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 감독. 사진=한화 이글스
[이데일리 스타in 정철우 기자] 에피소드 하나. 1990년대 프로야구 LG 트윈스엔 신윤호(39)라는 투수가 있었다. 당시만 해도 극히 드문 150km를 던질 수 있는 광속구 투수, 그러나 다듬어지지 않는 제구력 탓에 스스로 무너졌다. 신윤호는 술을 마시고 사고를 치며 분풀이를 했다. 그렇게 2000년대에 접어들었을 때, 한 지도자를 만났다. 이전 감독들과는 전혀 다른 말을 했다. “제구가 안되는 네 직구는 장점이다. 타자입장에서 어디로 공이 올지 모르는 것처럼 겁나는 건 없다. 겁 먹은 타자에게 힘 빼고 변화구로 스트라이크를 넣어봐라. 그럼 네 직구는 오히려 무기가 될 것이다.” 즉시 효과가 나타났다. 같은 투구를 다른 생각으로 했더니 결과는 천양지차였다. 타자들은 언제 머리로 공이 올지 모른다는 공포 탓에 그의 공에 함부로 달려들지 못했다. 신윤호는 2001 시즌, 다승, 구원, 승률 등 3관왕이 됐다.
같은 재료로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든 이는 지금은 ‘야신’으로 불리는 김성근 감독(현 한화)이었다. 김 감독을 만나기 전 신윤호는 현재의 청춘들을 많이 닮았다. 그 누구보다 빼어난 재주를 갖고 있지만 기회가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절망의 크기로는 우열을 재기 힘들다.
현재의 청춘들은 ‘4포 세대’라 불린다. 연애와 결혼, 출산을 먼저 포기한 상황. 그 절망은 취업을 포기해야 한다는 두려움에서 시작됐다.
그래서 김 감독에게 물었다. “우리 청춘들은 어떻게 해야 꿈을 펼칠 수 있을까요.”
그는 가장 먼저 특유의 묵직한 돌직구를 던졌다.
“지금 현실에 실망하지도 말고 만족하지도 말라. ‘앞으로’라는 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지금 현실에 불만과 불평, 부족함을 갖고 있더라도 결국 해결은 자신이 해야 한다. 남 탓을 먼저 하고 세상의 동정이나 위로를 받고 싶어하는 건 약한 사람이다. 불평한다고 나아질 것이 없는데 왜 헛된 시간을 허비하려 하는가. 요즘 젊은이들은 목표는 확실한 걸 갖고 있다. 그러나 프로세스를 싫어한다. 하다가 막히면 뒤돌아보거나 후회하고 주저한다. 고비가 오더라도 묵묵히 될 때까지 가야 한다. ”
그러면서 그는 “조직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열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나’라는 의식이 아닌 ‘우리’라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 한계라는 건 사람 속엔 없다. 자기 스스로 한계를 넓혀가는 것이 인생이다. 그러기 위해선 오버워크가 필요하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자신을 몰아붙여야 한다. 지금 세계에선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본다.”
문득 반론이 떠올랐다. 지금 청춘이 절망하는 건 조직이 더 이상 개인을 보호해주지 않는다는 두려움이 있어서 아닌가. “취직만 하면 정년이 보장되던 아버지 세대와는 다르다는 것이 지금 젊은이들의 목을 죄고 있다”고 되물었다.
하지만 그는 또 한 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것도 ‘나’를 앞세우니 그런 조건을 보는 것이다. 자기를 버리고 조직 속에서 플러스 되는 일만 생각하며 가다보면, 결국 자기에게도 플러스가 된다. 안된다고 의식 하는 것 자체가 위험한 것이다. 아부나 하고 충성하라는 것이 아니다. 바보스럽고 우직하게 가라는 뜻이다. 내가 손해가 되더라도 조직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그 길을 가라. 결국 그런 선택이 긴 인생에 플러스가 된다. 살기 위해 일하는가, 일 하기 위해 사는가. 난 야구 하기 위해 지금도 운동하고 식사도 조절한다. 살기 위해 먹고 일하는 순간, 인간의 발전은 멈추고 현실은 초라하게 빛이 바랜다.”
