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스타in 정철우 기자]불가능해 보이던 일이 현실이 됐다. 간절히 바라면 이뤄진다는 잘 믿기지 않는 진실이 또 한 번 증명됐다.
한화 이글스는 25일 10대 감독으로 김성근 전 고양 원더스 감독을 선임한다고 발표했다. 지난 2011시즌 중 SK서 경질된 뒤 3년만의 프로 복귀다.
결코 쉽게 이뤄진 일이 아니다. 당초 한화는 김 감독 영입을 전혀 고려치 않고 있었다. 2012시즌 중 몇 차례 영입을 위한 접촉이 있었지만 일방적으로 협상이 종료된 뒤 앙금만 남았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현장의 의견을 중시하는 한화 그룹 분위기도 김 감독 영입에 힘이 실리지 않는 이유였다.
김성근 감독이 30여명의 인사권을 원하는 등 과도한 요구 조건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 영입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루머까지 나돌았다. 김 감독은 “어느 구단으로부터도 영입 제의를 받지 못했다. 루머만 있을 뿐이다. 그런 소문들이 날 더 힘들게 한다”고 털어놓았을 정도다.
야구인으로서 소신과 원칙을 중시하는 김 감독은 프런트 입장에선 부담스러운 존재다. 특히 최근 들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프런트 야구’ 흐름 속에서 그는 더욱 외로울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김성근 감독과 한화에는 진심이 통하는 팬들이 있었다. 최근 3년 연속 꼴찌 수모와 7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로 상처 받은 팬들이 직접 행동에 나섰다.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엔 김성근 감독 영입을 바라는 목소리로 가득찼다. 김성근 감독 영입을 원하는 팬들은 직접 릴레이 영상을 올리며 간절한 마음을 전했다.
참는데 익숙해 보살이라 불렸던 한화팬들이다. 이기는 것 보다 지는 것이 잦은 팀을 목청껏 응원만 해왔던 그들이 움직였다. 그러자 작은 파도는 이내 거센 물결이 되어 온.오프 라인을 뒤흔들었다.
그들의 마음은 김승연 한화 그룹 회장에게도 전해졌다. 김태균을 잡아달라는 팬들의 목소리에 운동장에서 직접 “그래 잡아 올게”라고 약속하고, 그 약속을 지켰던 김 회장이다. 그런 김 회장이 있었기에 이번 계약도 가능했다. 김 회장은 한화 구단에 김 감독 영입을 지시했고, 지시가 내려온지 사흘만에 전격 계약이 이뤄졌다.
전혀 움직임이 없던 한화 구단은 23일, 김 감독과 처음 연락을 취했고 25일 사장과 단장이 직접 김 감독을 만나 계약까지 이끌었다.
한국 프로야구는 아직 하나의 산업으로 성장하지 못했다. 모기업의 전폭적 지원 없이는 유지가 어렵다. 팬들의 목소리가 번번히 좌절된 이유다. 팬심 보다는 구단이나 고위층 인사의 결정이 더 큰 영향을 미쳤다.
구단들은 늘 팬을 가장 우선시 한다고 했지만 팬들이 원하는 바와 구단의 판단이 어긋나면 냉정히 돌아섰다. 자신들의 이익을 실제로 좌우하는 존재는 따로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성근 감독은 ‘팬들이 임명한 첫 감독’이란 타이틀을 갖게 됐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팬들이 영입을 원한 감독이 선임된 경우는 이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김 감독처럼 구단 고위층이 배제했던 인물이 팬들의 바람을 타고 감독이 된 사례는 없었다.
팬심은 늘 “속 사정을 모르는 철 없는 투정” 정도로 여겨졌던 것이 한국 프로야구의 현실이다. 하지만 한화 팬들과 김승연 회장이 오래된 관행을 과감히 깨 버렸다. 그런 관점에서 2014년 10월25일은 한국 프로야구사에 매우 의미있는 획을 그은 하루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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