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 소프트뱅크 코치 고문이 지난 19일 고양시 히어로즈 2군 훈련장에서 열린 소프트뱅크-고양 히어로즈의 KBO 퓨처스리그 교류전을 지켜보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어김 없이 오전 6시30분이면 아파트 현관문을 나선다. 스마트폰 만보기 앱부터 열고 나서는 딸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낸다. ‘아침 잘 먹고 야구장 간다’고. 국내서 수십년 감독 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거의 안하던 일이다. 그러나 멀리 타국서 홀로 생활하는 아버지를 걱정하는 가족에게 안부부터 전하는 일은 이제 아침의 일상이 됐다.
신칸센을 타기 위해 역까지 걷는 시간은 18분. 기차를 타고 17분쯤 달린 뒤 다시 10분을 더 걸으면 후쿠오카 외곽의 소프트뱅크 호크스 2군 구장에 도착한다. 하루의 시작이다.
야구 감독 이력만 소개하는데 A4용지 몇장은 족히 필요한 김성근 전 감독(77)은 2년째 일본프로야구 소프트뱅크에서 코치 고문을 맡고 있다. 김 고문은 소프트뱅크 3군과 함께 한 14일 동안의 KBO리그 나들이를 마치고 지난 주말 일본으로 돌아갔다. 소프트뱅크 3군은 KT와 한화, SK, 키움 2군 등과 원정 교류전을 벌였다. 성적은 7승1무3패.
■KBO리그 2군과 만남
평생을 야구로 살아온 김 고문에게도 야구는 여전히 어렵다. KBO리그 2군 팀들과 재회에서 받은 인상은 역시 ‘투수가 모자라다’는 것이다. 자원 부족을 꼬집는 것이 책임 회피로 들릴 수 있고, 그게 또 논란의 도마에 오르기도 하지만 KBO리그에 투수 자원이 메말라있다는 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 돼있다.
김 고문 또한 확신을 갖고 그에 대한 나름의 해법을 내놓지는 못했다. 전체보다는 개인, 훈련보다는 관리가 앞서 있는 리그 전체의 트렌드를 감안하면 문제를 단순화시키기 더욱 어려워진다.
지난 주중 고양에서 만난 김 고문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투수가 없구나’ 하는 걸 느낀다. 대부분 팀이 육성을 앞에 두고 있지만, 기본 멤버와 비교해볼 때 갭이 아직 큰 듯 싶다”고 말했다. 각 구단은 저마다 다른 생김새에도 같은 옷을 입고 거대만 흐름만 쫓고 있는 듯도 보인다. 이에 김 고문은 “세대교체 한다는 얘기는 많이 하는데, 대개 흘러가는 식으로 하는 것 같다. 어찌 보면 남이 하니까 우리도 하는 식인데. 각팀마다의 특색이나 소신이랄까, 그런 게 덜 보이는 게 아쉽다”고 했다.
김 고문은 “(일본과 비교해) 분명한 점 하나는, 야구 인구(전문 선수)가 부족하다는 것”이라는 화두를 다시 던졌다. ‘혹사’라는 비난 속에 살아온 김 고문은 이 대목을 아주 신중히 접근했다. “최근에는 강화보다는 보호가 앞에 가 있다. 누군가 다쳤을 때 비난을 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커져있는데, 우리는 얇은 선수층 속에 만들어내야한다는 근본적 문제와 함께 있어 어려움은 더 커진다”고 했다.
김성근 소프트뱅크 코치고문이 19일 고양시 히어로즈 2군 훈련장에서 열린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고양 히어로즈의 KBO 퓨처스리그 교류전을 살펴보며 메모를 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김 고문은 감독 시절 ‘강화’로 팀을 만들었다. 이는 김 고문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닌 논란의 진원지다. 김 고문 스스로 “지난 기간에는 ‘훈련량’으로 그것(자원 부족)을 극복하려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제는 단순히 훈련량으로 팀을 끌고 가기 어려운 게 한국야구의 현실이다. 이는 또 김 고문이 직접 체험하고 있는 일본야구의 세태 변화이기도 하다.
김 고문은 이에 일본프로야구 젊은 선수들, 코치들과 소통하면서는 다른 방법으로 접근하고 있다. 사실, 지금은 소프트뱅크의 방향성 속에 김 고문이 녹아들어 있기도 하다.
