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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인터뷰] 김성근 “5점 리드에 번트 못하면 용기없는 감독”

개살구 2011. 5. 27. 11:12

09.12.02

최근 3년 사이 야구계에서 가장 위상이 달라진 인물은 김성근(67) SK 감독이다. 과거 그의 이미지는 '융통성 없는 야구 기술자'였다. 연고가 없는 재일동포라는 현실적인 핸디캡은 부정적인 이미지에 승수로 작용했다. 지금 그는 프로야구 현직 관계자 가운데 최연장자인 '어른'이다. 그리고 지금은 야구 인생에서 최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이미지로서의 '김성근'에는 지나친 편견과 과장된 찬사가 혼재돼 있다. '전성기가 너무 늦게 왔다'는 점이 야구인 김성근의 비극인지도 모른다. SK의 2009년 역시 성공과 실패가 혼재된 시즌이었다.김 감독은 올해도 변함없이 일본 고치의 가을 캠프에서 나이를 잊은 채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다. 다사다난했던 한 시즌을 마친 그에게 몇 가지 불편할 수도 있는 질문을 던졌다.

-올해 심판 판정에 대한 불만은 자주 드러냈다. 특히 한국시리즈 상대인 KIA전에 대해선 정규시즌부터 '불이익을 받는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심판 판정에 대한 논란은 어느 나라 리그에서든 마찬가지다. 순간순간의 판정에서 득을 볼 때도 있고 손해를 입을 때도 있다. 심판도 실수를 할 때도 있다. 실수가 있다면 반성하고 고치면 된다. 이를 믿을 뿐이다. 사실, 똑똑한 사람은 심판을 적으로 돌리지 않는다. 심판도 사람이다. 왜 감정이 없겠나. 고의로 (오심을) 했다는 생각은 하고 싶지 않다. 유영구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가 말했듯, 스포츠는 '클린(Clean)'해야 하지 않겠는가."

-고치 캠프 기간 동안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았다고 들었다. 올해 나이(67세)를 의식한 적이 있었나.

"건강은 늘 신경쓰면서 체크하고 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젊었을 때부터 오버 워크를 해 왔다. 이런 때는 있다. 가령 이틀 뒤 훈련 메뉴를 정했다고 하자. 이틀 뒤면 시간이 남아 있고, 여러 변수를 생각해야 한다. 이 순간 "내일 훈련이 뭐냐"고 코치가 물어오면 생각에 잠겨 답을 하지 않을 때가 있다. 원래 뭔가에 집중하면 다른 일에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다. 정신적, 체력적으로 아직 (나이는)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문제다. 지금 기세라면 좀 더 오래 지도자 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가늘고 길게'보다 '굵고 짧게' 하려고 했기에 지금까지 지도자 생활을 할 수 있는 것 같다."

-야구계의 어른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반면 감독은 승리를 위해 조그만 이득도 내 것으로 해야 하는 자리다. 두 입장이 충돌할 때는 없나.

"글쎄. 가령 5점 차로 리드하고 있는데 번트나 도루를 한다는 얘기인가. 그에 대해서라면 앨 캄파니스가 쓴 '다저스 전법'에도 나와 있는 작전이다. 팀 사정에 따라 이런 전술을 써야 할 때가 있다. 다른 감독들도 이런 선택을 하고 싶을 것이다. 나는 다른 감독들은 용기가 없는 게 아닌가 싶다. 생각의 차이일 것이다.

시즌 중 상대 팀도 SK에 이런 작전을 건 적이 있다. 상대 감독은 'SK도 당해보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난 전혀 불쾌하지 않았다. 돌다리도 두 번 두드리라고 하지 않나. 선수들에게 '다리를 다 건널 때까지 두드려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얕은 강도 깊은 강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까불다간 강에 빠진다."

-'야구는 감독이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하지만 정규시즌 19연승 등 올해 선수들에게 배운 점도 있지 않을까 싶다.

