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1.08

배수찬은 재일동포 5년 선배로 투수와 타자로 빼어난 재능을 발휘한 인물이다. 한국야구사에도 큰 족적을 남겼다. 김성근보다 2년 앞서 57년 제2회 재일동포학생 모국방문야구단 투수겸 외야수로 내한한 배수찬은 김성근과 함께 60년 교통부에 입단했다. 62년 기업은행에도 함께 들어갔다. 김성근이 일본을 떠나 한국에서 선수생활을 하기로 결심한 것도 배수찬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60년 어느날 교통부에 입단하기 위해 일본 오사카에서 화물선을 타고 이틀이 걸린 끝에 부산에 도착했다. 그리고는 통일호를 탔다. 서울역에 도착하니 밤 11시. 배수찬과 함께 서울역 앞에서 찐빵과 만두를 먹었다. 그 맛과 그 기억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현재의 아내 오효순씨를 얻은 것도 배수찬의 힘이 컸다. 한국말도 어눌한 재일동포인 그가 혼자서 장인을 만나 “딸을 달라”고 설득하기 어렵다고 생각해 배수찬과 함께 쳐들어가 장인과 2대1로 술을 마시면서 결혼 승낙을 얻어낸 것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절친하게 지내던 배수찬과의 관계가 서먹해지는 일이 생기고 말았다.

김성근은 70년 마산에서 아들 김정준을 얻었다. 그때 기업은행에서 “코치를 맡아줘야겠다. 서울로 오라”고 연락이 왔다. 마산생활을 청산하고 서울로 올라갔다. 72년 연세대에서 감독 제의가 들어와 고민했다. 이때 묘한 상황이 벌어졌다. 배수찬이 김성근에게 “내가 연세대 감독을 맡고싶다”는 말을 했다. 김성근도 믿고 따르는 선배의 말에 “좋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배수찬이 연세대로 가자마자 기업은행에서 김성근에게 곧바로 감독을 맡겼다. 배수찬은 김성근에 대해 오해를 했다. 거짓 정보로 자신을 속였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자신은 연세대로 가고 김성근이 자신이 앉아야할 기업은행 감독을 꿰찼다고 여긴 것이었다. 김성근은 처음에는 “아니다”고 말했지만 배수찬은 믿으려하지 않았다. 그래서 김성근은 지금도 그렇지만 그런 일에 대해 더 이상 해명하려들지 않았다.

김성근은 기업은행 감독 시절인 75년 서울에서 열린 제11회 아시아선수권대회에 코치로 발탁됐다. 선수로서. 그리고 코치로서 태극마크를 달았다. 우승을 차지해 체육훈장 기린장을 수상했다.

이재국기자 keystone@

출처 : http://news.sportsseoul.com/read/baseball/484894.htm?ArticleV=old

Posted by 개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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