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 감독의 야구는 '독하다'. 독한 야구를 위해서 그가 참고 인내한 부분은 얼마나 많을까. '상처투성이들의 집합소'인 고양원더스 선수들을 세상 밖으로 끌어내려는 김 감독의 열정이 대단해 보인다.(사진=일요신문 박은숙 기자)


고양원더스가 훈련 중인 고양종합운동장 야구장에는 취재진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김성근 감독 인터뷰는 물론 선수들 훈련 모습, 선수 인터뷰 등을 담기 위해 매일같이 기자들이 찾아온다. 프로팀이 아닌 독립리그 팀한테 이토록 관심이 쏟아지는 이유는 단연 그 팀의 수장인 김성근 감독 때문이다. 김 감독의 일거수일투족이 연일 기사화되면서 고양원더스도 같이 취재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 얼마 전에는 김 감독이 집에서 야구장으로 출근하는 모습을 한 공중파 채널에서 생중계로 보도까지 했다.

일본 전지훈련을 마치고 돌아와 프로 2군팀과 연습경기를 치르고 있는 고양원더스 김성근 감독을 만났다. 오랜만의 만남이었지만 여전히 그의 가슴 한켠에는 ‘SK에 대한 회한’이 뿌리 깊게 자리해 있었다.

김성근 감독에게 훈련장으로 찾아뵈어도 괜찮겠느냐는 문자를 보냈다. 답장은 모든 훈련을 마친 저녁 6시 이후에 왔다. ‘연습 이제 끝. 춥다 추워. 고양에서 야구하니 미리 연락주세요’라는 내용이었다. 내일 찾아뵙겠다고 다시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다음날 오후 1시쯤 고양 야구장에 도착해서 감독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까 ‘역시’ 김 감독은 혼자 점심 식사를 하고 계셨다. 식사를 마칠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다 김 감독과 대면할 수 있었다.

-먼저, 프로 2군 팀들과 연습경기를 치르면서 승수를 올리고 있다. 선수들에게 큰 동기부여가 될 것만 같다.

“일본 전지훈련 동안 일본 독립리그, 실업팀과의 연습 경기에서 7승3패를 거둔 탓에 어느 정도 선수들 실력이 올라왔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획기적인 변화가 왔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LG 2군을 상대로 1승1패를 거두는 모습에 내가 잠시 착각했던 게 아닌가 싶다. 고양원더스의 현주소를 읽을 수 있었다는 게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단순히 2군팀과 상대해서 패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생각하셨을 것 같진 않다.

“내가 건방졌다. 건방진 생각을 했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잘 되겠지, 잘 될 거라는 생각을 했다. 야수는 훈련과 노력을 통해 어느 정도 만들어 갈 수 있다. 그러나 투수는 연습을 통해 바뀌기가 어렵다. 타고난 부분이 존재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 팀의 투수난은 심각하다. 2군 벽을 실감했고, 앞으로 해야 할 숙제들이 더 많아진 듯 한 느낌이 든다.” 


프로2군과 연습경기를 치르며 고양원더스의 현주소를 깨달았다는 김성근 감독. 자신이 너무 야구를 쉽게 생각한 것 같다는 설명이 이어진다.(사진=일요신문 박은숙 기자)


-그래도 3개월 만에 이 정도의 성장을 이룬 건 대단한 거 아닌가. 너무 욕심이 많으신 것 같다.

“난 ‘만족’이란 단어를 싫어한다. 외부에서 봤을 때는 고양팀의 성장세를 높게 평가할 수도 있겠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12월 14일, 선수들과 처음 대면한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지금까지 항상 어려운 길을 걸어왔듯이 고양원더스를 맡는 부분도 그 연장선상이라고 생각했다. 해왔던 대로 가르치면 되겠지 했는데, 막상 선수들을 보니까 걱정이 앞서더라. 어떻게 하나? 이 선수들을 데리고 뭘 할 수 있을까? 이렇게 해서 정말 팀을 만들 수 있는 걸까? 하는 의문부호들이 끊이질 않았다. 한 마디로 선수답지 않은 선수들이 너무 많았다. 내가 야구를 쉽게 본 것 같다. 만들면 될 것이라고 믿었던 부분들,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던 부분들이 ‘착각’이란 단어와 맞물리는 것 같다. 1군 감독이었을 때는 2군 선수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2군 선수들이 너무 크게 보인다. 김성근이 이끄는 고양원더스는 지하의 세계에 머물러 있다. ‘상처투성이들의 집합소’인 이들을 빛이 들어오는 세상으로 끌어올리는 게 내 역할인데, 시간이 많이 걸릴 것만 같다.”