"(홍백전이 치러지는 구장을 보며)저 선수들의 움직임, 훈련 방향 설정을 누가 하는가. 감독이다. 경기 전 배팅오더를 짜고 교체나 작전 지시도 감독이 내린다. 그래서 감독이 중요하다. 대신 선수에게 책임 전가는 하지 않는다는 게 내 지론이다. 한국시리즈 1차전이 끝난 뒤 '감독 잘못으로 졌다'고 말했다. 실수가 7개 있었다. 일곱 번의 선택이 맞아 떨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실패에서 반성을 해야지 발전이 있다. 19연승에서 배운 건 있다. 바로 '무심'이다. 그때 내가 이기겠다고 욕심을 부렸다면 19연승은 없었다. 거슬러 올라가면 2002년 LG 감독 시절 '마음을 비워야 이긴다'는 걸 배웠다. 그땐 3월에 이미 경질설이 나돌았다. 마음을 비우지 못해 실패한 기억도 있다. 1987년 플레이오프에서 해태에 2승 1패로 앞서 나갔다. 4차전을 앞두고 숙소에서 선수들에게 '한 번만 더 이기자'고 강조했다. 할 필요가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내가 건강이 나쁜 탓이었는지 급해졌다. 결국 선수에게 부담을 줬기 때문에 졌다."

-2002년 LG 감독시절 곤지암 골프장으로 구본무 구단주를 사전 약속 없이 찾아갔다는 건 사실인가.

"와전된 것이다. 골프장 사장이 비서실 출신이라 '내가 구단주를 찾아가도 결례가 아니겠는가'라고 물어본 적은 있다. '그러지 마시라'고 해서 '알겠다'고 한 게 전부다. 그때 구 구단주를 만나려 한 건 이유가 있다. 구단 사장이 '김성근의 야구는 LG와 맞지 않는다'고 했다. 구단주도 그렇게 생각한다면 사표를 내려 했다. 처음에 구단주가 내게 팀을 맡길 때는 '선수들에게 근성과 예의를 가르쳐 달라'고 했다."

-'플레이오프에서 3연패하면 물러나려 했다'는 말에 아직 반신반의하는 이들이 많다.

"정말 그럴 생각이었다. 2차전이 끝나고 서울로 이동할 때 유니폼을 한 벌 밖에 가져가지 않았다. 지인들에게도 물러나겠다는 뜻을 미리 밝혔다. 물러날 결심을 한 데는 이유가 있다. 1년을 돌아보니 다친 선수들이 너무 많았다. 특히 전병두는 내가 조절을 잘 해 주지 못했다. 결국 한국시리즈 우승을 감독의 실수 때문에 놓친 것이다. 자책이 컸다."

-시즌 뒤 SK 프런트를 칭찬하는 말을 했다. 의외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었다.

"그동안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고마운 마음은 늘 갖고 있었다. 2006년 시즌 뒤 다른 구단에서도 영입 제의가 있었다. 하지만 신영철 SK 사장은 나를 만나러 세 번 일본으로 찾아왔다. 사실 8개 구단 감독 가운데 나처럼 마음대로 캠프를 차리고 훈련을 할 수 있는 이는 드물다. 코치나 인스트럭터를 쓰는 데도 클레임을 걸지 않았다. 언젠가 한 프런트 임직원의 자녀가 SK를 좋아하는 친구들에게 '너희 아버지는 나쁘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 직원은 내 제자기도 하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가 사람을 아프게 하는구나'라는 자책을 했다."

-일본 프로야구 지도자 제의를 거절한 것으로 안다. 한국 야구 출신 지도자가 일본으로 진출하는 것도 의미있는 일인데.

"지난해 가을과 올해 봄 제의가 들어오긴 했다. 감독과 수석 코치 자리였다. 여러 생각을 했지만 고사했다. 한국인이 일본 프로야구단 지도자로 뛴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후보군에 들어간 것만도 영광이지 않나 싶다."

-선수협회와 KBOP가 초상권 문제로 분쟁 중이다. 구단은 유니폼 판매에서 선수 몫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 의견을 말해준다면.

"구단이나 선수협회나 자기 이득만 챙기려고 하면 안 된다. (유니폼 문제는) 사실이 그렇다면 잘못된 것 아닌가. 이렇게 해 놓고 노조를 만들지 말라는 건 너무하지 않는가. 사정 상 도저히 노조가 안 된다고 한다면 선수들에게 줄 건 줘야 한다. 프로야구가 만들어진 뒤 야구계에 들어온 사람들은 나쁘게 말해 야구인을 무시해왔다. 그런 분위기가 지금도 남아있는 게 슬프다. 합리적인 선이란 게 있을 것 같다. 야구는 희생타란 게 있는 스포츠 아닌가. 구단, 선수 모두 양보해야 한다. 선수협회도 비활동기간에 훈련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게 과연 한국 야구 발전을 위해 도움이 되는지 생각해야 한다.

고치(일본)=최민규 기자

출처 : http://isplus.liv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3903017&cloc=