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10.27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야구 보여주고 싶었다"
부상으로 빠진 선수 많아 4전 전패까지 각오…
우리는 '구두쇠' 같은 팀… 얄밉게 보여야 프로답지
'야신(野神·야구의 신)'이란 칭호와 함께 2007·2008년 한국 프로야구 정상에 섰던 김성근(67) SK 감독은 올해 한국시리즈에선 제자인 KIA의 조범현 감독에게 졌다. 패장(敗將) 김성근은 26일 "7차전 끝난 직후엔 몰랐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아쉬움이 커진다"고 했다.
우승을 놓치긴 했지만 '야신'은 이번 포스트시즌 내내 화제의 중심이었다. 플레이오프와 한국시리즈 모두 마지막날 승부까지 갈 것이라던 그의 예상은 적중했고, 경기 전 김 감독의 한마디는 대부분 맞아떨어졌다. '예언가 김성근'이란 말까지 나왔다. 두산과의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바람이 변수"라고 하자 바람을 탄 두산 최준석·고영민의 홈런으로 승부가 갈렸다. 한국시리즈 6차전을 앞두고 "이호준의 스윙 궤적이 일을 낼 것"이라고 하자 이호준은 말대로 결승 홈런을 때려냈다. 과연 김 감독이 '야구 신'의 경지에 도달한 것일까. 패장 인터뷰를 통해 궁금증을 물어봤다.
―플레이오프가 5차전, 한국시리즈가 7차전까지 갈 것이란 예상이 100% 적중했는데.
"올해 솔직히 김광현·박경완·전병두가 부상으로 빠져 큰 기대를 안 했어. 만약 우리가 이긴다면 끝까지 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봤지. 내가 생각한 최악의 상황은 3전 전패, 4전 전패였어. 그에 대비해 일본 마무리훈련을 10월 중순으로 잡아놨었어."
―플레이오프 1차전 직전에 바람을 변수로 지목한 것이 적중했어요.
"경기 전에 바람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많이 불더군. 감독은 당연히 승부에 영향을 주는 변수를 머릿속에 집어넣어야지. 그럴 땐 우타자의 몸쪽, 좌타자의 바깥쪽 승부를 많이 해야 하는데, 포수 정상호가 우타자 앞에서 바깥쪽 공을 투수에게 주문하다 홈런을 맞았어."
―한국시리즈 직전엔 '정규리그 때 2승을 어디서 놓쳤는지 곰곰이 생각했다'고 하셨는데, 무슨 뜻인가요.
"KIA에 1게임 차로 뒤지는 바람에 한국시리즈에 직행하지 못한 게 너무 아쉬웠지. 만약 우리가 정규리그 1위를 했으면 상황이 달라졌을걸?"
―한국시리즈 5차전 패배 이후 '이제 흐름이 넘어간 것 같다'고 했는데, 패배를 직감했나요?
"승부를 2, 3, 5, 7차전에 걸었는데 5차전에서 졌으니 끝났다고 생각한 거지. 경기장 안팎 분위기도 우리에게 불리하다고 느꼈어. 그래서 마음을 비우고 선수들에게 '지금까지 잘했다. 이제부턴 보너스 게임이니 즐기라'고 했어."
―6차전을 앞두곤 SK 이호준이 뭔가 일을 낼 것이라고 하자 진짜 결승 홈런을 쳤습니다.
"(이)호준이가 계속 부진했잖아. 이유를 몰랐는데 그날 연습 배팅 때 백스윙이 큰 게 눈에 확 들어오더라. 그러면 직구에 타이밍을 못 맞추거든. 타격코치에게 백스윙을 작게 하라고 했어. 내심 활약을 기대해 봤지."
―"SK가 이기려면 7차전까지 갈 것"이라고 한 예측은 결과적으로 빗나갔어요.
"2승2패가 되고 나서 만약 7차전까지 간다면 5차전보다 6차전에 이기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 투수 운용이나 흐름 면에서 우리에게 유리하다고 본 거야. 내 바람대로 됐는데, 7차전 때 이길 기회를 놓쳤어. 할 말은 많지만 패장은 말이 없는 법이지."
―한국시리즈 1차전을 앞두고 '야구는 선수가 하는 것이라고 믿고들 있지만, 감독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게 야구'라고 한 김 감독의 말은 무슨 뜻인가요.
"야구는 선수가 하는 것이라는 말은 '책임 전가'라고 생각해. 선수 기용이나 타순 조정으로 최적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은 감독의 몫이야. 한국시리즈 7차전 때 4회 2점을 먼저 뽑고 무사 1·3루에서 6번 나주환에게 스퀴즈번트를 안 시킨 것이 아직도 아쉬워. 선수를 탓하기보다는 작전에 실패하고 타순을 잘못 짠 감독 책임이 더 큰 거지."
―SK야구를 얄밉다는 사람이 많은데.
"우리는 한마디로 '구두쇠' 같은 팀이야. 단 한 경기도 미리 포기하고 버린 적이 없어. 점수 차에 관계없이 끝까지 물고 늘어져. 그걸 상대방이 볼 땐 '왜 우리가 졌는데, 이긴 팀이 자꾸 더 덤비느냐'고 얄미워 하는 거지. 그러나 그건 팬에 대한 매너도 아니고 프로다운 자세도 아니라고 봐. 승부의 세계에선 얄밉게 보여야 이기는 거야."
―SK가 비신사적인 행동을 많이 한다는 지적도 있는데.
"우리 선수들 정말 혹독하게 훈련하고 최선을 다하는데, 그런 시선 때문에 정당한 평가를 못 받는다고 생각하니 억울해. 한국시리즈 끝나고 인터뷰할 때 그런 생각 때문에 눈물이 나올 뻔했어."
―내년에도 '얄미운 구두쇠 야구'로 나설 생각인가요.
"SK는 올해 '사형 선고' 받고도 끝까지 버텼어. 선수들이 계속 부상으로 빠졌지만 마지막까지 갔잖아? 우리 팀에 감동받았다는 사람도 많아. 야구를 떠나서 어떤 상황에서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악착같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그게 바로 'SK 야구'야."
강호철 기자
출처 : http://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9/10/26/200910260199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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