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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인터뷰] SK 김성근 감독 "나는 부정을 긍정으로 만드는 사람이다"
개살구
2011. 5. 27. 11:36
10.10.24
그리스 신화를 모태로 알베르 카뮈가 천착했던 ‘시지프스의 신화’는 그 이면에 끝없이 도전하는 백절불굴의 인내와 용기, 그리고 그 무엇으로도 꺾지 못하는 투철한 인간의 신념을 나타냈다. 한국 프로야구의 김성근 SK 와이번스 감독이 바로 ‘시지프스’다. 인내와 용기, 신념으로 고희에 가까운 한평생을 살았고, 그런 삶은 아직 진행형이다.
스포츠월드는 24일 인천 문학구장 감독실에서 김성근 감독을 만났다. 김성근 감독과 야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면 밤을 꼬박 새워도 끝이 없다. 그래서 30여분간 진행한 짧은 인터뷰에서는 그의 인생의 신념과 야구철학, 리더십에 대해 주로 들어봤다.
김성근 감독은 자신의 리더십에 대해 스스로 잘 요약해 주었다. 김성근 감독은 “나는 부정을 긍정으로 만드는 사람이다”라며 “항상 최악의 경우를 생각한다. 그리고 그 부정적인 생각을 이기기 위한 과정을 만들어가고, 긍정적인 결과를 이끌어 낸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긍정의 결과가 나오는 순간 다시 최악을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마치 시지프스가 바위를 정상에 올려놓는 순간, 그 바위가 다시 밑으로 굴러떨어지는 것과 같은 상황이 아닌가!
-한국시리즈 우승을 축하드린다. 2년 연속 통합챔피언이었다가 지난해 한국시리즈에서 졌고, 다시 탈환했다.
“지난해 한국시리즈에서 KIA에 지고, 주위에서는 없는 전력에 잘했다고 위로했지만 나로서는 정말 한이 맺힌 시리즈였다. 가슴앓이를 하다 홧병까지 생겼고,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그 와중에 내년에는 반드시 정상에 서겠다고 결심했다. 시즌전 선수들에게 ‘생각나면 바로 하라, 반드시 하라. 될때까지 하라고 말했다. 또 한국시리즈에 들어가기 전에는 ‘결과에 너무 얽매이지 마라. 자기가 열심히 하면 결과는 자연히 따라온다. 너희들이 할 것만 하고, 결과를 미리 생각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대로 따라준 선수들이 너무 고맙다.”
-올시즌 위기도 많았을 텐데.
“어려운 고비가 많았다. 하지만 SK 선수들은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도 강해졌다. 선수 개개인이 아닌 팀의 힘, 조직의 힘이 강해진 것이다. 그래서 시즌 막판 삼성이 무섭게 추격해 왔을 때도 버틸 수 있었고 한국시리즈에서도 더욱 강해졌다. 그 때문에 4연승의 결과가 나왔다. 가장 큰 위기는 8월 6연패(13∼20일)를 했을 때였다. 선수들은 물론, 코칭스태프에게도 “자신(自信)하고 자만(自慢)을 구별하라”고 호되게 야단쳤다. 그때부터 선수들이 구별할 줄 알더라. 4월초도 어려웠다. 4일과 6∼7일 사이에 두산, KIA에 3연패를 당했다. 충격을 받아서 운동장에서 아파트까지 걸어다녔다. ‘그 선수가 왜 안되지?’ 의문이 들었다. 남의 탓을 할 때가 많았는데 걸어다니면서 결국은 내가 해결해야 되지 않느냐고 삭발을 하며 다짐했다. 선수 탓만 했다면 내 스스로 무너졌을 것이다. 그때부터 연승 모드에 들어갔다.”
-위기를 헤쳐나가는 방법이 있다면.