-프로야구팀 감독 출신이 독립리그팀을 맡는다는 게 쉬운 선택은 아니었을 것이다.

“내가 어디서 어떤 모습을 하고 있어도 내가 하는 건 야구다. 만약 독립리그가 아닌 대학팀에서 감독직 제안이 들어왔다면 그걸 받아들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난 야구 속에서 살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위치와 모습이 뭐 그리 중요한가. 그리고 김성근의 이미지에는 프로의 화려함보다는 음지에서 슬프게 꽃을 피우는, 지금의 자리가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여쭤봐서 죄송하지만, 감독직에서 12번째 해임됐고, 지금 13번째 감독을 맡고 있다. 어느 지도자도 이런 인생역정은 없다.

“그렇지. 보통 서너 번 잘리면 갈 데가 없는데 김성근은 질기게 감독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까 신기할 것이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보자. 12번 잘리고 13번째 팀을 맡고 있다는 건 그만큼 김성근이란 사람을 인정해 준다는 얘기가 아닐까. 팀을 나올 때마다 야구보다 야구관계자들을 통해 상처를 입었다. 야구계의 움직임에는 불가사의한 게 너무 많다.” 


김성근 감독은 고양원더스 선수들한테 한계를 보았고, 그걸 넘어설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중이라고 한다.(사진=일요신문 박은숙 기자)


-김 감독이 프로를 떠나면서 프로야구를 지도하는 감독들의 평균 연령대가 많이 젊어졌다.

“그래서 더 좋다는 소린가(웃음). 이런 말이 어떻게 들릴 지 모르겠지만 막상 김응용과 김인식이 현장을 떠나니까 많이 서운하더라. 한동안 그 허전함 때문에 기운이 빠져 힘이 안 날 때도 있었다. 그러면서 서서히 긴장감 같은 게 생겼다. 내가 야구 지도자로서 제일 고참이라는 생각, 아니 프로 스포츠를 통틀어 감독으로는 제일 연장자니까 모든 면에서 모범을 보이고 싶었다. 어느 사회나 세대교체는 필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새로움만 추구하고 경험의 중요성을 간과하다보면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오기가 생겼다. 젊은 친구들한테 절대 지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 나이 먹었다고 버림받을 존재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김응용 전 삼성 라이온즈 사장이 현장에 계셨을 때 두 분이 라이벌 관계로 묘사되곤 했었다. 당시 그런 표현들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셨나.

“‘음지’를 대변했던 나로선 ‘양지’에 머물고 있는 김응용이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런 점에서 난 야구를 통해 그를 이기고 싶어 했고 김응용은 그런 날 압도하려 했다. 나한테 김응용이란 감독은 어떻게 해서든 간에 이기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끔 만들어준 고마운 존재이다. 동갑내기이지만 서로 스타일이 다르다보니 가깝게 지내진 못했다. 반면에 김인식은 후배라서 그런지 더 살갑게 말 붙이고 그러며 지낸 것 같다.”

-인터뷰 때마다 느끼는 부분이지만, 김 감독의 삶은 99%가 야구로만 채워져 있는 것 같다.

“지난 겨울, 일본에서 지인들을 만났을 때 나한테 ‘미친 사람’이라고 하더라. 즉 야구만 아는 순수한 마음을 갖고 미치게 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난 야구에 미친 사람이다. 그런데 야구만 알고 있다 보니 시기와 질투의 시선과 평가들이 많았다. 건방진 얘기로 들리겠지만 내가 낮은 곳에 있었다면 비바람을 맞지 않았을 것이다. 높은 곳에 있다 보니 이런저런 역풍에 시달렸던 게 아닌가 싶다.”

