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 Sungkeun
Master of Baseball
야구를 위해 살다
솔직히 겁이 났다. ‘야구’의 ‘야’자도 모르는 내가 ‘야신’을 만나야 한다니. 막다른 골목을 마주하기라도 한 듯 막막했다. 그렇게 ‘야신’을 만났다. 어떻게 됐을까.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다. 그날의 공기를 기록한 녹음기에서는 무식한 자의 감탄이 자주 들려왔다.
<탐색전>
“할아버지 야구 잘 하세요?” 눈발이 날리는 야구경기장 관중석. 글러브를 손에 든 꼬마의 물음에 머리가 희끗한 남자가 “쬐끔”이라고 대답한다. CF의 문맥상 대답을 하는 남자는 야구감독이다. 선수 혹은 코치라 하기엔 나이가 너무 많아 보이기 때문이다. CF의 주인공은 김성근 감독이었다. 그걸 이제야 알았다. 나와 김성근 감독의 거리는 정확히 이만큼이었다.
그와의 인터뷰가 확정된 후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김성근을 입력했다. 1942년 생, 일본에서 태어났다. 1984년 OB 베어스 감독으로 데뷔했고, 현재는 한국 최초의 독립야구단 고양 원더스를 이끌고 있다. 기사 제목마다 그의 이름 앞에는 ‘야신’이라는 단어가 붙어있었다. ‘야신’은 <남자의 자격>의 양준혁이 아니었던가?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김성근 감독님 인터뷰하기로 했어.” “대박”, “오!”, “야신을 만나다니” 지인들의 반응은 결국 하나였다. 친한 기자 K는 ‘야구계의 임권택’이라는 대유를 들어줬고, 학교 선배 P는 ‘야신’이란 수식어가 탄생된 2002년 삼성과 LG의 한국시리즈 6차전 경기를 중계해줬다. 친구 H는 ‘SK 와이번스에게 세 번의 우승과 한 번의 준우승을 안겨준 감독’, ‘선수를 잘 아는 감독’이라고 그를 설명했고, 친구 K는 ‘냉정하고 혹독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김성근이다>
2011년 12월에 출간된 <김성근이다>는 ‘감독으로 말할 수 없었던 못다 한 인생 이야기’라는 부제 그대로 감독 생활을 하면서 느끼고 생각했던 것들을 고스란히 담아낸 책이다. 사적인 정이 선수들의 성장에 방해가 될까봐 선수들과 밥 한 끼, 차 한 잔을 함께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부터 선수들의 연습을 지켜보기 위해 허리 디스크 수술을 받은 다음날부터 병원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는 일화, ‘빨리 가고 싶으면 혼자 가고, 멀리 가고 싶으면 함께 가라’는 아프리카 속담에 관한 이야기, 자신이 사용하는 도구에 애착을 가지라는 뜻으로 공을 발로 차거나 배트, 글러브를 던질 때마다 벌금을 걷었다는 일화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짐작할 수 있게 했다. 더불어 그와 함께 나누고 싶은 대화 주제의 윤곽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를 만나다>
대기 40분 째. 고양 원더스 홍보 실장의 말이 떠올랐다. 감독님이 너무 바쁘셔서 얼굴을 뵈려면 기본 1시간은 기다린다고 말했었다. 김성근 감독은 회의 중이었다. 홍보 실장과 조율된 인터뷰 시간은 30분 남짓. 커버 사진 촬영을 진행하려면 20분 안에 인터뷰를 끝내야 한다. 불필요한 질문은 없는지 질문지를 다시금 살펴봤다. 자꾸만 갈증이 났다.
그로부터 10분 뒤, 코치가 감독실로 우리를 안내했다. 문이 열리자 서리가 내린 짧은 머리와 곧은 등이 눈에 들어왔다. 보도 사진 속 모습보다 마른 모습이었다.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가 짧게 답인사를 했다. 그의 얼굴은 굳어있었다. 포토 에디터가 정해준 자리에 그와 내가 앉았다. 정면으로 마주한 얼굴 역시도 굳어있었다. 그렇게 인터뷰가 시작됐다.
<또 다른 시작, 고양 원더스>
-고양 원더스에 기대하는 시선들이 많은데 부담감은 없으세요?
부담감이 없다면 거짓말이고, 우리나라 사회에 소위 말해서 희망을 잃은 사람들이 많잖아요. 그 사람들한테 희망을 줄 수 있는 길잡이가 돼야 하니까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지 않으면 안 되지 않나 하는 부담감을 갖고 있어요.
- 고양 원더스의 향방이 독립구단의 미래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시작이니까 우리가 잘 됨으로써 제2, 제3의 독립구단이 생길 거고, 그로 인해 야구인들을 한 명이라도 구제할 수 있는 거고. 또 야구 시장 자체에 큰 변화가 오지 않나 싶어요. 그런 의미에서 이 일을 중요한 일이라고 보고 있어요.
- 사명감이 크시겠어요.
당연한 거예요. 일이라는 것은 사명감을 갖고 하는 거니까.
- 프로야구 감독 시절과 다른 점이 있을까요?
프로에서는 우승이 목표고 여기는 순위가 목표가 아니라 선수 개인의 육성이나 성장이라고 그럴까. 개인의 미래를 중요시하는 조직이에요.
- 우승이 목표가 아니기 때문에 프로야구 감독 시절보다 부담감이 덜 하지 않나요?
우승이라는 목표가 확실히 있는 게 오히려 편하지.
<지도자, 그리고 리더로 산다는 것>
- 감독님이 쓰신 책(<김성근이다>)을 읽었는데 야구, 그리고 선수를 위해 스스로에게 너무 혹독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지도자는 자기를 몰아가야 돼요. 자기가 편해지려고 하는 지도자는 목표, 목적을 달성할 수 없어요. 선수가 나한테 들어오는 한 책임져야 되는 일이고, 내가 특혜를 본다든지, 이득을 본다든지 하는 건 시작부터 틀렸지 않았나 싶어요.
