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0.22
기차역 신문 가판대에도 한국시리즈 우승의 여운이 진하게 묻어있는 20일 오전. SK 김성근 감독은 동대구역에서 KTX에 몸을 실었다. 전날만 해도 "완행타고 가면서 천천히 우승을 음미하면서 갈까"라며 가볍게 농담하던 김 감독이었다. 김 감독의 목소리는 오히려 차분해져있었다. 그런 틈에 한국시리즈 4경기가 이어진 지난 5일간 SK의 행보를 김 감독의 복기로 더듬어봤다.
-투수 기용이 또 달랐다. 특히 2차전 선발이 깜짝 카드였는데.
"2차전에는 전병두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느 쪽 자리가 적합할지 봤다. 오른쪽 투수를 먼저 낸 뒤 전병두를 쓰는 것도 계산했다. 그러다가 지난 1년 동안의 데이터를 전부 다시 뒤져보는 중에 이승호(37번)가 나왔다. 이승호 데이터를 보면서 '아, 이거다' 싶었다. 카드 하나 주웠다고 생각하고 이승호로 먼저 가보자고 했다. 이승호 기록을 보고 정말 깜짝 놀랐는데 나타난 숫자가 아니고 경기 내용으로 봤다. 너무 놀랐다."
☞☞☞ 이승호의 올해 페넌트레이스 삼성전 성적은 3경기에서 5이닝을 던져 3안타 1실점. 1승에 방어율 1.80이었는데 특히 더 놀라웠던 점은 아웃카운트 15개 가운데 10개를 삼진으로 잡은 부분이었다. 채태인을 3타수 3삼진으로 제압하는 등 대부분 삼성 중심타자를 압도하는 내용이었다.
-주변에서는 카도쿠라를 2차전 선발로 예상했는데.
"카도쿠라는 올해 대구에서만 던져 1승1패했다. 대구쪽에서 내야겠다 생각하고 있었다. 2차전에 낼까 말까 고민도 했다. 본인도 2차전이 괜찮다고 했는데 일단 3차전에 맞춰 준비하라고 했다. 어쨌든 이승호(37번)와 한경기씩 나눠서 내려서 했고 최악의 경우는 2차전으로 당길 것으로 생각했는데 결과적으로 순서가 그렇게 됐다."
☞☞☞ 김 감독이 말하는 '최악의 경우'는 에이스 김광현 카드를 꺼낸 1차전 패전을 의미한다. 김광현이 5회 강판한 1차전이 삼성에게 넘어갔다면 SK의 선발로테이션에도 변화 가능성이 다분했다.
-그러면 모든 카드가 맞아 들어간 셈인데.
"밖에서 보기에는 무지 쉬워보였을지 몰라도 속에서는 매일 고민했다. 글로버를 4차전 선발로 예정해놓고는 밤에 잠이 오질 않았다. 3차전 뒤에도 1승만을 남겼지만 잠을 이루지 못했다. 만약 4차전에서 지면 흐름을 빼앗겨서 잠실에서는 어떻게 될지 몰랐기 때문이다. 또 잠실로 이동해 김광현까지 지면 힘들어진다는 생각이 많았다. 시리즈가 길어질까봐 큰 걱정이었다. 길어지는 순간, 우리 투수들은 지친다. 두팀이 비슷한 상황이 된다. 그래서 경기 결과는 좋았지만 그 과정에서 엄청난 압박을 받았다. 오히려 1차전에 앞서서는 별 부담이 없었는데 가면 갈수록 힘들었다. 이번 시리즈에 앞서 글로버가 나를 따로 찾아왔다. '별로 좋지 않은데 엔트리에 넣어주셔서 정말 고맙다'는 얘기였다. 사실, 연습경기까지도 너무 나빴다. 그런데 정말 잘해줬다.
☞☞☞한국시리즈 취재기자들 사이에서는 "김성근 감독이 3연승 뒤에도 여유가 없어보인다. 아예 1승도 없었던 1차전에 앞서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덕아웃에 나와 이런저런 얘기를 했을 때가 가장 편해보였다"는 말이 오갔는데 김 감독의 심리 변화가 실제 그랬다.