-SK 감독직에서 물러난 후 간간이 당시의 심정을 토로하신 인터뷰를 접할 수 있었다. 어느 팀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해임 스토리였다는 생각이 든다.

“SK 팬들이 김성근 야구를 좋아했던 이유 중에는 그 안에 ‘사람’과 ‘감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 야구는 참고 참고 또 참고 하는 야구다. 사람들이 잊어버렸던 그 부분을 내가 팀을 이끌며 찾아냈다는 생각에 날 좋아하는 팬들이 많았다. 그러다보니 팬들의 반발도 기대 이상으로 컸을 것 같고 후임 감독이 그 자리를 맡기가 힘들지 않았나 싶다.” 


SK와의 인연을 '회한'으로 안게 된 김성근 감독. 지금은 다 말할 수 없어도, 언젠가는 말하지 못했던 부분을 다 털어놓겠다고 얘기한다.(사진=일요신문 박은숙 기자)


-SK에서 물러나신 후 그 팀과 이만수 감독에 대해 인터뷰 형식을 빌려 감정을 쏟아낸 적이 있었다. ‘전화 한 통 하지 않았다’는 얘기도 큰 화제를 모았다. 김 감독의 이런 행동을 보면서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오죽했으면 그러셨을까’와 ‘그래도 선배이신데, 후배에 대해 말을 아끼셨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하는 부분이었다.

“11번 해임되면서 내가 지키고자 했던 부분은 자존심이었다. 그 자존심 때문에 숱한 오해와 억측을 받으면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SK에선 재계약 여부를 놓고 내가 목숨처럼 지켜온 자존심을 건들었다. 그걸 견딜 수 없었다. ‘그런 말’까지 듣고 내가 계속 해야 하나 싶었다. 그래서 갑자기 떠나기로 결심한 것이다. 사실 전날 밤까지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침에, 구단측으로부터 얘기를 듣고 시즌 마치고 그만두겠다고 발표했다. 물론 다음날 경질되고 말았지만. 그 사람들이 김성근을 우습게 봤다는 생각에 참고 있을 수가 없었다. 성적을 낸 감독에 대한 예우가 이것밖에 안 되나? 싶었다. 내가 SK와 2007년 처음 계약을 맺을 당시, 구단으로부터 유일하게 들어온 조건이 ‘이만수’였다. 이만수를 코치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좋았다. 후배이고 제자이니까 같이 갈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처음부터 SK에선 후임 감독을 정해 놓고 날 받아들인 것이다. 난 SK 구단에 역이용 당했다. 그런 점들이 기업에, 구단에 회의를 느끼게 할 만큼 배신과 상처로 다가왔다. 한국 프로야구의 문제점 중 한 가지가 프런트가 현장 위에 군림하려는 부분이다. 프런트는 현장이 무조건 복종하길 바란다. 심판한테도 고개 숙이길 원하고 KBO한테도 무릎 꿇기를 채근한다. 그런데 그게 김성근한테는 통하지 않았다. 구단의 역할은 선수단한테 해줄 거 해주고, 성적이 안 나면 감독을 내보내면 되는 것이다.”

-일부러 SK 선수들을 만나시지 않았다고 들었다. 왜 그런 건가?

“나는 감독과 선수로 만날 때는 엄하게 대하지만 그 팀을 떠나면 선수들과 친구같이 술도 한 잔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SK 선수들과는 그런 자리를 만들지 않았다. 워낙 민감한 상황이라 행여 날 만났다는 게 구단 관계자들 귀에 들어가면 선수들에게 피해가 갈까 싶어 애써 회피했다. 내가 데리고 있던 코치들도 다 내보냈다. 물론 스스로 그만 둔 코치들도 있다. 헤어질 때 차 한 잔 안 마시고 뿔뿔이 흩어졌다고 하더라. 정말 슬펐다. 지금은 일부러 다 얘기하지 않을 것이다. 입 다물고 있다가 언젠가는 다 말할 날이 올 것이다. 거짓말이 난무했던 상황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

-화제를 바꿔 보겠다. 최근에 프로야구에도 경기 조작, 승부 조작 사건이 터졌다. 가슴 아픈 일이라 하실 말씀이 많을 것 같다.

