긁어오기/잡초승부사 김성근을 말한다

19. 후기우승과 선수단 도망사건

개살구 2011. 5. 23. 15:03

2007.11.20

운명의 9회말이었다. 김성근은 선두타자 김광수를 불러 “지금부터 야구하는 거야”라며 독려했다. 천하의 최동원이 마운드에 버티고 있지만 ‘해볼 때까지 해보자’며 주문을 걸고 싶었던 것이다.

김광수가 최동원을 상대로 좌전안타로 출루했다. 그리고 여기서 김형석이 전광석화처럼 우월 2점홈런을 날렸다. 3-3 동점. 이어 나온 신경식은 망연자실한 최동원을 상대로 초구를 통타해 좌중간을 가르는 3루타를 날렸다. 최동원은 허탈한 마음 때문이었는지 3루 뒤쪽으로 커버플레이를 하지 않고 마운드에 우두커니 서 있었고. 중계를 나간 롯데 유격수 정영기의 송구가 3루수 김용철의 글러브를 피해 펜스쪽으로 굴러갔다. 신경식이 만세를 부르며 홈으로 뛰어들었다. 4-3 역전승. 시즌 내내 4연승만 6차례 거뒀던 OB는 시즌 처음으로 5연승의 기적을 이루며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따냈다.

한편 이미 전주에서 해태를 꺾은 MBC는 이 경기 결과를 기다렸다. 이날 잠실경기는 TV 중계가 없었다. MBC는 서울에서 전주로 시외전화를 통해 거의 생중계하다시피 했다. 9회초 롯데가 3-1로 앞서 있는 데다 마운드에는 최동원. 그러나 9회말 OB가 대역전승을 거뒀다는 소식에 MBC는 20승을 목전에 두고 놓친 최동원 이상으로 망연자실했다. 서울 라이벌 MBC 감독을 맡은 ‘열혈남아’ 김동엽 감독의 표정이 어떻게 변했을지는 안 봐도 뻔했다.

당시 MBC 신인 내야수였던 민경삼 SK 운영본부장은 당시 상황을 기억해냈다. 민경삼은 김성근이 신일고 감독을 지냈을 때 선수로 뛰었고. 올해 스승인 김성근을 SK 감독으로 영입한 인물이다. 그는 “MBC는 9회초에 호텔 숙소로 맥주를 들여오는 등 축제 분위기였다. 그런데 OB가 역전승했다는 소식에 잔칫집이 완전히 초상집이 됐다”고 회상했다.

김성근 역시 프로 감독 3년 만에 가을잔치에 처음 참가하게 돼 기쁨이 남달랐다. 그 역시 당시의 기억이 잊혀질 리가 없다. 김성근은 “1회초에 먼저 2점을 내줬다. 최동원을 상대로 2점은 너무 커 보였다. 그런데 1회말에 찬스를 잡고 희생번트를 지시해 1점을 쫓아갔다. 그 1점이 결국 9회말 역전의 발판이 됐던 셈이다. 그때 1점이 너무나 크다는 걸 알았다”고 돌이켰다.

OB는 당연히 축제 분위기가 됐어야했다. 그러나 호사다마였다. 경기가 끝나자마자 선수들이 라커룸에 모여 보너스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이었다. 분위기가 심상찮다는 것을 알아챈 김성근은 선수들에게 “내가 얘기해볼 테니 너희들은 보너스 문제로 분위기를 흐리지 마라”고 일렀다. 곧바로 구단 사무실로 가서 박용민 단장을 만나 선수단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나 박 단장은 “지금 무슨 보너스 운운할 때인가. 포스트시즌이 끝난 다음에 얘기할 문제 아니냐“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다시 라커룸으로 돌아와 선수들을 진정시키려 했으나 선수들은 흥분했다. 주장인 이종도가 다시 박용민 단장을 만나러 갔지만 역시 돌아온 대답은 똑같았다.

이튿날 포스트시즌을 앞두고 훈련을 해야하는데 선수들이 없었다. 모두 도망을 가버린 것이었다.

이재국기자 keystone@

출처 : http://news.sportsseoul.com/read/baseball/489257.htm?ArticleV=o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