-삼성이 정규시즌보다 약해 보였는데.
"사실, 우리에게는 행운이었다. 삼성이 1년 내내 그렇게 잘 했는데 이번 시리즈에는 참 나쁠 때 들어왔다. 그런 면에서 선동열 감독이 참 힘들었을 것이다.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복이었다. 어땠든 삼성은 좋은 팀이 됐다. 잘 만들었다고 본다."
-우승 순간에 김광현이 마운드에 있었는데.
"원래는 정대현을 마지막에 올리려고 했다. 그래서 4차전에서 송은범을 앞으로 당겨 낸 것도 정대현을 마무리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난데 없이 송은범이 근육통으로 빨리 내려오면서 일이 생겼다. 남은 2이닝을 어떻게 풀어가나 싶었다. 4차전에서 김광현은 원래 정대현 다음의 예비카드였다. 만약이라는 단서 속에 남겨둔 카드였다. 그런데 송은범이 아파서 예정과는 다른 순서가 됐다. 김광현으로서는 9회 마무리를 해본 적이 처음이고 완투승도 그렇게 많지 않았으니 좋은 경험을 한 것 같다. 올리면서 볼넷 볼넷이 계속 나올 것으로는 생각했다. 지금 올리면 조금 덤비지 않을까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덤비는 모습이 보였다. 아직 젊어서 그렇다.
☞☞☞김광현은 4-0이던 8회말 1사 1·2루에 나와 1.2이닝을 던지며 1안타만을 허용했지만 4사구를 3개 내줬다. 조금 상기된 모습. 그러나 4-2로 승리를 지켰다.김 감독은 송은범 등판이 차질을 빚으면서 김광현 대신 정대현을 예비 카드로 남겨둔 셈이었다.
-술자리에서라도 김재현 은퇴를 만류할 생각인지.
"그 얘기는 그냥 웃으면서 한 소리다. 김재현이라는 캐릭터는 분명한 위치에서 자기 얘기를 한다. 본인 인생 계획도 있을 것이다. 신중하게 얘기한 것으로 본다."
-대만 일본 경기에서 7명이나 빠지는데.
"빠지는 것을 감안해서 준비해야 한다. 김재현은 당연히 가야한다. 김재현 은퇴경기는 대만 그리고 일본팀과 경기다. 그러고 보면 김재현만 보더라도 사람의 생각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줄 알게 해준다. 김재현도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들어간 시리즈에서 또 어마어마하게 달라진 모습이었다. 난 김재현을 그렇게 봤다. 생각에 따라 변화는 엄청나다. 사람이 다 그렇다."
☞☞☞김광현·정대현·송은범·박경완·정근우·최정·김강민 등 무려 7명의 SK 선수가 광저우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차출된다. 김 감독으로서도 김재현의 필요성이 절실하다. 김재현도 김 감독 마음을 읽었다. 이미 출전 의지를 밝혔다.
-SK의 세번째 우승 의미는.
"SK 야구가 젊은이에게 좋은 메시지를 줬으면 한다. 이승호(37번)만 봐도 그렇다. 지난해만 해도 LG에서 SK로 왔지만 뛰지 못했다. 끝 같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수술을 시켰고, 다시 돌아왔다. 포기하지 않고 막다른 길까지 가다 보면 또 새로운 길이 보인다. 야구만 그런 게 아니다. SK 야구를 보는 젊은이에게 그런 의미를 던져줬으면 좋겠다."
-SK는 지난 4년 동안 내림세가 없었는데.
"이렇게 얘기하면 실례일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시즌 도중에도 내년 준비를 생각한다. 다음 시즌에 뛸 선수를 키운다. 내가 직접 가르친다. 타자나 투수나 재정비하면서 내년을 본다. 올해만 보자면 내년에 쓰기 위해 LG에서 데려온 이재영을 본격적으로 만들고 있다. 전준호도 그렇다. 24일부터 훈련이다. 본격적으로 만들어갈 것이다."
안승호기자
출처 : http://sports.media.daum.net/baseball/news/breaking/view.html?cateid=1028&newsid=20101022060325426&p=sportsk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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