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창용의 경기 전 스트레칭.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스트레칭을 통한 회전력 강화이다. (사진제공: 아이안스)

 

 

마이너리그를 돌아다닐 때 그렇게 덥더니 이젠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붑니다. 2013 시즌, 그러니까 제 프로 19번째 시즌이 끝나가고 있습니다. 제 20번째 시즌은 전혀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메이저리그에서 더 험한 경쟁이 펼쳐지겠지요. 제 프로생활이 성공적이라거나 특별하다고는 감히 말할 수 없지만 꽤 오래 했다는 것, 꽤 다양한 경험을 했다는 건 맞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위기가 있었죠. 사실 전 19년 전에 '잘린' 선수입니다. 진흥고 3학년 때, 그러니까 해태 지명을 받고난 뒤인 1994년 12월이었습니다. 해태 유니폼을 입은 지 2주 정도 지났을 때였죠. 선배들은 쉬는 기간이었고 신인들은 광주구장에 나와 훈련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강제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저는 가끔 훈련을 빼먹기도 했습니다. 참 놀고 싶을 나이였으니까요. 어느 날 김성근 2군 감독님이 절 불렀습니다.


"야, 집에 가." 큰일 났구나 싶었습니다. 그 전에 야단이라도 한 번 맞았으면 땡땡이를 치지 않았을 텐데 김성근 감독님은 조용히 절 지켜보기만 하시더니 단번에 자르시겠다는 겁니다. 제가 잘못했으니 할 말이 없었죠. "네"라고 대답하고 일단 돌아갔습니다. 야구를 안 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놀고 싶은 마음도 싹 사라졌죠. 야구 하다가 가끔 놀아야 재밌지, 놀기만 해선 안 될 일이죠. 아무래도 안 되겠어서 그날 저녁 김성근 감독님을 찾아가 용서를 빌었습니다. 완고하실 줄만 알았던 김성근 감독님은 "1년만 참고 나랑 야구하자"라고 하시더군요. "네"라고 또 대답했습니다.


김성근 감독님의 훈련량은 정말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요즘도 훈련을 많이 시키신다고 하는데 당시엔 오죽했을까요. 김성근 감독님은 별로 특출하지도 않고 비쩍 마르기까지한 저를 완전히 새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새벽부터 죽어라 뛰고, 아침 먹고 또 체력훈련하고, 점심 먹고, 공 던지고, 저녁 먹고 섀도 피칭하고⋯. 힘들어서 말 할 기운도 없었습니다. 밤에는 지루할까봐 배드민턴 라켓으로 섀도피칭을 시키셨는데요. 피칭 메커니즘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요즘엔 배드민턴 라켓을 이용하는 게 이색훈련으로 소개되지만 김성근 감독님은 19년 전에 19세 투수에게 그걸 시키셨죠.

 

 

순두부찌개를 먹는 임창용. 체중을 올리기위해 억지로 끼니때마다 3인분씩 먹기도 했다. (사진제공: 아이안스)


 

밥도 엄청 먹게 하셨습니다. 그때 제 체중이 70kg도 되지 않았거든요. 점심 때 삼겹살 3인분과 곱창전골, 밥 두 공기를 먹게 했습니다. 지금 식사량의 두세 배 정도였죠. 그렇게 먹은 덕분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훈련하고도 한 달 만에 6kg가 쪘습니다. 몸이 달라지는 걸 느꼈고, 공도 빨라지더군요. 죽어라 하니까 살 길이 보였습니다. 2군에서 보낸 6개월이 10년처럼 길게 느껴졌습니다.

 

돌아보면 그때가 제 프로 19년 생활 중 가장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몸을 만들었고, 공을 만들었고, 자신감을 키웠으니까요. 당시에 만든 체중 80kg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습니다. 95년을 그럭저럭 보냈다면 어쩌면 전 진작 야구를 그만뒀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야구를 할 수 있는 건 그때 '밑천'을 잘 만든 덕분입니다. 후배들에게도 기회가 있으면 말합니다. 젊을 때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라고요. 철없던 어린 시절 김성근 감독님을 만난 건 제게 큰 행운이었습니다.

 

김성근 감독님의 지옥훈련을 이겨낸 뒤에야 제 것이 생겼습니다. 시키는 대로 다 해보고 그 다음에 제 스타일을 알게 된 것이죠. 웨이트트레이닝을 할 때 무거운 것 들지 않고, 가벼운 것을 여러 번 드는 것도 데뷔 후 3년이 지나서였습니다. 제게는 근력보다 회전력이 중요하다는 것도 그때 알았습니다. 제 공의 스피드는 회전력에서 나오거든요. 무릎 회전부터 시작해서 허리 회전, 팔꿈치 회전으로 이어지는 힘을 모아서 던집니다. 그래서 제겐 유연성이 가장 중요합니다. 다른 훈련은 몰라도 스트레칭만큼은 누구보다 열심히 하는 이유입니다.

 

제가 일본에 진출했을 때 김성근 감독님이 "이젠 술 먹지 말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놀기는 했어도 원래 술은 잘 못하는데 말이죠. 이번에 제가 메이저리그에 올라갔다고 하니 김성근 감독님이 제 에이전트에게 "창용이, 그 나이에 대단하다"고 말씀하셨다 하네요. 과분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어린 시절의 저를 강하게 키워주신 덕분입니다.

 

 

출처 :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mlb&ctg=news&mod=read&office_id=064&article_id=0000003859

Posted by 개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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