- 그래도 많은 희생과 헌신을 필요로 하는 만큼 그에 따른 보상, 개인적으로 얻는 게 있어야하지 않을까요?
뭘 얻으려는 생각은 하나도 없고, 선수들이 잘 될 때 거기서 잠시나마 뭐랄까 만족감이라고 그러면 이상하고 보람을 느낀다고 그럴까.
- 그거면 충분하세요?
충분하다기보다 시작부터 그런 거니까. 야구장에 있다는 거 자체가, 자기가 좋아하는 야구 속에 살 수 있다는 거 자체가 제일 행복한 거 아니야.
- 물론 그렇지만 힘드시진 않으세요?
힘이 든다고 느낄 때는 이 자리를 떠나야지. 힘들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선수들을 성장시킬 수 있는 방법이 뭔지,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매일이 도전이니까 잡념이 생길 여지가 없어요.
- 20대 후반에 처음 감독직을 맡으셨잖아요. 그때도 지금과 같은 생각이셨어요?
처음부터. 지도자는 소위 이야기하면 봉사니까. 아버지, 엄마하고 똑같은 거예요. 뭘 얻으려고 하는 게 아니고 사명감, 의무, 그 속에서 하는 거죠.
- 지도자로서 사시는 게 적성에 맞으신가 봐요.
원래 맞았던 건지, 살다보니 그렇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성격 자체가 야구에 한해서는 굉장히 꼼꼼한 편이에요. 그리고 남의 일을 내 일 이상으로 취급하니까. 내가 오늘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해야 돼요.
- 그런 마음가짐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지도자의 본성이 아닐까 싶어요.
- 모든 지도자들이 그렇지는 않잖아요.
그건 순수함이라고 봐요. 리더는 순수함을 가지고 살아야 돼요. 진실로 부닥쳐야 되고.
- 포커페이스라고 하죠. 선수들이 흔들리지 않고 따라올 수 있게 리더로서 평정심 유지를 잘 하시는 거 같은데, 비결이 있으신가요?
실수는 감독의 잘못에서 시작된다고 보면 돼요. 선수가 미숙한 건 감독이 미숙해서에요. 그렇게 보면 간단해요. 화를 낼 필요가 없어요. 모든 책임은 감독 본인한테 있지, 선수한테는 없는 거예요. 실수한 선수는 다시 가르치면 돼요.
- 그렇게 생각하면 자책감이 많이 들 거 같아요.
자책감이 생기지. 당연하지. 언제나 나 스스로 모자란다고 느끼지. 그때마다 뒤돌아보든지, 공부를 하든지,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해요.
- 스포츠는 결과가 중요하잖아요. 감독님 생각에 스포츠에서 이긴다는 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요?
이긴다는 결과가 있음으로써 과정이 사는 거니까. 리더 입장에서는 결과를 반드시 가져야지. 그러려면 필사적으로 이겨야 돼요.
- 늘 이겨야 한다는 압박감은 없으셨어요?
당연히 있죠. 그런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압박감을 즐기고 있었을지도 모르지. 그 속에 산다는 거 자체가 사람을 강하게 만들고 있지 않나 싶기도 해요.
- 감독님은 타협을 안 하시는 걸로도 유명하세요. (웃음) 타협하는 게 어려우세요?
타협은 없어요. 결단을 내리면 그대로 가요. 흔들리지 않아요 절대로. 옆에 맞추고, 뭐 맞추고 하질 않아요. 내가 살겠다 할 때는 타협하겠지. 그런데 나 스스로 살겠다는 마음이 하나도 없으니까. 일을 해야 되는 게 중요한 거지, 살겠다고 하는 건 목적 자체가 틀린 거예요.
- 타협하지 않고 산다는 게 쉬운 일도 아니고 정말 힘든 일이잖아요.
좋은 지도자가 되는 걸 떠나서 타협 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 하고자 하는 일의 성패가 결정된다고 봐요. 타협 하지 않는다는 건 리더로서의 나의 의사표시니까 자연히 정신이 반영되어 따라와요. 물론 그 속에는 책임감이 반드시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모든 걸 거는 거예요. 어느 기업이든, 조직이든 간에 가고자 하는 길이 반드시 있을 거라고. 결단을 내리기까지 깊은 생각을 하고 일단 결단을 내리면 어떤 상황이 와도 바꾸면 안 돼요. 그래야 하나의 일을 해낼 수 있지. 더 나아가서 그렇게 하다보면 주위에서 인정하고 따라와요. ‘아, 이 사람은 한 번 내리면 안 된다. 이 조직은 이런 조직이다.’ 그 속에서 살 수 있는 거지 옆에서 흔든다고 흔들리고, 맞춰서 살다가는 본인이 없어져요.
- 어떤 감독이 좋은 감독일까요?
조직이 정한 목표를 달성하는 사람. 그게 제일 간단한 말이에요. 우승하고 싶다, 4강 들어가고 싶다, 목표가 다 있을 거 아니에요. 그 목표를 달성하는 게 리더의 역할이에요. 이 책 같은 경우도 몇 만부 팔고 싶다는 목표를 세웠으면 전략을 세워야지. 책 내용부터 구성, 판매 방법, PR, 여러 가지가 있을 거 아니에요. 그걸 리더가 다 계산해야지.
- 리더들만 모아놓고 강의하셔도 되겠어요. 리더들이 많은 걸 배울 거 같아요.
그래요? (웃음)
출처 : http://foundmag.co.kr/Interview/2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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