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스포츠 유병민]





선수들이 일흔 넷의 노(老)감독에게 말을 먼저 붙이는 건 쉽지 않다. 김성근 감독과 함께 한 1년.


궁금한 것이 많지만 물어볼 수 없는 한화 선수들을 위해 일간스포츠가 질문을 받았다.


기회가 온 선수들은 다양한 질문을 쏟아냈다. 김 감독은 질문을 들을 때마다 "궁금한 것이 많았나보군"이라며 웃었다. 그리고 진지하게 답변에 임했다.



- 감독님은 투수 출신이신데, 펑고와 수비 등 모든 포지션을 완벽하게 소화하십니다. 비결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조인성·포수)


"그렇게 보였다니 고맙다. 나도 모든 걸 다 아는 건 아니다. 자기 직업에 관심도를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 문제가 아닐까. 강의를 할 때 이야기를 하는데, 관리에는 직접관리와 간접관리가 있다. 직접적 관리는 내가 다 하면 된다. 간접적 관리는 맡겨 놓고 하는 것이다.


야구는 타격·수비 등 분야별 코치가 있다. 내가 이 친구들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못하는 부분이 있으면 지적을 해야지. 모르면 감독이 끌려다닌다. 그래서 간접적 관리가 직접적 관리보다 훨씬 힘들다.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하고. 다시 돌아가자면, 모든 분야를 할 수 있는 근본적 이유는 한 명이라도 하나 하나 다 가르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훈련을 준비한다."





- 40대에 접어들면서 체력 유지의 중요성을 느끼고 있습니다. 감독님의 체력을 볼 때마다 감탄을 하는데요. 관리 비법이 무엇인가요. (박정진·투수)


"40대라서 빌빌대는 건가(웃음). 30~40대 시절에는 하루에 펑고 3000~4000개를 쳤다. 몸이라는 건 육체적인 부분도 중요하지만, 육체를 지배하는 건 정신이다. 정신은 곧 사명감과 책임감을 뜻한다. 사명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면 버틸 수 있다. 감독 위치에 사명감은 팀을 우승시켜야 하고, 선수들을 만들어야 한다. 박정진은 작년에 마흔 하나 나이의 값어치를 했다. 올해도 기대가 된다."



- 감독님 하루에 평균 몇 시간 주무십니까. SK시절보다 더 안주무시는 것 같습니다. (정근우·내야수)


"하루에 다섯 시간 정도 자는 것 같은데. 이틀 연속 네 시간 정도 잤고. 잠들기 전 생각 속에 들어가면 막 섞인다. 하나가 들어와서 섞이면 끙끙 앓는다. 해결되는게 하나도 없다. 하나 있는데, 둘 오고. 둘 있는데 셋 오고. 그러다 잠에 늦게 든다."





- 감독님 번호 38의 뜻이 궁금합니다. (이태양·투수)


"인생은 '모 아니면 도' 아닌가. 꽝이거나 38광땡 이라는 뜻이다(웃음). 쉽게 설명하면 '삼삼하고, 팔팔하다'는 뜻으로 결정했다. 38번은 충암고 감독시절에 시작했다. 감독하면서 번호를 많이 바꿨다. 90번도 해보고, 76번도 달았다."



- 감독님 인생에서 1순위는 무엇인가요. 제 인생의 1순위는 야구입니다. (이용규·외야수)


"인생에서 1순위는 사명감이 아닐까 싶다. 야구 그 자체는 나에게 물 같은 것이다. 물은 무엇인가. 없으면 죽는다. 물은 모든 생명의 원점이다. 생명은 물 없으면 살수 없다. 내 인체는 야구가 없으면 죽는다는 뜻이다."



- 감독님께서 인정하시는 선수 또는 지도자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김재영·투수)


"많은데…많은 것보다 나는 욕심이 많아서 가능성이 있는 선수를 인정한다. (그라운드를 바라보며) 김태균이 지금 방망이를 치고 있는데, 잘하고 있다. 이 모습이 언제까지 갈 지 모르겠지만, 유지한다면 올해 정말 잘 할 것 같다. 김태균이 내야 플라이가 없었다. 타구가 뜨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맞는 소리가 달라졌다. 라인드라이브 타구가 많이 나오고 있다. 앞다리도 바꾸고 있다. 계속 변하려고 한다. 인생에서 좋을 때가 있고 나쁠 때가 있지 않나. 중요한 건 얼마나 앞으로 보고 가느냐가 문제이다. 어느 정도 했다고 '됐다'하면 안된다. 


