긁어오기/하남직 기자

김성근 감독 “장미란의 가장 깨끗한 미소, 그게 승리자”

개살구 2012. 8. 7. 10:59

 

 

 

[일간스포츠 하남직]


장미란(29·고양시청)은 170㎏의 역기를 뒤쪽으로 떨어뜨린 뒤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올림픽과의 작별. 짧은 의식을 마친 그는 밝게 웃으며 관중석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 미소는 브라운관을 통해 '절친' 김성근(70) 고양 원더스 감독에게도 전해졌다.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패자의 얼굴이었어. 그래서 장미란이 승자인 거야." 김 감독은 6일 "예전부터 '참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런던올림픽에서의 모습은 더 아름답더라. 장미란에게 정말 고맙다"라고 말했다.

 

7월 초, 장미란은 김 감독을 찾았다. "사실 어깨가 많이 아픕니다." 장미란과 김 감독은 종목과 4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마음을 주고받는 친구가 됐다. 장미란은 대중 앞에서 하지 못한 고백을 김 감독에게 했다. 김 감독은 "런던올림픽이 한달도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일상 생활도 불편할 정도로 어깨에 통증이 있는 것 같더라. 많이 안타까웠다"고 떠올렸다. 김 감독은 장미란에게 '튜빙기(야구 선수들이 어깨·팔꿈치 근육 강화를 위해 사용하는 강력 고무 밴드)'를 선물했다.

 

김 감독은 "장미란이 '고맙다'며 전해 온 인사가 참 감동적이었다"고 했다. "감독님, 저 핑계 대지 않을 겁니다." 장미란은 대회 직전까지도 어깨 부상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그저 "도전하겠다"라는 말만 했다.

 

6일 오전(한국시간) 런던 엑셀 제3사우스 아레나. 장미란은 인상 3차시기에서 129㎏을 들다 역기를 목과 어깨쪽으로 떨어뜨렸다. 지인과의 식사 자리를 서둘러 마무리짓고 장미란의 경기를 지켜보던 김 감독은 깜짝 놀랐다. 김 감독은 "심각한 통증이 오지 않았을까 우려했다. 용상에 나설 수 있을지 걱정되더라"고 말했다.

 

기우였다. 장미란은 다시 플랫폼에 올랐고, 마지막까지 자기 자신과 싸웠다. 4위에 그치며 올림픽 3회 연속 메달 획득은 물거품이 됐다. 역기 이상의 묵직한 감동이 퍼져 나갔다. 김 감독은 "역시 장미란이었다. 또 한번 놀랐다. 어디서 그런 기운이 나오는지…. 이게 바로 올림픽 정신, 스포츠맨십 아니겠나. 이 나이든 친구에게, 장미란이 큰 가르침을 줬다"고 했다.

 

장미란은 경기 뒤 환하게 웃으며 관중들에게 인사했다. 김 감독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였다"라고 정의한 뒤 "나도 웃음이 나오더라. 승패를 초월하고, 그저 최선을 다한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표정이었다. '나는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저런 표정을 지은 선수가 있었을까'라는 생각도 했다"고 전했다.

 

장미란과 김 감독은 2008 베이징올림픽이 끝난 뒤 저녁 식사 자리에서 우연히 만났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장미란은 젊은이들 못지 않은 김 감독의 열정에 깊이 빠져들었다. 김 감독은 보통의 이십대와는 다른 장미란의 인내심에 감명받았다.

 

이후 장미란에게 '야구'는 즐거운 취미가 됐다. 2008년 한국시리즈 열린 잠실구장을 찾아 SK를 응원하기도 했다. 야구밖에 모르던 김 감독도 "알고보니 참 어려운 종목이더라"고 역도에 대한 관심을 드러냈다. 2009년에는 장미란이 SK 일본 고치 캠프를 찾아 강연을 했다. 지난해 12월에는 전주에서 훈련 중이던 김 감독과 고양 원더스 선수들을 위해 음식을 들고 찾아갔다. 둘은 그렇게 우정을 쌓아갔다.

 

김 감독은 "이제 장미란이 모든 부담감을 털어내고, 몸과 마음을 편하게 가졌으면 좋겠다. 한국에 돌아오면 맛있는 음식 대접하겠다. 장미란에게 받은 감동에, 그렇게나마 보답하고 싶다"고 말했다.

 

 

출처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241&aid=00020928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