“우리나라의 부정부패가 스포츠에까지 미친다는 게 충격적이다. 건전성을 상실한 스포츠는 죽은 거나 마찬가지다. 김성근 야구가 더럽다고 손가락질해도 난 룰을 벗어난 적이 없다. 나도 아마추어 선수 시절에는 일본에서 고스톱을 쳤다. 그러나 프로 입문 후에는 딱 끊었다. 돈은 정당한 방법으로 벌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방법으로 돈을 버는 건 범죄다. 돈 몇 백 만 원, 몇 천 만 원 때문에 야구는 물론 인생 자체가 끝났다는 게 화가 난다. 그 선수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나.”

-SK에서 전력분석을 담당했던 아들 김정준 씨가 올시즌부터 해설위원으로 활약한다(김정준 해설위원은 최근 ‘김성근 그리고 SK와이번스’라는 책을 출간했다). 아들이 야구선수로 활약하면서, 그리고 코칭스태프로 활동하면서, 아버지가 김성근이란 사실 때문에 힘든 일이 많았을 것 같다. 감독 이전에 아버지로서 아들에게 미안한 부분이 있는가.

“먼저, 말을 똑바로 하는 아이라서 해설하는 데 있어 새로운 장르를 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반면에 나처럼 적이 많아질 수도 있다(웃음). (한참 생각하다가)아들한테는 항상 미안했다. 아버지가 김성근이라서 그 아이가 받았을 고통과 인내는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한 번은 서울에서 홍수가 나는 바람에 성수동 집에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가족 모두가 집 앞에 있는 모텔로 피신을 했다. 그때 모텔 방에서 정준이가 나한테 이런 얘기를 하더라. 그동안 세 번이나 자살하려고 했었다고. 2009년 ‘그 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정준이는 SK를 떠나려고 했다. 그걸 달래는데 3개월이나 걸렸다. 보스는, 새끼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안아줘야 한다. 어렵다고 내치면 그건 진정한 보스가 아니다. 그런데 진정한 보스이길 바라는 구단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오프 더 레코드’를 전제로 하신 말씀이 많아서 기사를 작성하는 어려움이 많을 것 같다(웃음). 개인적으로 인연을 맺고 있는 해외파 선수들이 올시즌 한국 무대에서 뛰게 됐다. 기대하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

“먼저 이승엽은 잘 할 것이라고 믿는다.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주위에서 기대하는 만큼의 성적을 올릴 것이다. 박찬호도 10승 정도는 쉽게 하리라 본다. 김병현도 몸만 아프지 않다면 큰 일을 낼 것이다. 아마도 지난해 라쿠텐에 있었던 게 도움이 될 것이다. 쉬지 않고 몸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이대호가 일본으로 건너갔는데, 일본 지인들 말에 의하면 시즌 중반 즈음 한 차례 고비가 올 것이라고 예상하더라. 하지만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고 있는 선수라 잘 극복하리라 믿는다.”

김성근 감독은 인터뷰 말미에 이런 일화를 털어 놓는다. 부산KT 전창진 감독이 고양원더스 훈련장까지 찾아와선 김 감독을 만나고 돌아갔다는 것이다.

“전 감독이 내 팬이라고 하더라고. 직접 뵙고 싶어서 왔다고 말하는데, 그 사람 인간미가 넘치는 거 하며 막걸리같은 타입이라 나하고 잘 맞을 것 같아. 축구대표팀 최강희 감독도 날 만나보고 싶어 한다는데, 감독이 감독을 좋아한다니까 기분은 좋더라고 허허.”


김성근 감독의 인생의 멘토는 '야구'이다. 외길인생을 걷고 있는 그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린다. 그러나 진정한 평가는 '지금'이 아닌 '미래'에 가능한 것 아닐까. 나이가 주는 여유 탓인지, 요즘은 인터뷰를 하면서 '호랑이'보다는 '옆집 아저씨'같은 친근감을 주기도 한다.(사진=일요신문 박은숙 기자)


출처 : 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380&article_id=0000000147&m_url=%2Fcomment%2Fall.nhn%3Fgno%3Dnews380%2C0000000147

Posted by 개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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