그의 쓴소리는 이 시대의 어른에게도 거침이 없었다. 이런 세상을 물려준 이유에 대해 강한 공을 던졌다.
“근본적으로 어른이라면 다음 세대에 뭘 심어주느냐를 고민해야 한다. 리드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들이 청춘이던 시절, 기존 질서와 세상에 얼마나 불만이 많았나. 하지만 자신이 어른이 된 뒤엔 옛 사람 방식을 그대로 따라갔다.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고 소리 높였지만 결국 기존 질서에 쉽게 편입하고 말았다. 리더가 상식 속에 안주하는 순간, 조직은 생기를 잃고 정체될 수 밖에 없다. ‘나 처럼 하라’고 하지 말고 이런 세상 물려준 것을 미안해 하라. 젊은 친구들도 욕할 생각만 하지 말고 결국 똑같이 가고 싶어하는 건 아닌지 고민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SK 감독 시절 신장암으로 투병했던 사실을 털어놓아 세상을 놀라게 한 바 있다. 김 감독은 “얼마 전, 당시 수술 집도의를 만나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랬더니 오히려 ”김 감독 같은 환자를 만난 내가 행운“이라고 하더라. 삶에 대한 의지가 강한 환자는 그만큼 생존 확률도 높다는 것이 증명됐다고 한다. 난 수술 다음 날 부터 병원 복도를 걸었다. 머릿 속엔 야구장에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며 “힘들고 어려운 현실이라는 건 잘 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의지까지 꺾여선 안된다”고 말했다.
3년 만에 다시 돌아 온 프로 무대. 그는 프로야구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싶다고 했다. 그가 세상과 젊은이들에게 바라는 그대로 야구로 보여주겠다는 각오다.
김 감독은 “그동안 경쟁이라는 의식이 약해지지 않았나 싶다. 단순히 이기고 지는 문제가 아니라 개개인이 자기를 변화시키려는 의식이 모자라지 않나 싶다. 경쟁을 통해 변화하면서 향상돼야 하는데 경쟁심이 떨어지면서 발전의 계기도 정체됐다고 생각한다. 사람과의 승부가 그렇다. 주전은 계속 주전, 2군은 계속 2군인 야구는 길게 가지 못한다. 당연한 것 부터 먼저 하라. 투수는 스트라이크를 던지고, 타자는 좋은 공을 쳐야 한다. 이 당연한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기 위해 인간은 죽을 힘을 다해야 하는 거다.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을 못한 채로 프로라고 말하는 건 넌센스다. 내가 맡은 일의 ‘당연한 일’이 무엇인지 부터 고민하고, 생각이 정해지면 우직하게 밀고 가라. 그것이 인생이라는 긴 승부를 이기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 김성근 감독은...
1942년생 12월 13일 생으로 현재 만으로 73세이지만 아직 현역이다. 2011년 11월부터 한화 이글스 감독으로 한국 야구계를 든든하게 지키고 있는 거목이다. 일본 가츠라고등학교· 동아대학교(중퇴)를 졸업했다. 프로 통산 성적은 2807경기 1234승 57무 1036패이다. 역대 최다승 2위지만 현역으로 활동하는 감독 중에는 1위다. 주요 경력은 OB베어스 수석 코치(1982년 ~ 1983년)OB베어스 감독(1984년 ~ 1988년) 태평양돌핀스 감독(1989년 ~ 1990년) 삼성라이온즈 감독(1991년 ~ 1992년) 쌍방울레이더스 감독(1996년 ~ 1999년) LG트윈스 감독(2001년 ~ 2002년) 일본 프로야구 지바 롯데 마린스 코치(2005년 ~ 2006년) SK와이번스 감독(2007년 ~ 2011년) 고양원더스 감독(2011년~ 2014년)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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