프로 감독들이 다 제자들이지만, '배워야겠다'는 점이 많다. 염경엽 감독과 양상문 감독이 그랬고, 김경문 감독도 많이 바뀌었다. 같이하면서 '이런 건 배우고 싶다' 할 때가 많다."





- 은퇴하시면 무엇을 하고 싶으신가. 야구라는 답변은 사양하겠다. (에스밀 로저스·투수)


"야구 은퇴는 없다고 봐야 한다. 야구를 하지 않고 있을 때는 죽어있지 않을까 싶다(웃음). 야구 그만두면 갈 때가 있을까. 지금까지 현장을 떠나도 리틀을 나가고, 중·고교 학생들을 가르쳤다. 지금 심정 같으면 강의를 하는 전도사를 하고 싶다. 고양원더스 시절 (강의를) 해보니까 보람이 있었다. 


야구는 인생보다 깊고, 승부가 빠르다. 일반 사람보다 빠르게 결정하고, 순간순간 매일 싸운다. 야구인은 그 속에서 사는 방법을 안다. 사회가 필요하다면, 일반 사람이 생각하지 않는 우리의 방법을 알려주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 인생을 살아오시면서 야구를 제외한 가장 잘 한 선택과 후회가 남는 선택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정현석·외야수)


"한국에 영구귀국을 한 것이 가장 잘 한 선택이 아닐까 싶다. 1964년 11월에 결정했는데 전환기가 됐다. 야구를 할 수 있었다는 자체가 굉장히 매력있었다. 그리고 당시 중심선수로 뛰었으니까. 1959년 재일교포 학생 선수로 한국에 왔는데 운동선수에 대한 의식이 매우 나빴다. 뭔가 바꾸고 싶었다. 


후회하는 선택은 별로 없었던 같다. 나는 즉흥적인 선택을 많이 한다. 주춤하지 않는다. 감으로 움직이는 건 아니다. 즉흥적인 이유는 그 속에 헤매고 있다가 더 잃는 것이 많다. 그럴 바에는 바로 해버린다. 후회가 되는 건 아이들에게 관심이 너무 적었다는 점이다. 물론 지금 야구로 밥을 먹고 살지만.(웃음)"


- 감독님 평소 취미생활이 무엇인가요. (강경학·내야수)


"취미는 없다. 점점 없어지고 있다. 없어지는 건 그만큼 여유가 없다는 뜻이다. 한 분야에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여유가 없어진다고 생각한다. 캠프에 오면 갈수록 많이 보인다. '이 정도는 됐다' 이걸 내가 못한다. (마지막으로 영화를 보신 건 언제인가. 출연하신 '파울볼'은 제외해달라) 하도 오래 돼서 모르겠는데(웃음). 영화는 TV에서 많이 하잖아."





- 감독님 인생 최고의 순간은 언제셨습니까. (김태균·내야수)


"글쎄 언제일까. 항상 최고라는 건 가르치는 선수가 잘 될 때 최고 아닐까. 명예 이런 건 별 것 아니다. (그라운드에 연습하고 있는 차일목을 보며) 차일목이 제대로 잘라서 주자를 서너 명 아웃시키면 소름 끼친다. 홈런 치면 더 좋지. 그럴 때가 최고의 순간이다. 사람은 잠재 의식 속에 능력을 지니고 있다. 가능성을 찾아주고, 결과를 냈을 때 혼자 만족감을 얻는다. 우승은 한 순간이다. 연습은 못하는 걸 할 수 있게 만들고, 할 수 있게 됐다면 퍼센테이지를 높여야 한다.


거기서 한 차례 더 성장시켜야 한다. 세 과정이 연속되어야 한다. '됐다'하는 순간에 이미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리더에게 제일 위험한 것이 무엇일 것 같은가. 리더는 조직이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야 한다. 그러나 더 어려운 건 성과에 만족하면 안된다. 다음이 무엇일까 고민해야 한다. 항상 쫓아다니고, 조이고 또 조여야 한다."


고치(일본)=유병민 기자



출처 : http://sports.media.daum.net/sports/baseball/newsview?newsId=20160205060221473

Posted by 개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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