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1.19

[이데일리 SPN 정철우 기자] 최고의 자리에 오른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 자리를 지켜내는 것은 더 힘들다.

만족은 그 만큼의 틈을 만들기 때문이다. '이제 해냈다'는 성취감은 어느새 '이 정도면 됐다'는 여유로 바뀌게 된다. 만족이 커지면 팀은 약해질 수 밖에 없다.

SK는 지난 2007년 창단 첫 우승을 차지했다. 이전까지는 도전자였지만 우승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도전이 아닌 수성의 입장이 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선택은 정 반대였다. 김성근 감독은 스프링캠프가 시작되며 선수들에게 또 다른 목표를 제시한다. "우린 아직 최고가 되지 못했다. 2008시즌 목표는 아시아시리즈 제패다."

SK는 2007 코나미컵(아시아시리즈) 결승서 주니치에 패했다. 한국 야구가 발전하며 이제 일본 야구와도 어깨를 나란히 할 수준이 된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아직 단일 팀으로 일본을 이긴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다들 "그 정도면 됐다"고 했다.

SK는 달랐다. 그들은 스스로 패자(敗者)를 자처했다. 아시아 챔피언이 되지 못했으니 아직 최고가 되지 못했다며 팀 분위기를 다잡았다. 김 감독의 의도가 적중했던 것이다.

김정준 코치는 "확실한 또 하나의 목표가 설정된 것이었다. 한국시리즈 우승은 SK에서 하나의 통과 단계였을 뿐이다. 감독님의 목표 설정이 의외로 크게 작용했다. 이후 선수들이 하나같이 아시아 제패를 입에 달고 살았다. 수성이 아니라 재도전으로 정신 무장이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목표만 정해놓은 것이 아니다. 김성근 감독은 보다 강력한 드라이브로 스프링캠프를 지배했다.

공포의 '티배팅 1000개' 메뉴가 등장한 것도 이때부터다. SK는 팀 훈련량이 가장 많은 팀이다. 기본 훈련 때 이미 1000개 이상의 배팅을 한다.

일본 프로야구 캠프서 1000개의 스윙을 하는 선수가 있으면 다음날 스포츠지 1면에 등장할 만큼 큰 뉴스가 된다.

SK의 '티배팅 1000개'가 놀라운 것은 팀 훈련이 끝난 뒤 특타 1000개가 더해졌기 때문이다. 훈련 도중 김 감독의 눈에 찍힌(좋은 쪽이건 나쁜 쪽이건) 선수는 팀 훈련이 끝난 뒤 1000개를 더 쳐야 했다.

비가 오는 날에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순 없었다. 비가 오면 할 수 없는 것이 야구다. 실내 훈련으로 대체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훈련량이 적어질 수 밖에 없다. 비 오는 캠프는 자못 여유까지 느껴지는 것이 상식이다.

김 감독은 이 틈도 놓치지 않았다. 비가 그치기라도 하면 운동장 곳곳을 돌며 적당한 장소(비교적 마른 땅)를 찾는다. 그리고 직접 펑고 배트를 들고 특별 수비 훈련을 시켰다. 두 박스(약 400개)는 기본. 수비 훈련하다 잠시 기절하는 기분을 느낄 정도로 숨 막히는 훈련량이었다.

김 코치는 "지금 돌이켜 보면 선수들이 (정신적으로)지칠 때, 비가 오거나 날씨가 나빠 뭔가 흐트러질 때 그런 훈련 메뉴들이 등장했다. 정신적으로 흔들릴 수 있을 때 강력한 무언가가 나왔던 것"이라고 말했다.

치열해진 내부 경쟁은 SK를 단단히 만드는 또 하나의 무기였다. 2007시즌서 실제 무한경쟁을 체험한 SK 선수들은 그 속에서 더욱 강해져야 했다. 


▲ 정근우가 스프링캠프서 수비훈련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SK 와이번스 


당시 SK 내야 센터 라인(2루수 유격수)엔 3명의 주전급 선수가 있었다. 2루와 유격수가 가능한 정근우와 2루수 정경배, 유격수 나주환이 주인공이다.

일반적인 계산이라면 2루수 정근우, 유격수 나주환을 배치하고 정경배와 또 한명의 유격수 요원을 백업으로 쓸 것이다.

하지만 SK선 이런 계산이 통하지 않는다. 셋 중 누구도 주전을 장담할 수 없었다. SK가 가진 것 이상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이유다.

SK 한 선수는 "주전급 선수가 빠지게 되면 속으론 '나 없이 이길 수 있겠나'라는 마음을 갖게 된다. 하지만 SK선 '내가 빠져도 어떻게든 이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누구도 예외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대표팀에 차출된 SK 선수들은 종종 "지금 우리 팀 선수들 훈련 많이 하고 있을텐데... 돌아가면 내 자리가 있을지 걱정"이라는 말을 하곤 한다. 농담처럼 들리지만 괜히 하는 말이 아니다.

2008시즌을 맞은 SK는 한국시리즈 2연패에 성공한다. 그리고 맞이한 2009년 캠프. 김성근 감독은 '비상 사태'를 선언한다.

'국민 우익수' 이진영은 FA 자격을 얻어 LG로 이적했다. 여기에 8개 팀 중 가장 많은 선수가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에 뽑히며 정상적인 캠프 훈련이 불가능해졌다.

캠프에서의 유기적인 움직임을 시즌으로 이어가는 SK에서 주축 선수들의 캠프 이탈은 곧 전력 누수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부상자 관리도 문제였다. 2년 연속 챔피언이 된 팀에는 '어쩔 수 없는' 부상자들이 속출하기 마련이다. 전력을 다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필연적 부상이 대부분이다.

김 감독은 우선 부상 당한 선수는 훈련에서 제외시켰다. 빠른 회복이 어려운 선수의 경우 조기 귀국 시키겠다고 선언했다.

실제로 정근우는 수비 훈련 중 손가락 부상을 당한 뒤 대표팀 합류 일정보다 빠른 시기에 귀국 명령을 받기도 했다.

두가지 의미가 있었다. 실제 아픈 선수에겐 휴식과 재활의 시간을 제공하는 것이 첫번째. 두번째는 이를 통해 선수들의 정신력을 가다듬으로 했던 것이다.

김정준 코치는 "훈련이 안되면 돌아간다는 것은 선수들에게 후퇴를 의미했다.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상황에서 자신이 빠져야 한다는 건 선수들에게 더 없는 긴장감으로 작용했다. 견뎌낼 수 있는 부상의 폭이 넓어지는 계기였다. 그런 모습을 보며 사람의 힘은 무한하고 무서운 것이라는 걸 느꼈다. 도망갈 틈을 주지 않으니 부상에 강해졌다"고 설명했다.

캠프가 끝나갈 무렵, 김 감독은 또 하나의 승부수를 던진다. 특공대(?)를 조직, 미니 캠프를 이어갔던 것이다.

공격력 약화를 피할 수 없게 됐다고 판단한 김 감독은 투수력을 끌어올리는데 중점을 둔다. 김 감독이 직접 윤길현 채병룡 등 핵심 투수들을 이끌고 오키나와에 남아 특별 조련을 이어갔다. 위기 극복을 위한 초강수였다. 그리고 2009시즌은 이들의 힘으로 버텨낼 수 있었다.

출처 : http://starin.edaily.co.kr/news/NewsRead.edy?SCD=EB21&newsid=01380886596119360&DCD=A20102

Posted by 개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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