“선발 타순을 타격코치(세키가와 코이치)에게 맡긴 적이 가끔 있다. 올시즌 8월 6연패했을 때도 그랬다. 코치도 감독 입장이 돼봐라는 뜻이기도 하고, 감독도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생각한다. 8월말∼9월초에는 특별 타격훈련도 없앴다. 선수들이 의무적으로 하는 게 보였다. 절실함 속에서 하는 게 아니었다. 당시 최정을 경기에 내보내지 않았다. 특타할 때 슬슬 놀면서 했기 때문이다. 선수들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 과감하게 특타를 없앴다. 하지만 항상 돌이켜보면 더 좋은 방법이 없었나, 라고 자책하게 된다.”
-4년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했고, 또 3번 우승했다. 한국 프로야구사에서 어떤 위치라고 보는가.
“나는 다른 사람들하고 틀려서 지나간 것은 의식하지 않는다. 지난 4차례 한국시리즈와 3번의 우승은 이미 머릿속에 없다. 다음에 한발 어떻게 내딛느냐만을 생각한다. SK 야구에 대한 비난이 많은데 강자는 역시 비난을 많이 받아야 존재한다. 문제는 한국 프로야구의 다른 팀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이다. 우리보다 더 강해져서 밟아버리겠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 가장 나이가 많은 감독으로서 후배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더 강해지라는 것이다. 2007년 SK가 첫 통합 챔피언이 된 뒤 2008베이징올림픽 우승, WBC 4강에서 준우승으로 올라선 것 등은 강해진 SK와 우리를 잡기 위한 다른 팀의 노력이 어우러진 결과라고 본다. 다른 팀들이 우리를 밟으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야구 자체가 불행해진다. 그 반면에 물론 우리는 더 완전한 팀으로 가기 위해 노력해야한다.”
-선수들과 소통을 많이 하는데,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달라.
“첫 사례가 정대현이다. 내가 부임한 직후인 2006년 가을인데 정대현을 만나 ‘너 마무리할 수 있어’라고 물었더니 ‘할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 그래서 외국인 투수를 모두 선발투수로 데려왔다. 그때부터 나하고 정대현의 신뢰가 시작됐다. 그게 우리팀 전부로 퍼졌다. 이번 한국시리즈에서도 박경완이 한테 ‘공을 던질 때 뒤로 넘어간다. 앞에 와서 던져라’고 얘기했고, 박정권이가 4차전에서 쐐기 2루타를 칠 때 ‘커브든 직구든 풀스윙하라’고 말했다. 이제는 선수들하고는 눈빛만 봐도 통한다. 서로 신뢰하고, 마음이 통하기 때문이다. 그게 남자끼리의 진정한 소통이다.”
-하지만 오직 야구만을 생각하기 때문에 한국야구위원회(KBO)나 구단, 다른 야구인들과 부딪친 적도 많다.
“나는 인생살이에 우직하게 사는 법하고, 재치있게 사는 법 두가지가 있다고 본다, 우직한 것은 바보 취급을 당하고, 손해를 본다. 그러나 긴 살이를 봤을 때 진리가 들어있다. 재치는 순간이지, 길지 않다. 나도 이런저런 말을 하면 손해본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우리나라 야구 발전을 위해서는 해야 한다. 내가 쓴소리를 안해도 되는 세상이 오면 너무 좋다. KBO와 구단들이 관중동원 600만명도 좋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구단 흑자다. 자립경영을 해야 10구단, 12구단이 되고 좋은 야구장도 들어선다.”
인터뷰를 끝내면서, 김성근 감독은 “나는 인생을 살면서 타협이 없고, 변명도 없었다. 역경에 처할수록 강해져야 한다고 다짐했다.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살았다”며 서두에 밝힌 부정적인 사고와 긍정적인 사고의 순환과정을 설파했다. 그래서 김성근 감독의 리더십을 ‘다이아몬드 리더십’이라고 부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이아몬드야말로, 집념과 인내의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김성근 감독의 심장에는 다이아몬드처럼 투명한 결정체가 함께 살아 숨쉬고 있을 것 같았다.
문학=글 이준성 기자·사진 김창규 기자
출처 : http://kr.sports.yahoo.com/news/npb/view?idx=teamnews&aid=20101024162102649d6&team=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