■“일본야구는 세대변화중”
팀별 차이는 있지만, 일본야구 또한 훈련량을 줄이는 추세다. 소프트뱅크 역시 휴식일인 월요일은 충분히 잘 쉴 것을 권장한다. 그러나 그 틈에 두드러지는 측면이 있다면 선수들의 ‘의식’이다. 거대한 팀 방향 속에서 본인이 무엇을 해야하고, 어떻게 움직여야하는지 영리하게 이해하고 실행하는 선수들이 많다.
김 고문은 “일본의 요즘 젊은 선수들은 일정 수준 훈련을 하면 더 이상 하지 않는다. 자율 훈련까지 포함하면, 우리 선수들이 확실히 더 많이 한다”고 했다. 그럼에도 일본프로야구 A급 투수들이 꾸준히 나오는 데 반해 국내에서 그렇지 못하는 건 훈련으로만 설명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 KBO리그에서는 하드웨어와 구속이 뛰어난 신인 투수들이 확연히 늘었지만 그들이 리그 주축투수로 커가는 속도는 너무 더디다.
김 고문은 “공이 빠르다 뿐이지, 야구에 대한 이해도가 쫓아가지 못한다. 야구는 참 미묘한 부분이 많다”며 그 연장선상에서 류현진(LA 다저스)을 일례로 꼽았다. 하드웨어적 기능을 소프트웨어를 통해 가장 잘 실현하는 선수라는 것이다. 김 고문은 “류현진은 그런 부분이 가장 뛰어난 선수다. 공을 갖고 놀 줄 안다”고 했다.
국내에선 류현진은 물론, 김광현(SK)과 양현종(KIA) 같은 특급 자원이 띄엄뛰엄 나온다. 일본프로야구에 비하면 유망 자원이 뚜렷히 적다. 이에 고민은 다시 커진다. 김 고문은 “‘소재’가 부족한 우리나라 상황에서, 일본과 같이 간다고 할 때 (같은 방법으로 해서) 일본을 이기기 어렵지 않나 싶은 생각도 한다”고 했다. 뭔가 다른 제3의 길에 대한 필요성도 떠올리게 했다.
■“육성도 진정성이 필요하다”
어쩌면 더 중요한 건 답을 찾는 과정이다. 김 고문은 일본프로야구에 2번째 몸담고 있다. 2004년부터 2년간은 지바 롯데 순회코치로 일했다. 김 고문은 당시 바비 밸런타인 감독으로부터 ‘팬’을 배웠다. 김 고문은 “그때 승부를 넘어 팬이 머리에 들어왔다면 지금은 스케일과 시스템이 인상적이다. 구단별 차이는 있지만 소프트뱅크는 이번에는 3군을 2주간 한국으로 보냈는데, 비용도 그렇고 가볍게 볼 일은 아니다. 구단에서 육성의 진정성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하루 하루의 훈련법에서 한일야구 차이가 있는 건 아니라고 했다. 다만 3군의 경우 처음 2년 동안은 웨이트트레이닝과 러닝 등 기초 체력 중점 훈련을 하고 이후 기술 훈련을 늘려가는 소프트뱅크처럼 대부분 구단의 성장 프로그램이 비교적 명확해지고 있다고 했다. 집이라면 인테리어 공사 전, 건물의 기본 골격부터 튼튼히 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덩치는 커지는 데 반해 체력은 떨어지는 국내프로야구 젊은 선수들의 흐름과 비교해 따져볼 부분이다.
김성근 소프트뱅크 코치 고문이 19일 교류전을 보며 메모하는 장면. 김 고문은 경기 뒤 8명이 함께 한 코칭스태프 회의에서 메모한 내용을 브리핑했다. 박민규 선임기자
김 고문이 떠나며 다시 떠올린 대목 하나. 이번 교류전에서 2군 구장 가는 곳마다 상대팀 감독, 코치, 선수들이 줄지어 와 인사를 했다. “일본 선수들이 그 장면을 보고 많이 놀랐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지금 세대 변화 속의 일본에선 흔히 나오지 않는 장면인 듯 했다.
김 고문은 여전히 배움 속에 있다. 70대 후반에도 일하고 있지만, ‘노익장’을 얘깃거리로 유별나게 대화할 게 없다. 대화의 마지막 인사도 “많이 움직이라”는 것이었다. 본인이 그렇게 살아왔듯….
고양 | 안승호 기자
출처 : https://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144&aid=0000617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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