 열린 엘지와의 원정경기를 보고 왔는데 선발이 김광현과 봉중근의 대결이었고 우리팀이 최근 7연패 중이어서 더욱 관심이 가는 경기였다.
선발투수의 지명도가 워낙 높은지라 투수전이 될줄 알았던 예상과는 달리 초반부터 타선이 폭발해 큰 점수가 나는 경기로 끝이 났지만 어쨌든 팀이 연패를 끊고 이기는 경기를 관람하게 되어 기쁨은 배가 되었다.
먹고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근 10여년 만에 야구장을 찾은 '무늬만' 야구팬이지만 너무 오랫만에 경기장에 간 탓인지 야구장이 여러가지로 너무도 많이 변해있어서 새삼 놀랬다.
내 기억에 야구장이라 하면 아저씨들이 몰래 소주를 가져와서 홀짝홀짝 마시다가 5회쯤 넘어가고 응원하는 팀이 지기라도 하면 된소리와 거센소리를 조합한 육두문자와 함께 이것저것 집어던지며 야유를 하는 술주정의 각축장으로 애들은 절대 데리고 가지 못할 곳이었건만 그런 아저씨들은 다 어디로 가셨는지 보이지 않았고,
경기장 출입구부터 소지품과 가방을 검사해서 주류 반입을 통제하고자 하지만 그것을 비웃듯 생수병에 담아 가거나 교묘한 방법으로 가져가서 먹던 과거와는 달리 관람석에서 대놓고 생맥주와 캔맥주를 팔고 한두잔 정도 가볍게 먹고 즐기는 곳으로 변해 내 기억속의 야구장과는 너무도 딴판이 되어있었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 것이 있었다면 주사를 부리며 추태를 보이던 아저씨들은 자취를 감췄지만 베이징 올림픽부터 야구를 보기 시작했는지 아님 제2회 WBC부터 야구를 보기 시작했는지 간단한 규칙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팀이 아닌 자신이 응원하는 선수만 응원하는 젊은 여성팬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보아하니 20대 초반의 대학생인 것 같은데 3루 플라이를 자신이 응원하는 유격수에게 양보(?)를 안하고 3루수가 잡았다고 성질을 부리지 않나 2루에 선행주자가 있음에도 1루에 나간 자신이 응원하는 선수보고 도루를 해야지 어쩌구 하며 큰소리로 개진상을 떨던 그런 여자들은 제발 야구장에 안왔으면 좋겠다.
올림픽과 WBC 선전의 여파로 젊은 여성팬들이 늘어나고 가족단위의 관람문화가 자리잡은 것은 고무적인 사실이지만 다른 종목과 달리 규칙이 까다롭고 복잡한 야구라는 게임을 제대로 이해하고자 한다면 선수에 쏟는 애정에 1/10 이라도 야구 규칙을 공부하려는 노력이 선행되었으면 좋겠다.
이땅에 야구가 처음으로 소개된 '구도(球都)' 인천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이기는 것보다 지는 것이 어쩌면 당연했던 과거의 인천 야구가 이제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강팀으로 괄목상대 한 것은 우여곡절 많았던 인천의 짠물야구를, 그리고 인천을 사랑하는 사람의 하나로 너무도 눈물겨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2009.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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